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선배, 이번 게이트는 저랑 같이 뛰면서 뭐가 고독하다는 검까.”


“네가 나랑 같이 밥 안 먹어주니까 내 마음이 고독하단다, 후배님아.”


“사람 밥 같은 걸 만들어 놓고 나서나 그런 말 하시지 말임다. 차라리 홀애비처럼 요리를 아예 할 줄 모르시면 모를까. 아, 나이는 홀애비가 맞긴 한데.”


“……”


나쁜 년. 너 다음에 군장 쌀 때 에너지바 유통기한 지난 거로 내가 바꿔치기 해 놓을 거야.


하지만 이런 썩을 후배도 후배다. 헌터 선배된 도리로서 챙겨줘야지, 암.


그리고 오늘은 나도 이 녀석한테 보여줄 게 있다.



“오늘은 본격적인 요리를 할 테다.”


“예에이 예에이. 윈드커터로 뼈째 토막 낸 다음에, 냄비에 워터샷으로 물을 받고, 파이어볼트로 장작에 불 붙이는 그거 말임까?”


“아 그거 말고! 아니, 그것도 하긴 할 건데, 재료 손질과 요리라는 공정을 제대로 할 거란 말이야.”


일단 헌터들의 영원한 친구 인벤토리(보급형)에서 조리 도구부터 꺼내자. 미리 준비한 식재료도 함께.



“프라잉팬에, 찜기에, 반찬통에, 채소 채반에, 뭔 페트병에…… 아니 선배, 인벤토리에 그걸 다 넣고 다닌 검까? 공간이 막 남아 도는 것도 아니고.”


“인벤토리 새로 뽑았지.”


“아무리 그래도 인벤토리가 거기서 거기인 거 뻔히 아는…… 잠깐, 설마 지난주에 나온 신형 산 검까? 그거 하나만 몇백만 원 할 텐데?”


“자, 일단 화로를 준비하고 장작에 불을 붙인다. 방금 전까지 전투로 지쳤으므로, 화염 마법 말고 여기 꿍쳐둔 파이어 스톤을 쓰자.”


“선배? 어이. 야.”


미식을 위해서는 희생이 필요한 법이다. 지난 몇 달간 저축해 둔 여유금이 싹 날아갔지만, 오늘의 식사는 몇 년간 기억에 남으리라.



“에이씨…… 아무튼, 그러면 저희 뭐 만들어먹는 검까? 거기 통에 무슨 반죽 같은 게 들었는데…… 저희 둘이 먹기에는 양이 애매하지 않슴까?”


“재료는 여기 있잖아.”


“넹?”


내가 친절히 오늘의 식재료를 가리켰지만 후배 녀석은 얼타면서 눈만 꿈뻑거린다.



“저건 저희가 잡은 코카트리스 아님까. 갈무리 하면서 깃털 뽑고 부리랑 발톱 자르고 피까지 뺀 거.”


“응.”


“…… 코카트리스를 먹자는 검까?”


“응.”


"…… 조정간 단발.“


“스톱, 스톱, 스톱.”


“예에이, 스톱되긴 하겠네요, 저거 먹으면 석화 걸려서.”


“그것까지 감안한 요리법이다, 이 말씀.”


후배 녀석이 총구를 나한테 겨눌까 말까 진지하게 고민 중인 와중에, 얼른 코카트리스 사체에게 다가간다.



“일단 모두들 알다시피, 코카트리스의 석화 저주 마력은 부리와 발톱 그리고 피에 깃들어 있어요!”


“선배, 누구한테 말하는 검까?”


“요리 프로그램 흉내 내 봤어. 이걸로 스트리머 데뷔할까?”


“흉터 내기 전에 사랑스러운 미소녀 후배한테 설명이나 마저 하시는 검다.”


“크흠. 일단 네 걱정대로, 아무리 피를 뺐어도 코카트리스를 통째로 해주하지 않는 이상 고기를 섭취하는 것만으로도 석화 저주에 걸릴 가능성이 미세하게나마 있는 건 맞아.”


“설마 저주 안 걸릴 가능성을 믿고 도박하자는 검까?”


“아니. 코카트리스 몸에서 석화 저주가 가장 옅은 부분을 취식하자는 거지.”


허리춤에서 갈무리용 단검을 꺼내 코카트리스의 껍질을 벗겨낸다.



“음……  거대한 닭껍질 같슴다.”


“바로 그거야. 닭껍질 교자라고 들어 봤나?”


“오…… 예전에 한번 먹어본 적 있슴다. 개맛있는데.”


“거기에 하나 더.”


피부를 가릴 장갑이 제대로 고정되어 있는지 다시 한번 확인한 다음에, 이번에는 코카트리스의 갈라진 배를 뒤적거린다.



“자! 이거 봐라.”


“간 아님까? 선배 이번에 헌터 게놈을 구미호 타입으로 갈아끼우기라도 했슴까?”


“그럴 리가. 난 구울 원툴이라고. 어쨌든 중요한 건, 코카트리스의 간에는 해주 마력이 깃들어 있다는 거지. 석화 해주제로도 쓴다구?”


“엥. 해주 기능 있는 건 들어봤어도, 해주제로 쓰는 건 처음 들어봄다.”


“간의 주인이었던 코카트리스 개체의 석화 저주에 파장이 맞춰져 있어서 그래. 보편적인 해주제로는 못 써먹지. 하지만 우리처럼 코카트리스를 그 자리에서 바로 먹으려 하는 사람들에게는 유용하지?”


“그 ‘우리’에 포함되기는 싫었지 말임다……”


“에헤이. 먹어 보면 생각이 다를걸? 부추간양념볶음 참을 거야?”


“오…… 존맛탱……”


“크흐흐. 그런고로 오늘의 저녁 메뉴는 코카트리스껍질 교자와 코카트리스간 부추양념볶음이야!”


“츄릅.”


“거기에 하나 더! 한국인은 밥 추가 아니면 면 사리 추가 없으면 섭섭하지! 여기에 식초와 소면과 미리 만들어놓은 양념장 그리고 채소 고명이 있으니, 코카트리스 고기 조금 찢어 넣으면 그것이 바로 코카트리스 초계국수!”


“초계탕은 닭 육수로 만들어야 함다! 아니면 야매임다!”


“그렇다고 식초닭국수로 부를 수는 없잖아.”


“식초만 빼면 안 됨까?”


“안 돼. 이거 소프트아이 포도로 만든 식초야. 이거 넣어야 돼.”


“소프트아이 포도? 어디서 들어봤더라…… 아! 석화 저항약 재료 아님까?”


“고롷치. 이걸로써 우리는 비로소 석화에 완전 면역인 채 코카트리스를 먹을 수 있다는 것.”


“와!”


짝짝짝 박수를 치는 후배…가 박수를 치다 말고 손을 내젓는다.



“아니아니아니. 선배, 애초에 석화 대처법 완비 여부보다, 외계 아니 외차원 생명체를 마구 먹는 게 신경쓰이는 검다. 마력 오염 걱정 안 하심까?”


“난 구울 게놈 써서 괜찮다니까.”


“조정간 단…” 


“에헤이 스톱. 애초에 이번 달 마력 제염 받을 때 됐잖아.”


하하하, 우리 귀여운 후배가 배가 고파서 그런지 폭력성이 높아지고 있네. 어서 밥 한 끼 멕여야겠다.


먼저 닭껍질교자를 준비하자. 대충 골든 리트리버만 한 동물인 코카트리스의 껍질을 통째로 쓸 수는 없으니, 먹을 만큼만 떼어내 만두피 사이즈로 토막 낸다.


반찬통에 들어있던 만두소를 꺼내 한 숟갈씩 넣고, 투덜거리는 후배의 입을 다무는 겸 해서 조리용 실로 잘 묶도록 시킨다.


후배가 일을 하는 동안, 미리 물을 받아둔 냄비에다가 준비해온 양념장을 풀고, 아까 코카트리스 간을 뽑아오면서 조금 잘라온 코카트리스 안심살을 좍좍 찢어서 투입. 닭고기를 진득하니 삶은 그 깊은 맛은 안 나오겠지만, 코카트리스는 육향이 진하니까 맛이 나오겠지 뭐. 시판 양념장의 힘 또한 믿어 보자.


야매 초계탕이 만들어지는 동안, 코카트리스 간을 간장 양념에 담궈 밑간을 한다. 간의 냄새를 뺄 시간은 없었지만, 터프한 우리 후배님이라면 고기 비린내 따위 견딜 수 있을 거다.


이윽고 냄비가 끓고 있는 옆에 프라잉팬을 두고 양파와 마늘을 볶는다. 부추는…… 지금 말고 완성되기 바로 직전에 넣는 게 좋으려나? 일단 지금은 절반만 넣자.


이윽고 달콤알싸한 향이 올라오면, 양념에 재운 코카트리스 간을 꺼내 먹기 좋게 썰고 팬에 투하! 타 버리지 않게 적 당히 돌려준다.


야매 초계탕 국물이 대충 잘 조립된 것 같으니 소면을 넣어준다. 후배는 아직 코카트리스껍질교자를 만드는 데 집중 중. 좋아, 딱히 태클 걸리지 않았어.


이제 한 손으로는 프라잉팬으로 간과 채소를 볶고, 한 손으로는 소면이 들러붙지 않게 삶으며, 두 눈으로는 후배의 눈치를 본다. 이것이야말로 이계종들의 게놈을 추출해 이식한 신인류, ‘헌터’의 우월한 공간 감각과 민첩함을 백분 활용하는 방법!



“선배, 다 했슴다만?”


“좋아! 이제 찜통에 넣… 아, 저거 찐만두가 아니라 교자였지. 거기 내 가방에서 프라잉팬 하나 더 꺼내줄래?”


바쁘다 바빠. 어디 삼두육완수라의 게놈 같은 거 없나?



“아, 이건 제가 하겠슴다.”


다행히 내게는 아수라는 없지만 한정된 조건에서 아수라 비슷해지는 후배가 있다.


그렇게.


남은 부추도 간양념볶음에 마저 넣고…… 소프트아이 식초도 초계국수 냄비에 두르고…… 교자를 감싼 껍질이 노릇바삭해질 때까지 구우면……



“완성!!”


“와아!!”


오늘의 저녁. 코카트리스껍질 교자, 코카트리스 간 부추양념볶음, 그리고 코카트리스 안심살을 고명으로 곁들인 소프트아이 식초 초계국수.



“으으. 안심살은 대체 또 언제 넣은 검까? 불안하게……”


“그런데 우리가 새삼 걱정할 거 있나? 몬스터 게놈을 아예 몸에 박아놓고 다니면서, 마력 제염까지 습관적으로 받는데.”


“이계의 모든 것에는 미지의 위험이 있다고 전제해야 하지 않슴까. 그런 걸 제외하더라도, 마치 번데기나 전갈 꼬치구이 같은 걸 먹어 보라고 누가 입에 들이대는 그런 기분이 듬다. ”


“전갈 맛있지.”


“이 사람 이쪽으로는 말이 안 통해…!”


그래서 안 머글꼬야? 라는 눈빛을 후배 녀석한테 초롱초롱 보내 본다. 한숨을 쉬더니, 일단 교자부터 하나 먹는 그녀.



“……!!”


“성공이구만.”


말해 뭐할까.


코카트리스는 야생동물답게 근육이 발달해서 씹는 맛이 쫀쫀하고 씹을 나위가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층이 풍부해 질기지 않고 육향과 기름맛이 오묘하게 잘 어울려진다.


괴수(몬스터)라는 거부감만 나처럼 떨쳐내면, 이렇게 후배 녀석처럼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위궈 마쉬쑴돠!”


“적어도 입에 넣은 건 삼키고 말해주겠니.”


미녀 입 안에 가득 든 음식물 같은 게 누구한테는 포상이겠지만 나는 아니란다. 차라리 그 미녀를 직접 한 입……



“어우, 나도 먹어야겠다.”


구울 게놈이 이게 문제야. 오래 굶으면 이 지랄이 난다니까? 괜히 성능충들만 쓴다는 기피 게놈, 혐오 게놈이 아니지.


아무튼 건전한 식사에 동참한다.


고소한 기름맛과 감칠맛이 입 안에서 터지다 못해 흘러넘치는, 바삭바삭한 교자.

그보다는 덜하지만 매콤한 양념과 씁쓸달달한 채소맛으로 매섭게 입 안 볼을 때리는 간 부추양념볶음.

그 둘로 너덜너덜해진 혓바닥의 정신을 번뜩 일깨우는 새콤시큼한 초계국수.



“역시 초계국수는 닭육수를 오래 삶았어야……”


“시끄러 후배님.”


가끔씩 이상한 디테일에 꽂히는 후배님을 선배의 권위로 제압한 후, 다시금 맛의 사이클을 돌린다.


잠시 뒤.



“푸하!! 잘 먹었슴다!!”


“살찌겠네 우리 후배님.”


“후후. 포레스트 엘프 게놈 사용자는 이 정도론 살 안 찜다.”


“그것도 진짜 적폐 게놈이라니까.”


어쨌든 게이트 내 사냥 임무도, 저녁식사도 클리어.


집에 돌아가야지.





다음날. 어쩌다 보니 우리 후배님 하고 또 큐가 잡혔다.



“……”


“선배.”


아니, 저쪽에서 나를 찾아왔다고 해야겠지.



“……”


“어이.”


아아 이것 참, 후배들한테 인기 있는 선배가 될 생각은 없었는데 말이야.



“……”


“야.”


“…… 쿠흡.”


“착검!”


“잠깐만, 총열에 대검 장착하는 건 좀 봐주렴.”


“선배! 때문에! 이게 무슨 꼴임까!!”


분노하는 후배의 얼굴은, 예쁘지만 그 기세만큼은 불교 사찰에서 본 사천왕 불화를 닮아 있었다.


그런데, 거기에 모나리자가 섞인. 눈썹이 깔끔하게 떨어져 있었거든.



“제 눈썹이 석화돼서 떨어졌잖슴까!!”


“음. 돌이켜 보니까, 초계국수에 넣은 안심살이 원인이었던 것 같아. 그건 즉흥적으로 넣기로 한 거라, 내 레시피 계획에는 그것까진 감안 안 했었거든?”


“아악!! 한 대만 때리게 몸뚱아리 이리 대시는 검다!!”


게이트밥. 아아, 게이트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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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위 짤은 대충 주워 옴. 문제시 삭제 함.


어째서인지 고독한 미식가로 시작했다가 던전밥으로 끝났다. 아아, 던전메시.


둘 다 재밌으니 티비에서 하면 꼭 챙겨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