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개의 방어선을 기어이 돌파하고

수많은 마왕의 정예병들을 하나하나 물리치고

마왕의 앞에까지 당도한 용사는 

마왕의 수장들과 격렬한 사투를 벌이며 끝끝내 그들의 가슴에 검을 꽂았다.


"죄송...해요... 마왕님...."


"...."


"제가....곁에 있어드려야 하는데... 마왕님을 또 홀로 두면 안되는데...."


"....걱정마라."


마왕은 애절한 목소리로 눈물을 흘리는 그녀의 눈을 부드럽게 덮어줬다.


"반드시 이기마. 내가 꼭 바꾸도록 하마."


"....죄송...합..."


측근은 그 말을 끝으로 발끝부터 서서히 먼지로 변해 흩어졌다.


홀로 남게 된 마왕의 힘은 용사가 그동안 싸워왔던 모든 적보다도 압도적인 강함을 보여줬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동료와 함께하고 여신의 축복까지 받은 용사들의 합공에 마왕이라 할지라도 자츰 밀리기 시작하며 온 몸에 상처가 생겨났다.


갑옷은 부숴지고 무기는 부러지며, 마력 또한 빠르게 고갈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왕은 그 고고한 직책과는 맞지않는 처절하다고 말할 수준으로 격렬한 반항을 보이며 용사일행에게 달려들었다.


"크아아아악!!!"


"아저씨!!!"


용사 일행 중 전위를 담당하는 전사가 큰 공격을 빗맞히고 틈이 생긴 것을 놓치지 않은 마왕은 그에게 달려들어 목 부근을 물어뜯어 마치 짐승처럼 목을 비틀어 몸과 머리를 분리 시켰다.


피분수를 뿜으며 쓰러진 전사의 몸퉁이를 발로차 던져버린 마왕은 물고있던 전사의 머리를 마법사 쪽으로 집어던졌다.


아까까지 살아 숨쉬던 동료가 고통에 피눈물을 흘리는 표정이 생생히 새겨져있는 목만 남은 시체로 변한 탓에 얼어붙어있던 마법사는 별다른 반항을 하지 못했고,

그대로 머리를 부딪혀 풍선 터지는 소리와 함께 즉사했다.


"마와아아아앙—!!!"


한순간에 십년을 동고동락해온 동료 두명이 죽어버리자 용사 또한 목소리에 분노를 담아 소리쳤다.

그의 감정에 호응하듯 성검에서 빛의 검기가 줄기줄기 솟아 얼랐다.


기함하며 마왕에게 달려든 용사는 그의 머리를 반으로 쪼갤 기세로 검을 내리쳤고, 마왕은 피하거나 반격하는 대신 용사 쪽으로 달려들었다.


써컹-!


용사의 검격은 마왕의 머리에 닿지 못했으나 그의 왼팔을 잘라냈다.

팔이 잘렸음에도 고통에 인상만 찌푸릴 뿐, 멈추지 않은 마왕은 그대로 용사를 지나쳐 뒤 쪽에 있던 성녀에게 남은 한팔을 휘둘러 가슴팍을 관통시켰다.


"커어...."


"안돼애애!!!"


심장이 터져버린 성녀는 용사 쪽으로 팔을 뻗어 몇차례 경련하다가 피를 토하며 그대로 축 늘어졌다.

용사는 피눈물을 흘리며 마왕을 노려봤고, 마왕 또한 지친 표정으로 용사를 마주봤다.


"악독한 놈...! 마왕!! 절대로 용서 못한다! 내 동료의 원수여!"


"..."


"무고한 생명을 해쳐서 무엇을 얻겠다는 것이냐!!"


"무고한...생명?"


용사의 말에 마왕은 입술을 짓씹으며 그를 노려봤다.

분명이 힘이 고갈되어 있을탠데도 처음과 다름없는, 아니 처음보다도 흉흉한 기세가 전신에서 뿜어져 나왔다.


"네놈들이 지금까지 죽여온 마족들은 죽어야하는 생명이었단것이냐?"


"마의 존재를 멸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우린 걸어오는 싸움에만 반격했을 뿐, 우리가 직접 침공한 경우는 단 한번도 없었다."


"네놈들의 존재 자체가 이 세계의 해악인 것이다! 마족이 있기에 마수가 존재하고, 그 것들이 무고한 민간인들을 죽이지 않더냐!"


"마수는 우리와 다른 별개의 존재다. 그것들은 이성 없이 돌아다니는 괴물일 뿐. 어찌 지성도,감정도 존재하는 우리와 비교를 한단거냐!!!"


마왕은 격정을 터트렸다.


"네놈은 알고있더냐? 이 세계가 수 없이 반복되가고 있다는 것을."


"무슨 개소리..."


"마왕의 죽음을 트리거로 이 세계는 멸망과 탄생을 반복한다. 네놈이 나를, 마왕을 죽임으로서 넌 신계로 불려가 신들의 충직한 장기말이 되지. 그 후에 남은 세계는 어찌 될 것 같나?"


"...."


마왕은 비릿한 미소를 짓는다.


"또 다른 장기말을 키워내기 위해 다시금 세계는 재조정 되기 시작한다. 기존의 주민들의 기억을 지워내고 죽은 자들을 대신해 새로운 존재를 만들어내고, 마왕과 용사 또한 다시 탄생하지."


"무슨..."


"나도 본래 그렇게 죽고 다시 만들어지는 존재였지. 하지만 무슨 일인지 나만큼은 세계가 다시 탄생하고 지워지는 것을 생생히 기억하며 기억이 계속해서 유지되고 있다."


마왕은 잘린 팔을 지혈하고 마력을 피워올렸다.


"네놈이 나를 죽이게 되면 이 세계의 주민은 빠짐없이 멸망이란 과정을 겪게 된다."


"그 것을 막기위해 평화롭게 왕국과 협정을 맺었으나 그때마다 신들이 개입해 용사를 탄생시켜 전쟁의 불씨를 피우지."


"신들의 장난감이여. 이래도 내가 침략자인가? 진정으로 이 세계를 멸망시키는 존재가 누구인 것 같은가?"


거대한 마력의 폭풍이 마왕을 휘감고 소용돌이친다.


"옆에 있던 측근들이 다시 눈을 뜨면 처음보는 존재로 변해있고, 정을 쌓아 온 인물들은 오로직 과거의 내 기억속에만 존재하게 된다."


"하루 아침에 가족과,애인과,친구와 함께 원치않는 멸망을 겪고 탄생하기를 반복하는 이딴 미친 세상일지라도."


"지금을 살아가는 이들을 위해 난 네놈을 죽이고 신들을 죽이고 말것이다."


마왕은 이 세계를 지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