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똥겜에 빙의하고나서 매일같이 날아본 익숙한 공역이지만 오늘따라 낯설기만하다.


끝없이 펼쳐진 푸른 하늘도, 로브를 헤집는 바람도 평소와 다를바 없지만 빗자루를 잡은 두손은 떨림은 멈추지가 않는다.


평소와 다른 것은 두가지 뿐, 첫번째는 각자 병과에 따른 무장을 갖춘채 날고있는 동료들이었으며 두번째는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거대한 고래였다.


하늘을 나는 고래. 오비스


내가 빙의한 천공섬 아스테라의 튜토리얼 보스로 물리 공격을 무효화 시키는 보호막을 전투내내 두르고 있으면서도 마법 저항력이 터무니없이 높은 외피를 가졌으며, 방어에 특화된 소환수를 불러내는 등 답도없이 튼튼한 대신 공격력은 낮은 편이기에 나를 비롯하여 갓 성인이된 병사들의 첫 실전 상대로 적합하다 여겨지는 마수.


저것을 토벌하기위한 공략법을 알고있기는 하지만 굳이 알릴 필요는 없다. 애초에 게임에서 알려주는 공략법 자체가 군대가 몇백 몇천번이나 격퇴하면서 쌓아올린 데이터였으며, 이 전투의 지휘관 역시 오비스를 몇번이고 격퇴시키는데 성공한 베테랑이니..


-돌격병 돌격! 수호자는 회수준비!


우리의 모습을 숨겨줄 구름이 바람에 밀려나가는 것과 함께 머릿속에 직접 명령이 떨어졌고 나를 포함한 10명의 수호자가 고래보다 살짝 낮은 방향으로 나름 빠른 속도로 비행을 시작하였으며, 짝을 이루고 있던 돌격병들은 고래를 향해 쏘아진 화살처럼 고래를 향해 일직선으로 돌격한다.


우리를 인식한 고래의 울음소리와 함께 거센 우박이 쏟아졌고, 방어의 주문을 외우며 고래의 공격에 대비하던 우리와 달리 목숨을 도외시하고 전력으로 돌격하던 돌격병 중 두명이 우박에 맞고 빗자루에서 떨어진다. 짝을 이루던 수호자들이 그들을 회수하기 위해 급강하를 시도하지만 두명의 돌격병 중 한명은 머리를 맞은 것인지 활공의 주문을 외우지 못하였고..


이미 사망이 확실해진 돌격병에서부터 고개를 돌려 나와 짝을 이룬 돌격병을 눈으로 쫓지만, 그녀는 이미 누구보다도 빠르게 고래의 외피에 그녀의 팔목만한 굵기의 철창을 박아넣고 고래와의 충돌을 피하여 상공을 향해 급선회하고 있었다. 첫 실전이기는 하지만 돌격병의 네임드 캐릭터다운 신들린듯한 돌격이었다.


10명의 돌격병이 목숨을 도외시하고 돌격한 끝에 고래에 꽂아 넣은 철창은 4개.


우박에 두명이 추락했으며, 4명은 고래가 보호막을 두르기 전에 도달하지 못하였고, 철창을 박아넣은 돌격병 중 한명은 선회하는 타이밍이 늦었기에 돌격하던 속도 그대로 고래와 부딪쳐서 피를 담은 물풍선이 터진것 같은 자국을 외피에 남겨두었다.


오비스와의 전투돌입시 첫턴을 시작하기 전에 들어가는 특공의 성공률과 사망률은 신입 돌격병 기준으로 각각 2할과 3할 정도이며 무엇보다 네임드 캐릭터가 살아남았기에 게임이었다면 나쁘지 않은 결과라 여기고 리트를 멈췄겠지만, 피와 살을 가진 사람이, 함께 웃고 떠들었던 친구가 피떡이되어 사망한 광경을 보면서 이게 나쁘지 않은 결과라 여길수는 없었다.


-폭격병! 뇌격!


내 마음은 처음 겪는 목격한 동료의 죽음에 심란해졌지만 셀수없이 반복해오면서 몸에 각인시킨 훈련의 성과는 그런 마음 상태와는 별개로 당연하다는 듯이 보호의 술식과 염동의 술식을 짜내었고, 폭격병의 짜낸 번개의 술식이 고래의 몸에 박힌 철창을 향해 내려꽂히는 탓에 고래의 어그로가 본대쪽으로 쏠린 사이에 나의 짝을 무사히 회수할수 있었다.


"고마워! 마침 빗자루가 우박을 맞고 박살나서 곤란했었거든! 듣고있어? 듣고 있으면 뭐라고 대답이라도 좀 해줘!"


누구보다도 빠르게 돌격하고, 그 후에는 공격을 피하느라 바빴는지라 동료의 죽음을 눈치채지 못한것인지, 아니면 첫실전의 두려움을 흥분으로 치환시킨건지 어딘가 신나보이는 그녀의 말투와 중량을 최대한 줄인 돌격병의 무장상태 때문에 선명히 느껴지는 가슴의 감촉으로 인해 심란함은 몇배로 커져만가지만, 그래도 주문을 유지시키거나 지휘관의 지시에 반응하는데에는 지장이 없었다.


뇌격을 흘려넣기 위해 박은 철창들이 기댓값보다 잘 버텨준 덕분에 두번째 돌격은 필요하지 않았으며, 오비스가 생명의 위협에 느끼지 않는 선으로 데미지를 입힌것인지 소환수를 소환하는 발광 패턴에 돌입하지 않고 도주한 덕분에 내 등뒤에서 끝없이 재잘대는 말광량이도, 나도 목숨을 건진채 아스테라로 귀환할수 있었다.


토벌 타이밍이 늦기는하더라도 튜토리얼에 나오는 보스답게 리트요소가 돌격병의 특공 성공과 생존, 철창이 뇌격을 기댓값 이상으로 버틸것, 발광패턴 돌입전에 도주하도록 데미지 조절하는 것 밖에 없었다고는 하지만, 게임과는 달리 세이브로드를 할수없는 현실에서 목숨을 건 전투는 상상 이상으로 정신을 갉아먹었고, 귀환한 이후에 내가 할수있었는 것은 나와 달리 기운이 넘치는 말광량이가 대신 가져다준 저녁을 맛도 느끼지 못하고 뱃속에 우겨넣고 신발도 로브도 벗지못한채 쓰러져 잠드는 것 뿐이었다.


용사의 탄생이 앞으로 5년. 입대할때까지는 20년. 최종보스를 토벌할때까지는 22년인가? 그때까지 목숨을 건 전투를 이어나가야한다고?


제작자놈이 니들이 그렇게 좆빠지게 리트하면서 안깼어도 어차피 용사가 최종보스까지 때려잡아준다는 트윗을 쌌을때 욕을 박는게 아니었는데.. 씨발



블아 대결전 리트하다가 좆같아서 떠올린 소재인데 이런 느낌으로 누가 써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