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전지전능의 역설은 일종의 러셀의 패러독스나 거짓말쟁이 역설임.

명제가 자기 자신을 포함하기 때문에(전체라는 말 때문에) 발생하는 역설로, 이에 대한 해답 역시 중세 교부들이 대가리를 짜내가며 만들어냄.


예를 들어 플라톤주의를 흡수한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의 전지전능함을 최고선, 즉 이데아 개념을 가지고 와서 다루고 있고, 그렇기에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들을 애초에 할 수 없다고 선언함.

일종의 러셀의 패러독스에 대한 러셀의 해결방식인 유형 이론을 도입했다고 볼 수 있음.


그리고 토마스 아퀴나스는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나가서, 주어- 술어 분석을 통해서 존재가 뭔지를 규정하고 그것의 영역이 어디까지인지를 한계지음으로서 전지전능의 역설을 우회해감.


그리고 이러한 언어철학적 사고는 근대에서도 지속되어서 비트겐슈타인은 러셀의 역설을 함수는 자기의 독립변수가 될 수 없다는 방식으로 전지전능의 모순을 회피하고(재귀적 문장 자체를 막아놨기 때문에 전지전능은 자신의 본질을 역행할 수 없음) 현대 집합론은 아예 멱집합이라는 개념으로 확장해나갈 뿐, 전체 집합을 정의하지 않는 방식으로 우회해갔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