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에 주인공이 시집 하나만 가지고 소환된 거지.

시집은 한 손으로 들만한 하드커버인데, 거의 세상의 모든 시가 들어있음.

당연히 처음에야 이게 뭔가 하지만 숲에서 깨어난 후로 이세계인 것을 알고는 엄청 무서우니 현실의 문물인 시집에 집착하고, 거의 항상 시집을 읽기 시작함.

그 결과 점점 작가의 정서와 주제를 정확히 짚어낼 수 있게 되지만, 정말 유명한 몇 가지 빼곤 ‘이해’하지는 못함.

그 과정에서 손에 잡히는 일들은 전부 하던 와중에 용사파티에 끼게 되고, 괴물들에게 당하기 일보직전의 상황에 처함.

그 상황에서 시집이 펴지고, 시편 23장의 

‘나 비록 음산한 죽음의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내 곁에 주님 계시오니 무서울 것 없어라. 막대기와 지팡이로 인도하시니 걱정할 것 없어라.’

라는 구절이 펴지고, 주인공이 그 구절을 소리 내 읽자, 엄청난 빛과 함께 방어막이 전개되고, 그 틈을 타 파티는 무사히 후퇴함(아예 포위된 상태에서 괴물들이 그 방어막 자체를 무서워한다는 듯이 표현할 수 있을 듯).

그 이후로는 수많은 시를 보고 읽으며 효과들을 알아내기 시작하고 유명하고 더 사람들을 감동시킬수록 효과가 강해진다는 것을 알아냄.

 

예를 들어 향수병에 힘들어하는 동료에게 “계절이 지나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로 시작하는 별 헤는 밤을 들려주면 점점 울먹이다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쯤에는 통곡하고, 그 이후엔 향수병이 많이 치유되고 그런 거지.

 

당연하게도 부작용도 있는데, 더 효과가 클수록 화자의 심정에 대비하게 됨.

‘별 헤는 밤’으로 예를 들어보면, 그렇게 주인공의 품에서 동료가 통곡하는 동안, 주인공은 이정도밖에 하지 못한다는 부끄러움과 자기혐오를 느끼는 이런 식이지.

 

그렇기에 사제식으로 파티에서 싸우지만 당연하게도 공격적인 것들을 사용할 수는 있음.

예를 들어 이상의 ‘거울’ 같은 것으로 눈을 보면 각종 디버프에 걸리는 적을 거울이 가득한 곳에 가둔다든가, 적의 수가 많으면 오감도 1형으로 서로를 무서워하게 하고, 그들 중 몇 명을 괴물로 만들어 서로서로 죽이는 학살극을 만들 수도 있음.

 

어느날 주인공은 시집 뒤의 아무것도 쓰여지지 않은 곳을 발견하고, 재미삼아 그곳에 시를 끄적임.

그리고 실전에서 그 시를 읽자 엄청난 힘이 적들을 깔아뭉개고, 그걸 기점으로 주인공은 서서히 미쳐가기 시작함.

하루종일 시집 뒤에 시인지 조헌병 환자의 낙서인지 모를 글자를 써내리고 점점 밥도 굶기 시작하고 괴물들이 불쌍해질 정도로 철저히 부시기 시작함.

그리고 괴물 군락 하나를 전부 다짐육으로 만든 날, 용사 일행은 주인공에게서 시집을 빼앗음.

 

당연히 주인공을 발광하고, 용사는 그를 잠깐 그의 방에 가둠.

며칠 동안 방의 모든 가구를 때려 부수고 나서야 주인공은 그 막강한 힘을 대가로 그의 정신을 갉아먹었다는 것을 깨닳고 밖으로 나와 시집의 뒤편을 찢어버리고 그 페이지를 불에 넣고는 다시 여행을 이어가는 그런 이야기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