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21XX년. 무림은 쇠퇴했다.


 올림픽 종목에 중국무술은 없다.

 훌륭한 신체 조건을 가진 유망한 자들은 전부 올림픽을 노리고 유도나 태권도, 복싱을 배우고 있다. 


 근대화 일제의 침략으로 그나마 이어오던 무림맹가들도 순식간에 해체되었다.

 이제 남은 건 뿔뿔히 분열된 초식을 부분적으로 이어오고 있는 파편적인 계승자들 뿐.


 리 웨이창(이위창).


 화산파 매화권법을 계승한 남자.

 그것이 나다.


 '화산도장'이라는 무술 도장을 운영하고 있다.


 무술에 대한 수요는 많다.

 무협지와 무협드라마로 화산권법에 대한 로망은 더욱 더 늘어났으니까.

 정통 매화권법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도 늘어났을거라고 나는 믿었다.


 하지만...


 "아... 정권 지르기 100회 존나 시시하네..."

 "이단 옆차기 같은거 안가르쳐주나..."

 

 이 시대에 무공을 배우려는 자는 없다.

 제발로 온 문하생들조차 정권을 지르며 벽에 걸린 시계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수업시간 끝나면 칼같이 끝내고 집으로 가기 위해서. 아마 다음달이면 나오지 않겠지. 아니, 내일 나오기는 할까?

 

 '우리 도장에서 무엇을 배우고 싶으냐?'

 '화산권법을 배우고 싶습니다!'

 '어째서 화산권법을 배우고 싶은가?'

 '전통무술에 관심이 있어서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도장에 등록한 문하생들이다.

 하지만 눈만 봐도 안다. 그 열정은 사흘만에 사라졌다. 화산파의 자세를 이해하기도 전에 이들은 흥미를 잃어버렸다. 이들이 원하는 건 화산권법이 아니라 무협지와 드라마 속에서 나오는 기기묘묘한 특수효과, 주인공에게 카리스마를 부여하는 아우라 뿐이니까.


 아마 내 대에서 화산권법은 끊어지겠지.

 그나마 오래간 축일지도 모른다. 무당파 같은 종교색이 강한 무공은 이제 정통계승자가 전혀 없다고 하니까. 20세기 가혹하게 이어진 종교탄압으로 전부 숙청되어버린 것이다. 제갈세가는 판관필기법의 정통계승자가 당주로 남아있긴 하지만, 당주인 주거버그(제갈백)가 '이제 세상은 sns가 지배한다!'라며 플랫폼 사업에만 관심을 기울일 뿐이다. 

 21세기에서 무림의 대는 완전히 끊어질 것이다.

 미련을 버리자. 그렇게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우리 도장에서 무엇을 얻고자 하느냐.'


 나는 도장을 찾아온 소녀에게 묻는다.

 14살 정도 되는 여중생이다.


 틱톡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분홍 브릿지 넣은 금발.

 별과 하트 모양 스티커를 요란하게 붙인 네일아트.

 캐릭터 마스코트 휴대폰줄이 주렁주렁 매달린 백팩.

 버릇없게 단추를 세개나 풀어헤친 새하얀 블라우스.

 무릎 위로 한뼘도 넘게 끌어올린 치마. 체육복 반바지를 입고 있는게 다행이다.


 해외 문화의 악영향을 직격으로 받은 여고생이다.

 등록신청서에 써진 이름은 이엔 커신(월가신).


 '우리 도장에서 무엇을 얻고자 하느냐.'

 '다이어트요.'

 '...살을 빼려면 헬스클럽에 가는게 맞지 않느냐.'

 '이 동네 헬스 클럽 비싸고 헬창들이 운동기구 다 차지해서 런닝밖에 할게 없어요. 기본요금으로는 트레이너도 안붙으니까.'

 '...그렇게 비싼데도 헬스클럽은 잘되는건가. 나도 헬스 클럽을 해야 했던건가.'

 '앗! 안돼! 할거면 나 살 뺀 다음에 열어요! 여기처럼 싼 값에 개인트레이닝 해주는 곳은 없으니까!'


 나는 고뇌하지 않는다.

 이 요란한 여중생을 문하생으로 받는다. 어차피 이 애도 똑같다.


 화산권법에는 아무 관심도 없어.

 다른 문하생처럼 삼일이면 나가 떨어질게 분명하다.


 그리고 한달이 지났다.

 반년이 지났다.

 일년이 지났다.

 삼년이 지났다.


 삼년 동안 문하생들은 모두 바뀌었다.

 단 한명, 그 요란한 여중생을 제외하고. 이제는 여고생이다.


 "히햐아아아아아아아아압!"



 여고생이 기합을 지르며 샌드백을 주먹으로 두들긴다.

 주먹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 속도로.

 

 퍼엉.


 도장의 샌드백이 톱밥을 주변에 흩뿌리며 터져나간다.

 새로 등록하러 온 문하생이 경악하며 여고생을 바라본다.


 '굉장해... 저도 화산권법을 배우면 저렇게 될 수 있나요?'

  '그렇다... 너도 삼년이면 저렇게 될 수 있다...'

 '화산권법 배워야지!'

 '환영한다 새로운 제자여...'


 나는 말끝을 흐리며 새 문하생이 쓴 등록신청서를 받는다.

 말끝을 흐릴 수 밖에 없었다.


 저건 화산권법이 아니다.

 애초에 나는 저 여고생에게 화산권법을 가르치지 않았다.

 시도는 했지만 무술에 전혀 관심이 없어 가르칠 수 없었다.


 나는 그저 기초적인 체력단련을 시켰을 뿐이다.

 효과적으로 체력을 낭비해서 살이 빠지는 트레이닝을 했을 뿐이다.


 오직 다이어트 트레이닝만으로 이 여고생은


 단, 삼년만에...

 삼십년 동안 내가 수련한 화산권의 파괴력을 뛰어넘었다.

 

 씨발

 존나 현탐오네


 나는 마지막 남은 화산권법의 계승자로써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이미 잊어버린 책임감을.


 이엔 커신.

 이년을 어떻게든 구워삶아 화산권법을 계승시켜야 한다.

 

 이년은 21세기, 새로운 무림의 맹주가 될 여자다.




 다이어트도 극에 달하면 무공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