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좆까."


내가 소설에 빙의하고 처음 한 말이었다.


일단 모든게 좆같다는게 그 당시 내 기분이었다.


아무래도 나는 좆됐다- 따위 같이 인생이 망해서 그런게 아니라 그냥 기분이 좆같았다.


뭐, 좋다.


이렇게 혼자 주절주절 씨부리고 있으면 아무도 내가 왜 좆같은지 이해를 못하겠지.


대충 어떤 상황이었는지 설명해보겠다.


다 마신 술잔을 쾅 내려두며 소리쳤다.


"여기 맥주 한잔 더요!"

"갑니다!"


술값을 잔뜩 벌게된 여관 주인이 희희덕거렸다.


나는 살짝 붉어진 얼굴로 그런 주인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양이 조금 적은 것 같지만··· 이 정도면 봐줄만 하니까.


금새 다시 내 목울대가 꿀떡거리고 생각이 이어진다.


일단 나는 후피집 소설에 빙의했다.


뭐, 그런거 있지 않은가.


["너는 우리 파티에서 추방이야!"(사실 파티에 사기 버프를 주고 있었음)(혹은 파티 행정의 모든걸 담당하고 있었음)(혹은 뛰어난 재능이 있었음)

"우리, 이혼해요. 당신 같은 끔찍한 남자랑은 살 수 없어요."(악명이 자자하지만 실은 전부 선행)(혹은 히로인을 위해 희생했던게 전부 오해와 착각으로 나쁜 일로 인식됨)]


따위의 것들.


아니 애초에 왜 그걸 몰랐으며 왜 파티에서 박해를 했고 왜 굳이굳이 쫓아낸 후에 오해를 풀려고 하기보단 혼자 끙끙 앓는지도 이해할 수 없다.


그래, 사실 앞서서 이해를 못한다고 하긴 했지만 그건 인간적인 관점에서고, 이야기적인 관점에선 솔직히 이해는 한다.


모두들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고 '와! 해피엔딩' 하고 3화만에 끝낼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무릇 이야기란 끊임없는 갈등의 파도가 몰아치는 배를 모는 것이고 사람들은 잔잔한 바다를 원하지 않으니 끝까지 인물의 소망을 들어주지 않는게 맞다.


그런데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하지 않은가.


어떤 후피집물을 보더라도 똑같이 드는 생각이 있다면 바로 '시발 말을 해! 말을 해야 알 것 아니야!!!' 다.


이야기를 하다보니 후피집물에 대한 불평불만으로 넘어갔는데 요지는 이거다.


나는 답답한게 싫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인공을 쫓아내버린 용사 파티가 나를 찾아와서 주인공을 향해 속죄하는 여행을 떠나자고 했을때 난 중지를 치켜들고 이렇게 말했다.


"좆까."


라고.


뒤이어 이런 말도 덧붙였더랬지.


"그렇게 미안하면 직접 찾아가서 사과하면 될 것 아냐? 왜 굳이 어둠 속에 숨어서 속죄니 뭐니 당사자가 알지도 못하는 일을 하려는건데? 난 그런거 안해. 꺼져."

"···그건."

"그래, 뭐 지은 죄가 너무 많아서 미움 받을까봐 두렵겠지. 그런데 네가 한 짓이 있고 걔가 당한 짓이 있는데 너는 시발 당사자 앞에서 사과 할 용기조차 없이 용서 받길 원하는거냐? 헛소리는 작작하고, 나는 안한다고 분명히 말했어."


그렇게까지 말하자 그들은 우울한 낯빛으로 떠났었다.


사실, 원작처럼 진행되려면 이렇게 해선 안되긴 한다.


원작에선 두 가지 파티가 존재했는데, 주인공이 원본 파티를 나가서 만든 【신생 파티】 그리고 주인공이 없는 【구 파티】다.


구 파티는 보통 신생 파티의 뒤를 따라다니며 더러운 일이나 잡다한 일, 그리고 주인공에게 위해가 갈 만한 인물을 처리한다.


보통 주인공이 한 에피소드를 마무리하면 이후에 막간으로 시점 전환을 통해 보여주는게 일반적 진행이었지.


허나 가끔 구 파티의 일원 중 누군가가 큰 위험에 빠지게 되었는 일도 있는데 그러면 구 파티는 '우연히' 그 곳을 지나가던 주인공에게 구원받고 차마 사과조차 하지 못하고 도망가는게 주요 역할이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나는 또라이가 아니었다.


꿀꺽꿀꺽.


술을 다시 한번 다 마신 내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여관 주인이 손을 싹싹 비비며(실제로 비비진 않았다) 내게 물었다.


"아이고, 올라가서 쉬시게요?"

"···그래."

"오늘 이렇게 많이 사주셔서, 여기. 작지만 서비스입니다."


그는 내게 육포 조각을 내밀었다.


잠시 육포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나는 그것을 집어 들고 위층으로 향했다.


삐걱거리는 나무 계단의 소리를 배경음 삼아 사색을 이었다.


사실 그랬다.


내가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저 행렬에 끼여서 사서 고생을 하고 이상한 개연성으로 구원 받는 일을 반복하라고?


절대 사절이다.


게다가 구 파티엔 내가 없어도 된다.


엄밀히 따져서 없어도 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도적이고 그런 내 능력은 대개 '더러운 일'을 해결할때 아주 유용하게 사용됐다.


하지만 어차피 구 파티는 마왕을 잡는데 그리 크게 관여하지 않는다.


결국 내가 본건 후피집이니 만큼 완결까지 보지는 못했다.


한 130화 정도?


그렇지만 대충 어떤 느낌인지는 안다.


결국 마왕군 간부라거나 세계의 위기 따위는 주인공과 【신 파티】가 전부 해결한다.


구 파티는 주인공의 뒤에서 자잘한 문제를 해결하거나 그런 심각한 문제를 자기들끼리 먼저 해결해보려다 좆되고 그런 파티를 주인공이 열심히 구해주는 내용이 서사의 주요 내용이었으니.


그래! 사실 구 파티는 없어도 되는 존재들 이었던 것이다!


가만히 있으면 어련히 주인공이 알아서 세계를 구할텐데 내가 미쳤다고 구 파티를 따라다니며 사서 고생을 하겠는가?


그러니까 나는 직접 주인공에게 찾아가 지난 일을 사과하고 받아주면 받아주는 대로 안 받아주면 안 받아주는 대로 이 세계에서 살아갈 생각이었다.


헌데···.


탁.


내가 여관 주인에게 받은 육포 조각을 검지로 튕겨서 주인공의 이마를 맞췄다.


그러자 '아얏!' 하는 소리나 내는 주인공을 보며 내가 한숨을 쉬었다.


"야, 가라고. 왜 자꾸 따라오는데?"


그, 아니. 최근에 그녀라는 것을 알게 된 주인공이 말했다.


"그야··· 회귀 전에 가장 뛰어났던 사람은, 당신이었는걸요."


제발.


나는 마왕이랑 싸우고 싶지 않다고.


꺼져라 전부 다.


안 싸울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