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쪽 관련해서 연관이 없는 것도 아니라서 엄청 긁혔는데, 애초에 직접 연극을 본 적 있거나 보는 사람이라면 저런 생각을 하지 않지 않았을까 생각이 듦...

사실 까놓고 말하면 연극 쪽은 한정된 장소와 공간 안에서 배우들의 연기를 보고 관객들이 상상력 스킨을 씌워서 볼 수 있는 이야기들임. 오히려 불편하게 발목을 잡는 장치가 없기 때문에 연기나 극작가와 연출의 의도에 따라서 영상매체랑은 달리 파격적으로 휙휙 끊어서 상황 따라서는 영화에서는 그렇게 쉽게 구현할 수 없는 내용들도 연출 및 배우들의 연기에 따라서 완전히 장면전환을 해버리는 경우도 잦음.

아예 한 소년의 심리적인 기제를 통해 인간의 원초적 심리와 종교란 뭔가를 고찰하는 피터 쉐퍼의 에쿠우스나 스트린드베리의 꿈 연극이나 유령 소나타, 연출이라는 가상의 배우가 관객들에게 이야기하고 배역들의 인생을 휙휙 넘기고 저승의 삶을 조명하기도 하는(눈물 제조기) 손톤 와일더의 우리 읍내, 베르톨트 브레히트처럼 아예 현실 같아 보이는 장치들을 다 걷어내고서 하는 아르투로 우이의 저지 가능했던 상승 같은 거라던가 부조리극 작가들의 희곡 같은 것들 등등 극작가 자체가 의도 자체를 거기에 심어서 따라가야 하는, 예로 들만한 작품들은 셀 수 없이 많음. 그래서 무대 소품들도 여러 가지 기능을 수행하는 오브제가 등장하게끔 하는 경우도 많고. 이건 소설이나 일본 만화 쪽만 봐선 알 수 없는 내용일 거임.

이런 식으로 프레임을 왔다갔다 움직이기만 해서 전체적인 분위기를 계속 드리프트하는, 태생적으로 철학적인 문제를 건드리게 되는 매체라서 이걸 유심하게 안 보는 사람들 입장에선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음.

애초에 연극 자체를 정의할 때 고대 그리스의 희생 제의에서 따왔단 걸 정설로 치는 데도 의의가 있음. 현실엔 신도 신의 피를 이은 사람도 요정도 신화도 없음. 현실의 무대 장치는 조악했고 그걸 표현할 수도 없었음. 하지만 사람들은 그걸 음악과 연기와 부연설명과 아주아주아주아주 함축적이고 경제적이고 공격적인 배경 설정과 효과적인 이야기의 기승전결을 잡는 방법론 등으로 메꿔왔음. 게다가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여기에 후원자들이 붙고 대회라는 걸 만들어서 매 년 우승작이 칭송받도록 했음. 즉 뭐냐 하면 연극은 태생부터 고증이니 부차적으로 두고서 사람 심리를 효과적으로 건드리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단 거임.

오셀로 배역은 꼭 흑인을 채용해야 되나? 흑인이라는 배역의 고정관념에 대해 눈을 막 굴리고 미개한 흑인의 모습을 배역에 투영해야 할까? 아니거든 셰익스피어는 이 배역을 상당히 교육 잘 받은 머리 좋은 사람으로 묘사했고 연출도 그러면 그 의도를 살려서 지성인처럼 묘사하는 게 좋겠지? 그래야 전반적인 이야기의 분위기가 잘 살 테니깐... 백인 배우가 없어도 그냥 한국인 갖다 쓰고, 흑인 배우도 한국인이 하고, 해외도 별 상관 없음. 그냥 주어진 위치에서 작품 안 망칠 사람이라고 생각되면 쓰는 거임. 괜히 연극계에서 잘 나가는 사람들이 영화계에 나가서도 좋은 평가를 받는 게 아님. 연극 하는 사람들이 대체로 표현의 폭이 넓고 효과적인 표현법을 많이 궁리했고 전체적인 판도를 잘 읽음... 현실적인 제약이 많은 데서 단련해왔거든.

요새는 쉽게 집에서도 볼 수 있고 볼 재미가 많은 영상매체가 흔해져서 연극 같은 건 재미 없다고 생각할 사람들도 꽤 있을 것 같은데, 한 번쯤 말한 작품들 보셈... 특히 근현대극들은 진짜 생각하게 만드는 부분들이 많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