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뉴스데스크의 ○○○ 입니다.

어제 □□□ 국무총리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국내와 해외 모두 충격이 가시지 않고 있는데요,

경찰 조사에서는 일단 자살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는 소식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고인과 친분이 있으셨던 △△△ 교수님을 모시고, 고인의 삶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보겠습니다.

교수님, 안녕하십니까."


"네, 안녕하세요."


"교수님께서도 갑작스러운 부고에 무척 상심이 크시겠습니다."


"예, 사실 오래 전부터 정신적으로 불안했던지라 걱정을 많이 했는데, 결국 이렇게 되니 참......"


"오래 전이라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언제쯤부터 조짐이 있었나요?"


"솔직히 처음부터 그랬다고 봐야죠. 이 모든 일이 시작된 날로부터. 마왕이 공화국을 무너뜨린 날 말입니다."


"그때가 13년 전이었는데, 마왕이 집권 초창기부터 고인을 국무총리로 임명했었죠."


"딱 마왕이 좋아하는 인간상이었지. 일 잘하고, 청렴하고, 윗대가리 눈치 안 보니까 한직을 전전하고."


"마왕의 민주주의 파괴와 독재에 대놓고 반대한 인사를 오히려 발탁하니 반응이 뜨거웠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절대로 받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 친구의 모든 불행이 다 그거 받아서 생긴 거예요.

사실 피하려는 노력이야 당연히 했죠. 대놓고 거부했고, 도망도 쳐봤고, 심지어 성비위 논란까지 일으켰는데...

그게 국무총리가 안 되려는 자작극인 걸 마왕이 밝혀버리고. 결국 받을 수밖에 없었지.

게다가 그 친구가 책임감이 강해요. 사실 자기가 안 하면 결국 누군가는 해야 하니까. 그냥 자기가 짊어진 거죠."


"그럼에도 전 총리께서는 임기 동안 뛰어난 업무 수행 능력과 많은 업적으로 평가가 높으십니다."


"말했잖아요, 일 잘 하고 청렴하다고. 그러니까 공화국의 국무총리였다면 더 좋았겠지.

문제는 마왕의 국무총리였다는 겁니다. 민주주의자가 독재자의 하수인이 되어버렸다고요."


"그렇습니다. 그래도 임기 내내 마왕에 반대하는 모습 또한 많이 보여주신 걸로 유명하신데요."


"마왕이 지나치게 막나가려고 하면 그거 사정사정해서 겨우 수위를 좀 낮추고, 얼마나 고생했습니까?

심지어 많이들 아시겠지만, 마왕이 저지른 그 학살과 범죄들을 국내와 해외에 몰래 폭로하기도 했고,

지하 반정부 단체를 도와주기도 하고... 자신의 위치에서 힘이 닿는 만큼은 충분히 저항한 친구입니다."


"어찌 보면은 다른 사람도 아니고 국무총리가 반역을 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고인 본인에게는 저항이었다는 거군요."


"그 친구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공화국의 국민이었습니다. 마왕의 신하가 아니라요. 제가 보증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모든 반역, 저항들이 결국 아무 소용이 없었다는 거예요.

지금 보세요, 집권 13년째인 지금을. 거의 모든 국민이 마왕의 통치에 순응합니다. 국제 사회도 입으로만 비난하고요.

정말 인간들이 상상하던 이상적인 철인 통치자는 맞으니까요. 부패 척결하고, 개혁하고, 자기 비판 안 건드리고,

그 과정에서 사람 수없이 죽이고 민주주의 파괴하면 어떠냐. 사이다 먹여주고 경제만 살리면 그만이지. 안 그래요?

게다가 얼마 전에 암살 시도 실패했죠? 마왕은 현대 과학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건 다들 아실 테고.

그리고 고인은 분명 국무총리라는 위치에서 열심히 일하고, 국가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동시에 독재 정권에 대한 기여라는, 그런 자기모순이 그 친구의 정신을 서서히 무너뜨렸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렇군요. 그럼 마지막으로, 고인께서 남긴 유언장에 대해서 교수님의 의견을 여쭙고 싶습니다."


"네, 딱 3줄밖에 없었죠.


'마왕님께서 마침내 내 사직서를 받아주셨다.

마왕님 만세!

장례는 조촐하게 치러주세요.'


제가 뭐 심리학 전공이나 프로파일러도 아니라서 이거를 정확히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은 없습니다만...

일단 이 시점에서는 정신이 완전히 붕괴되었다는 느낌이 들고요. 정말 지난 13년 동안 사임 의사를 수없이 밝혔어요.

근데 마왕은 다 거부했죠. 쓸모 있는 인재니까. 그리고 아까 말한 대로, 고인이 책임감이 커서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기도 뭐하고.

그런데 이제 와서 사직서를 받아 줬다? 이건 문자 그대로가 아니라, 마왕이 고인의 자살 의사를 방조했다는 뜻입니다.

고인은 죽음만이 마왕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지경까지 전락했어요.

정말 마왕이 고인을 아껴서, 지켜주려고 했다면 진작에 멘탈 케어를 해주거나, 조금 쉬게 해 주거나 했겠죠.

이래도 마왕이 자신에게 직언하는 충신을 등용하는 훌륭한 지도자 같으세요? 그에게는 우리 모두 도구일 뿐입니다."


"예에... 교수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한편 마왕은 전 총리의 죽음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하며, 행정 공백이 없도록 빠른 시일 내에 후임자를 내정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전 총리의 장례를 국장으로 성대하게 거행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는데요.

마왕은 '자기는 시체팔이 싫어한다'는 과격한 어조로 거부하고, 철저히 고인의 유언장대로 집행하겠다는 입장입니다.

따라서 전 총리의 장례는 가족장으로 간소하게 치러질 것으로 전망되며......"










범죄 정권의 관료는 아무리 양심적이어도 결국 하수인에 불과한가 하는 고민이 들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