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로 순식간에 고개를 처박은채로 핸드폰을 보던 머리를 들어 소리를 들었던 앞을 바라보았다.

한 남자가 있었다.

그래, 있'었'다.

그는 골목길의 달빛에 녹아들듯, 잠깐 흐려지듯, 아주 잠깐, 1초간 점멸하더니

그대로 사라졌다.

그대로, 그가 입엇던 옷, 안경, 들고있던 핸드폰까지.

주변 어디에서도 찾아볼수 없도록 완전히 사라졌다.

이후 때마침 먹구름에 달빛이 가려져 그가 서있던 자리가 어두워지는 것은 마치 작위적이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나는 그대로 멈췄다.

...

'로그아웃'?

...

이 단어가 무슨 뜻인지 모를 사람이 있을까.

아니, 있더라도 최소한, 나는 아니었다.

나는 완전히 이해했다.

그는 '로그아웃'했다.

'그'는 로그아웃했다.

그는 '로그아웃했'다.

'그는' 로그아웃했다.

'그'는 '로그아웃'했다.

'그는' '로그아웃'했다.

'그는' '로그아웃했'다.


이것이 무슨 뜻인지. 나는 알았다.


그러나 나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전혀, 전혀.

'그'는 '바깥'인가?

그랬다.

그럼 '나'는?

'나'도 '바깥'인가?

아니면,

'나'는 '안에서'만들어졌나?


누군가 대답을 해주길 바랬다.

누구라도. 내 안에서라도, 아니면 다른 누군가라도.

그러나 밤중의 이 골목에는 달빛과 심야의 옅은 전구 뿐이었다.

쏴아아

먹구름을 기어이 울음을 토해냈다.

그러나, 나 대신 울음을 토하지 않았다.

그것은 가짜였다. 이 모든게, 구조적으로 조성된 무언가였다.

'나'는?


철퍽


나는 그대로 그곳에 주저앉았다.

내리는 비에 바쳐지던 윗옷과 다르게 치마 밑의 속옷마저도 완전히 물에 잠기고 말았다.

그러나, 이미 내 머릿속은 한참 이전에 물 속에 잠기었다.

그렇게 습도가 방울져 우수수 내리던 밤이 지나고, 분명 만들어졌을 것이 뻔한 태양이 다시 고개를 처들어 내 얼굴에 비출 때까지도,

나는 눈을 깜빡이는 것 외에는,

닫히지 않는 입을 닫아도 금세 열린 채로 돌아오는 입 외에는,

그 자리에서 아무것도 움직일 수 없었다.


문득 정신차리니 웅성거리는 소음이 들려왔다.

나를 향해 사람들 몇 명이 다가왔다.

밤에내린 비에 쫄딱 젖은 채 골목길 한가운데 주저앉아 있는 여자애, 절대 무슨일이 있어 보이겠지.

나는 그제야 외칠 수밖에 없었다.

"로그아웃, 로그아웃!"

다가오던 사람들이 멈칫,하더니,

"또, 미친 사람이 나와버렸구만..."

"에잉, 어쩌다 젊은 처자가 또..."

"이런... 안됐구만.. 빨리 가세나. 살사람은 살아야지."

그대로 등을 돌려 가버렸다.

나는, '바깥'이 아니었다.

'나'는, '로그아웃'하지 못했다.

'나는' '만들어진 조형'일 뿐이었다......

'나는,나는,.....

"로구아웃,로으아웃!!!로그아웃!!!!!!!"

찾아온 경찰들이 정신과 의사들에게 그녀를 데려갈 때까지, 몇시간이나 그 골목에는 같은 소리만이 점점 스피커가 낡아지듯 무너져내리며 메아리쳤다.

로그아웃병, 발병 3명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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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하하하학 개웃기다 그지? 로그아웃이래"


골목길 위쪽의 빌라 한곳 안쪽, '나'는 배를 붙잡고 쳐웃으며 굴렀다.

나는 골목쪽 창문 바깥편으로 아주살짝 튀어나온 집안의 커다란 기계를 보고 되뇌었다.

"그거 홀로그램인거도 모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