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구름이 걷히고 드러난 건, 박살난 도로를 뚫고 반쯤 땅에 처박힌 빌런과 그 앞에서 당당하게 서 있는 현존 최강의 히어로였다.


이제는 하도 많이 들어서 익숙해진건지 아니면 그냥 청력이 안 좋아진건지 여하튼 견딜만해진 시민들의 환호성을 뚫고 기자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히어로, 강현아에게 마이크를 들이밀었다.


"잠깐 기다리세요! 체포부터 확실하게...!"


그리고 그들을 억지로 막으며 최대한 빠르게 빌런을 구속하는 경찰들은 불쌍해보일 정도로 그 사이에서 고생하고 있었다.


"어, 손에 상처가..."


기자 중 한 명이 그녀의 손등을 가리켰다. 그 말대로, 그녀의 손등에 난 자상에서 약간이지만 피가 흐르고 있었다.


"치료, 치료부터! 거 다들 가세요! 강현아 씨는 응급처치부터 받으셔야 합니다!"


하지만 강현아는 그저 손등에 난 상처를 잠시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환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저었다.


"아뇨! 이 정도는 그냥 긁힌 정도인데요 뭘. 한 분씩 질문해주세요~ 아, 그런데 방금 체포한 분은 제가 나중에 잠깐 이야기를 나누어볼 수 있을까요?"


"네? 아...네. 그러면 일단 취조실로..."


"감사합니다!"


그리 말하며 환하게 웃는 그녀의 얼굴은 누구라도 반할 만큼 매력적이었지만, 정작 그녀의 애인이자 매니저인 난 그 미소에 소름이 돋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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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아가 취조실 안에 들어서자마자, 온 몸이 구속된 빌런은 발작하듯 몸을 흔들며 무어라 중얼거렸다. 안에 홀로 들어간 그녀는 거침없이 재갈을 풀어버렸지만 당연히 주변의 그 누구도 딱히 개의치 않았다. 만전의 상태로 덤볐을 때도 1분만에 얻어터지고 바닥에 쳐박히는 꼴을 본 그 누구도 저 히어로가 온 몸이 구속된 범죄자와 함께 있다고 위험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테니.


"씨발년...! 넌 내가 나가기만 하면 무조건 찢어 죽인다."


"또라이 새끼. 그렇게 쳐맞아놓고 저렇게 개길 깡다구가 있는게 신기하다."


취조실 내부와 연결된 스피커에서 들리는 말소리에 주변 경찰들은 다들 질렸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정작 취조실 내부의 강현아는 미소지을 뿐이었다. 그것을 본 주변 사람들은 역시 최강의 히어로라며 추켜세웠지만, 나는 안다. 저건 여유나 자신감에서 나오는 미소 따위가 아니다.


본인이 원하던 상대를 찾아서 생긴 만족감에서 나온 웃음이지.


강현아는 천천히 허리를 숙여 상대의 귀에 무언가를 속삭였다. 취조실의 마이크로는 이제 들리지 않았지만, 난 능력으로 마음을 읽어 둘의 대화를 엿들을 수 있었다.


"서울 **구 유림아파트 1107호."


"뭐?"


"내 집주소에요."


"갑자기 뭔 개소리..."


"언제든 찾아와도 좋아요. 출소한 직후든, 아니면 몇 년이 지나서든. 탈옥해서 한밤중에 급습하는것도 물론 환영이에요. 아, 당연히 탈옥하면 뉴스에 뜰 테니, 제가 그걸 보거나 연락을 받기 전에 절 빠르게 죽여야겠죠?"


...미친년. 저럴 줄 알았다.


"혼자서 은밀하게 기습해도 좋지만, 마음이 맞는 다른 몇 명이랑 협력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거에요. 당신 능력에 어울리는 파트너라면...노지혜 씨나 강철수 씨 정도가 맞으려나? 아 물론 제가 모르는 사람이랑 협력해서 정보의 노출을 막는 것도 멋진 전략이겠죠. 아까 그 틈새에 내 손등을 공격한 건, 훌륭했어요. 칼에 독 같은걸 발라놓았다면 더 좋은 결과가 있었겠지만요."


"...허. 아주 그냥 또라이 년이구만? 네가 이딴 소리하는거 니 가족이랑 애인은 아냐?"


"가족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이왕이면 인질극은 하지 말아줘요. 서프라이즈가 없어지는 것도 문제지만 저도 직업이 직업이라 인질을 잡아버리시면 한 방에 여러분 머리를 날려버려야 할 수도 있거든요. 아쉽지만 저도 돈을 벌어야 먹고 살 수 있잖아요? 이해 부탁드려요."


"...나보고 사람들이 미친 새끼라던데, 진짜 정신병자는 여기 있었군."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하는 범죄자와 다르게, 강현아는 상당히 흡족한 표정이었다.


"몇 명은 내가 이런 말을 하니까 지레 겁먹던데, 그래도 당신은 싹수가 보이네요. 좋아요. 너무 오래 이러는 것도 괜히 시선이 끌리니까 이 정도로 하고...집주소, 기억했죠? 재회를 기대하고 있을게요."


그 말을 끝으로 몸을 다시 일으킨 그녀는 취조실 밖으로 걸어나왔다.


"어머, 자기도 와 있었어? 오늘은 둘이서 들어갈까?"


나를 보고는 웃으며 팔짱을 끼는 그녀를 주변 사람들은 부럽다는 듯이 바라보았지만, 정작 방금 취조실 안의 대화를 엿들은 나에게는 오싹한 기분만 들 뿐이었다.


"...들었지?"


"...그래."


그리고 주차장에 단 둘이 남게 되자마자, 그녀는 입이 찢어지도록 웃더니 깔깔거리기 시작했다.


"아 정말이지, 웃음 참느라 힘들었다. 오랜만에 그래도 제법 깡다구 있는 사람을 만나서 다행이야! 최근에 다들 겁먹고 나 보자마자 항복하거나 얘기만 꺼내도 바지에 지려버리는 것들만 만나서 불만이었는데, 운이 좋았네."


"...다행이네."


"그러니까, 자기 친구들한테 저 사람은 건드리지 말라고 전해줘?"


"알았어."


강현아가 나와 사귀는 목적은 이거다. 내가 범죄자를 상대로 사적제재를 일삼는 집단의 일부기 때문이다. 연쇄 강간범의 출소 날 자택에 찾아가서 목을 매 자살하라고 명령을 내리던 내 앞에 나타난 그녀는 날 한 방에 때려눕히고 범죄자를 풀어주었다.


'또 너네구나. 잠깐 얼굴 좀 볼까?'


'어윽...'


'어머, 멀쩡하게 생겼네? 얼굴이 아깝다. 그러게 왜 이런 나쁜 짓을 해?'


'...곱게 경찰서에 가겠습니다. 놓아주시죠.'


'왜 히어로가 범죄자를 감싸냐고는 안 물어봐?'


'어차피 법에 따른 처벌을 받았으니 그걸로 끝이니 그딴 잡소리나...'


'아닌데. 음 그래, 더 좋은 생각이 났어. 너, 나랑 같이 살자.'


그렇게 막무가내로 그녀의 집에 끌려온 나는, 대외적으론 매니저 겸 애인 행세를 하면서 실질적으론 그녀에게 몇몇 악질 범죄자의 행방에 대한 정보를 제공받는 대가로 그녀가 점찍어놓은 일부는 나를 포함한 비질란테들이 함부로 해치지 못하게 막아주는 일을 하게되었다. 당연히 목적은 출소한 빌런과 범죄자들이 그녀를 다시 한번 노리게 하기 위해서. 다른 히어로처럼 이명이 아닌 본명을 당당하게 내걸고 행동하는 것도, 여론의 추측처럼 자신감의 표현이 아니라 그냥 자기 자신을 찾아내서 보복하는 걸 장려하기 위해서다.


명색이 비질란테라는 놈이 범죄자를 일부러 보호해주게 되었다는 사실에 수치심을 느끼던 시절도 있었지만, 요즘에는 오히려 저런 광인한테 찍힌 놈들이 조금이나마 불쌍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한번은 아예 물어보았다. 죽고싶으면 자살하면 되고, 싸움이 하고 싶다면 히어로를 떄려치우고 어디 불법 격투장이라도 들어가면 그만일 것을 대체 왜 이런 짓을 하냐고.


'이해하기 어렵다는 건 알지만...난 죽고 싶은게 아니야. 그냥 스릴을 즐기는 거지. 사람들도 스카이다이빙이나 롤러코스터 같은 걸 타잖아? 나도 비슷하다고 생각해. 격투장은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지만...내가 정면 대결에서 질 리가 없잖아?'


당시에는 저 말이 오만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녀의 힘을 몇 번 목격하고 난 뒤에는 자연스럽게 납득했다.


'내가 무조건 이기는 승부가 무슨 의미가 있어? 그건 게임할 때 무적 치트키 쓰고 게임하는 거랑 똑같은 거야. 처음 몇번이야 재밌겠지. 하지만 얼마 못 가서 그 게임을 안 하게 될 걸. 나도 마찬가지야. 기습이든 독살이든...뭐라도 허용해야 조금이라도 내가 질 확률이 생기지 않겠어?'


무심코 그녀가 빌런이 아닌 게 용하다고 말하자, 그녀는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었지.


'그건 민폐잖아. 뭐 다 때려부수면서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학살하면 싸움이 나기야 하겠지만 애꿏은 사람이 휘말리면 쓰나? 그러니까 겸사겸사 돈도 벌고, 자연스럽게 싸울 기회가 생기는 히어로로 취업한 거지.'


제일 무서운 점이 바로 이거였다. 이 미치광이는 아예 싸움질에 정신줄을 놓은 사람이 아니다. 지성과 교양은 멀쩡한 인간이, 취미생활이랍시고 자기 목숨을 판돈으로 내거는 짓을 한다는 건 적어도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질 않았다.


"드디어 집이네...나 먼저 씻을 테니까 침대에서 기다려? 아 물론 하다가 이쪽에 다른 걸 찔러도 좋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대놓고 상의를 벗어던진 그녀는 왼쪽 가슴을 가리키며 씩 웃었다. 도중에 무기로 자기 심장을 노려보라는 뜻이다. 저 사이코는 자기 애인이라는 나한테도 언제든 죽이려 들어도 좋다고, 동거 첫날부터 이야기했다.


"미친년..."


"에엥? 너무해~"


답지도 않은 비음을 흘리며, 상처받았다는 듯한 말과 다르게 싱글벙글 웃는 그녀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미친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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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건 싸움박질이 하고 싶어서 히어로 일을 하는데 정작 또 일은 맡은 직무에 충실한, 의도는 매우매우 불순하지만 결과는 훌륭한 미치광이 히어로와 흉악 범죄자를 벌한다는 의도는 좋지만 사적제재라는 부적절한 방식을 쓰는 좀 더 상식인에 가까운 비질란테 매니저 겸 애인 겸 적(?)의 이야기.


이 둘이 이대로 갈지, 아니면 결국 한 쪽이 변화하게 될 지? 아니면 결국 히어로가 끝내 싸움 끝에 죽게 될 지 그리고 알게 모르게 정이 들기 시작했던 주인공은 이런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반응할지, 가능성이 많은 소재라고 생각함.


그러니까 이제 이걸 본 네가 나머지를 연재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