1. 플라톤식 형이상학(실재는 존재한다)


실재에 대한 믿음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거기서부터 논리를 전개해가는 거임.

감각기관 너머에 실제로 객관적인 실재가 존자하냐? 라는 질문에 형이상학은 대답할 수 없음.

그건 집합이 무엇이냐? 라는 수학적 질문과 같음.

일단 이걸 공리로 박아넣고 논리를 전개해나가는 거임.


2. 칸트의 초월철학(물자체는 알 수 없으며, 그걸 이해할 수 있다는 건 오만이다)


실재에 대한 믿음은 오만이며,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물자체가 아니라 오로지 인간의 이성밖에 없다라는 칸트의 주장으로부터 나온 철학으로, 실재에 대한 파악을 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대신 칸트 스스로가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부르는 "인간"에 대한 이해만이 가능하다는 주장임.


3. 헤겔의 관념론(실재는 관념과 연결된 거대한 전체로써 이해 가능하다)


물자체의 존재에 대한 증명을 할 순 없지만, 변증법적 방법을 통해 우리는 물자체 혹은 진리에 (언젠가는) 도달할 수 있으며, 진리는 정적인 무언가가 아닌 동적인 실체라는 주장임.

일종의 플라톤과 칸트의 극적인 화해라고 볼 수도 있음


물론 내가 좀 과하게 요약하기도 하고, 단어를 대충 쓰기도 했지만 큰 흐름은 이렇게 나아감.

결국 우리의 믿음이나 이런 것도 극단적으로 말하면 진리인 걸 증명할 순 없음.

가장 진리에 가깝다고 믿어지는 과학이나, 심지어 극단적으로 수학조차 진리가 아니라는 주장까지 나오니까.

하지만 우리는 그게 진리라고 믿고 있음.

그 근거는 지극히 귀납적이지만.


하지만 이러한 사고방식이 적어도 지금은 잘 작동했고, 그 결과가 과학적 방법론과 합리주의임.

어쩌면 지극히 헤겔적인 해결방법이지.

결국 과학이 종교냐라는 질문은 광의의 의미에서(믿음으로 이뤄진 논리 체계)는 사실임.

하지만 그것이 과연 기존 종교와 같은 결이냐? 라는 질문에 대해선 아니라고 할 수 있음.

실재가 존재하며 그걸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일종의 플라톤식 사고와, 반대로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오로지 나만이 진리다라는 극단적 유아론적 사고에서 벗어나, 우리는 새로운 방식의 철학적 사고방식을 도입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