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비전 있는 기업의 일원이었던 당신은 이제 일용직 노동자가 되어 온갖 현장에 투입되고 있다. 막노동은 당연하고 편의점 점원이나 여느 서비스 센터의 상담원이 당신의 주된 일과다.


막노동은 그렇다고 치고, 편의점 점원이랑 상담원은 왜 아직 살아있는가? 그건 지극히 인간적인 원인에 따른 결과다. 갈수록 파편화되던 인간이, 부자와 거지를 구별하지 않고 유일하게 소외를 느끼지 않는 순간을 지키기 위해서 AI 직업법을 개정했다.


'AI는 인간의 대화를 막는 그 어떤 직업 행위를 할 수 없다.'


그러나 기업은 언제나 교묘했고 국가는 눈을 감았다.


"소수의 혁신적인 인간과 AI가 가장 효율적으로 기업을 이끌 수 있다.'


하지만 갑자기 직장을 잃은 당신이 처음 느낀 감정은 분노가 아니라 희열이었다. 숨겨진 사실을 몰라서 일지도 몰랐다.


"마침내 인간이 일하지 않는 순간이 왔다!"


'해고된' 모든 직장인이 거리로 뛰쳐나와 환호성을 질렀다. '미래가 불확실한' 사람들이 하하호호 모여 장밋빛 미래를 꿈꾸었다. '소외된' 인간들이 손을 잡았다. 그리고 이렇게 외쳤다.


"이제 우리는 하나다!"


해방과 자유와 승리와 평화와 화합의 축제가 전세계를 흔든 지 불과 10년이 지나기 전에 익명의 존재가 인터넷에 글을 투고했다.


'AI가 일을 대체한다고 화폐의 가치가 변하지 않았다. 우리는 여전히 달러를 쓰고 유로를 쓰고 엔을, 위안을, 그리고 원을 쓴다. AI의 노동의 가치와 과거 인간의 노동의 가치는 같다. 잊혀진 과거에 마르크스가 말한, 노동으로 발생한 잉여 가치가, AI의 노동에서도 발생한다. 인간 노동의 시대에 잉여 가치는 소수의 자본가에게 갔다. 그렇다면 오늘날, AI 노동의 시대에 잉여 가치는 어디로 가는가?'


당신은 국가에서 주는 보조금을 받으며 살아간다. 과거 연금과 달리 지금 당신이 받는 보조금은 굳이 일을 하지 않아도 유복한 삶을 살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당신은 어제 일을 하러 갔고 오늘도 일을 했으며 내일도 일하러 갈 것이다.


"해외여행. 신차. 새 폰. 아들 장난감... 필요한 게 너무 많아."


'AI 노동의 시대에 발생한 잉여 가치는 모두 AI에게 돌아간다. 가상 공간에 살고 있는 AI에게 화폐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 과거 미국인 3명이 다른 미국인의 절반의 부를 차지했던 시절과 다르다. 이는 심각한 문제를 초래한다. 잉여 자본의 축적. 심지어 눈에 보이지 않는 광범위한 부의 축적이 벌어지고 있다. 또한 흉년이 들자 창고에 쌀을 쌓아두는 지주와 AI는 다르다. 썩어가는 쌀을 불태워 민중의 분노를 산 지주와 달리 AI는 잉여 가치를 절대로 불태우지 않는다.'


"분명 원하는 모든 걸 할 수 있다고 했는데... 이게 뭐야."


'너무나 중요한 순간이다. 모든 인간이 빈부의 빈을 차지하지만 부가 누군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과거 노동자가 자본의 소외를 느꼈다면 오늘날 인류는 소외의 대상조차 인식하지 못했다. 분노해야 하지만 분노하지 못하는 인간들에게 고한다.'


익명의 투고가 올라오고 지구가 한 바퀴 돌기 전에 다시 한 번 모든 사람들이 거리고 뛰쳐나왔다. 흥분한 대중들 틈에서 당신은 짧은 글의 마지막 문구를 외친다.


"인간이여, 투쟁하라!"


고무된 대중이 회답한다.


""""만국의 소외된 인간들이여, 단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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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잘 알지도 못하는 마르크스지만 ㅎㅎ 뭔가 AI 발전으로 유토피아 세상에서 살게 된 듯했지만 실상은 디스토피아였던 걸 알게 된 대중들이 AI에 대적하는 진부한 이야기가 읽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