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시피 장 발장은 약자를 탄압하는 부패한 프랑스 사회에 굴복하여 죄인이 되었고, 교도소에서 차별적 접촉이론의 산증인이 되어 진짜 악인으로 전락해버려.

그런 장발장의 폭주는 그를 유일하게 받아준 미리엘 주교의 유일한 재산인 은식기를 훔치는 배신으로 이어지는데, 오히려 미리엘 주교는 그것과 은촛대를 선물하며 이리 말해


"장 발장, 나의 형제여, 그대는 이제 더 이상 악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선에 속한 사람입니다. 내가 그대에게서 산 것은 그대의 영혼입니다. 나는 그대의 영혼을 어두운 생각과 영원한 형벌의 영(靈)으로부터 꺼내어 하느님께 드리나이다."


미리엘 주교는 자신의 유일한 재산과 자비를 그에게 선물하며, 죄스러운 삶에서 그의 영혼을 사 빛의 세계로 인도해.

이렇게 구원받은 장 발장은 소년의 은화를 본의아니게 빼앗았다는 이유로 다시 범죄자의 신분이 됨으로써 진정으로 새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해.


하지만 난 장 발장은 진정으로 구원받았다 할 수 없다고 봐.


우선 미리엘 주교가 뭐라고 했을까?

"그대는 이제 더 이상 악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선에 속한 사람입니다. "

이렇게 말했지?

미리엘 주교는 범죄를 악으로 규정하였다는 소리야.

미리엘 주교는 장 발장이란 사람의 영혼을 긍정한거지, 그의 범죄도 긍정한건 아니라는거지.


하지만 장 발장은 어떤 선택을 하였을까?

장 발장은 본의 아니게 빼앗은 은화를 돌려주려고 반 쯤 미친채로 온 거리를 휘저어.

하지만 결국 찾지 못하였지.

이로써 그는 다시 죄인으로 전락하였어.


물론 과실범까지 극악한 처벌을 하고, 죄인에게 참회의 기회도 제공하지 않으며, 약자를 외면하고 탄압하는 프랑스 사회가 궁극적으로 장 발장을 죄인으로 만든거야.


하지만 장 발장이 죄를 외면하고 도피한 것은 정의로운 행위였을까?

물론 장 발장이 극악한 악법에 저항할 수단이 없다는 점에서 장 발장의 도주를 막는 것은 너무 극악하다고 보는 시점이 있을거야.

애초에 장 발장은 그저 은화를 밟았을 뿐, 은화를 빼앗을 의도는 전혀 없었고 말이야.

오히려 죄인이라는 이유로 도둑으로 결론내리고 수배하는 건 무죄추정의 원칙에 위배될 지도 모르지.

더군다나 팡 틴의 사례처럼 비례성의 원칙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프랑스 법치체제에서는 말이야.



하지만 난 이것은 확신할 수 있어. 

장 발장이 도피하게 만든 것은 프랑스의 책임이지만, 침대에서 죽은 것은 장 발장의 잘못이라고 말이야. 


나중에 자수하여 수감된 장 발장은 와프리지(코제트)를 구하기 위해 탈옥하여 와프리지를 보호하기 위해 도피생활을 이어가.

물론 본인의 이기심이 아니라 한 영혼을 구하겠다는 동기로 행한 일이야.

실제로 그는 평생을 자선과 와프리지를 위해 살아갔고.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자베르가 그를 놓아준 것을 자신이 용서받았다고 자의적으로 판단하여 침대에서 죽은 것은 그를 영원히 탈옥범이자 흉악범으로 전락시킨 감옥이라고 봐.


적어도 탈옥 당시에는 와프리지를 지킨다는 명분이라도 있었지만, 이 시점에서 와프리지는 이미 마리우스와 결혼하여 장 발장을 대신할 보호자가 있었어.

말하자면 장 발장은 이제 역할을 다 했다는거지. 

다르게 말하면 더 이상 도피를 이어갈 필요가 없다는 소리야. 


여기서 장 발장은 다시 도피를 선택해.

탈옥이라는 죄를 마주하지 않고 말이야.


물론 장 발장은 비록 탈옥범이지만 평생 자선을 위해 살았는데, 감옥에서 죽으라는건 무리한 폭력이 아닐까 하고 생각할지 몰라.

하지만 비록 독을 탄 포도주같은 악법을 섬기는 독사같은 판사의 판결에 따라 감옥에서 죽으라는 선고를 받았을지라도 탈옥과 도피는 죄악이라는 것은 변치않아.


사실 따지고보면 딱히 부당한 판결도 아닌게, 이미 장 발장은 밀렵과 불법무기소지, 기물파손과 절도로 형을 사는 와중에 여러차례 탈옥을 시도하여 가석방 신세인 상황임에도 장 발장에 의해 재산피해를 입은 사람이 실존했어. 

장 발장이 참회하고 있으며 부당하게 낙인이 찍혔고 말고를 떠나, 이미 범죄자로 판단할 근거는 충분하다는 소리야.

그리고 당시로써는 적법한 재판을 거쳐 징역이 선고된거고.


물론 이때 탈옥하지 않았으면 불쌍한 와프리지는 노예처럼 살다가 냇가에서 홀로 쓰러져 눈을 맞으며 죽어갔겠지.

그렇다면 와프리지에 대한 책임이 끝난 시점에서 장 발장은 자수를 했어야 했다는거야.


"그대는 이제 더 이상 악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선에 속한 사람입니다. "

장 발장은 이제 악이 아닌 선에 속한 사람이니까.

자선으로 죄를 청산할 수 있다는건 그저 장 발장이라는 범죄자의 자기합리화에 불과하지, 실제 죄악은 청산되지 않았어.

이로써 장 발장은 영원히 탈옥범이자 도피범이고, 자선으로 자신의 죄를 합리화하려는 파렴치한 인간으로 남은거지.


물론 장 발장이 준 빵으로 연명한 고아들과 빈민들이 살아남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야.

하지만 끝까지 죄를 외면하고 도피하다, 자신의 죄를 받아들이고 감옥에서 죽은 남들과는 달리 침대에서 죽는 특권을 누린 것 또한 사실이고.


그렇기에 난 장 발장이 진정으로 구원받아 선에 속하지 못했다고 봐.

만일 그가 마지막 순간에 죄를 받아들였다면 진정으로 구원받았다 볼 수 있겠지만, 그는 그러는 대신에 끝까지 죄와 책임을 회피하며 합리화하고 도피했으니까.


이게 내가 장 발장이 성자나 구원받은 자라고 생각하지 않는 이유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