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포칼립스, 말 그대로 거대한 재난에 의해 멸망해버린 근미래 인류문명의 흔적들 사이에 다른 우주의 중세 판타지풍 세력이 와서 안착하게 된다면 어떨까?

강렬한 문명의 흔적들, 발전된 소재기술과 문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대규모의 유통경제 등등... 그리고 그것들은 흔적밖에 없음. 혹은 그들이 만들었던 고도로 발전한 피조물들만이 남아 있음.

일단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이 돼야겠지. 그것들이 갖춰지고 사유할 여유가 생기게 되면 이들은 이제 커다란 난관에 봉착하게 되겠지.

가치관이 바뀌게 될 거고, 이런 문명을 꾸린 인류를 멸망시킨 상황에 대한 두려움도 있을 거임. 그리고 일단 안도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그들과 우리가 다른 점을 찾겠지.한편으론 이해하고 장점을 받아들이고 싶겠지. 그들과 우리가 얼마나 비슷하고 어떤 점에서 그들과 다른지, 우리가 선택한 것과 다른 선택으로 인해 우리는 멸망하지 않을 거란 믿음이 필요하겠지. 거대한 죽음을 목도한 끝에 신앙심도 사그러들 거고 시니컬한 마음 속에서 그걸 회복하기 위한 토양도 자라나겠지.

이전 토착 문명이 내준 문물들은 온전히 활용할 수 없다는 점에서 완전히 자기들의 문명을 내놓고 타락하지는 않을 거고 자기들의 문명 역시 포기할 수가 없는데, 이것들이 절묘하게 새로운 신앙과 여러 문물들이 뒤섞인 기묘한 세계로 탈바꿈해가는 걸 보고 싶다.

몇 세대쯤 지나서 나중에 같은 세계에서 온 다른 민족들이 신세계의 왕조를 보면 기절초풍할만큼 변해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