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타 섬의 파이스토스라는 도시에는 어느 부부가 살았음
아이가 없었던 부부는 신들께 기도한 끝에 아이를 임신하게 되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또 고민이 생겼지
워낙 가난한 부부였던 탓에 딸을 낳으면 시집갈 때 신랑 집안에 줄 예물을 마련할 돈이 없었던 거야
그래서 남편 리그두스는 아내 텔레투사에게 아들을 낳아달라고, 딸을 낳으면 어쩔 수 없이 죽여야 한다고 부탁했어
겨우 임신한 아기를 잃는 게 죽어도 싫었던 텔레투사도 아들이 태어나길 간절히 빌었지만, 야속하게도 태어난 아기는 딸이었음
그런데 텔레투사가 절망할 때 그녀의 앞에 이시스(레토 혹은 아프로디테라고도 함) 여신이 나타났고
여신은 텔레투사의 모성애를 칭찬하며, 자신이 아기를 보호해 줄 것이니 아기의 성별을 속이고 키우라고 했지
그래서 텔레투사는 산파와 입을 맞추고 이피아라는 이름이 붙었을 여자아이를 남자아이 이피스로 키우기로 했어
그렇게 여자로 태어나 남자로 자란 이피스가 13살이 되었을 때,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를 같은 13살의 이안테라는 소녀와 약혼시켰음
그날부터 두 소녀는 같은 스승에게 교육받으며 약혼자로써 붙어지내게 되었어
둘은 서로에게 푹 빠져서 남들이 보지 않은 곳에서는 키스를 나누는 등 서로에게 애정을 쏟았지만, 이피스는 혹여나 자신이 여자라는 걸 들킬까봐 걱정했어
나이가 차 봉긋이 솟아오르기 시작한 젖가슴을 들키기라도 하면 숨겨왔던 사실을 안 아버지가 분노할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이안테가 성별을 속인 자신을 혐오하게 될 것이 가장 두려웠지
그렇게 이피스가 두려워하며 가슴붕대를 두르고 몸매가 드러나지 않는 긴 옷을 입으며 지낸지 몇 년, 18살이 된 이피스와 이안테의 결혼식날이 다가왔음
몇 차례 결혼식을 미뤘지만 더이상 결혼을 미룰 핑계가 생각나지 않은 이피스는 두려움에 빠져 결혼식 전날 밤 달아났고
이시스(레토/아프로디테)의 신전에 숨어서 간절히 기도를 올렸어
차라리 자신이 진짜로 남자가 되게 해달라고, 사랑하는 이안테와 헤어지는 것도 그녀가 성별을 속인 자신을 혐오하는 것도 싫다고
그러자 신전 전체가 어떤 힘에 의해 진동했고, 신기하게도 이피스는 순식간에 비슷한 체형의 남자의 몸을 가지게 되었지
이피스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여신께 감사의 기도를 올렸고, 이안테에게 돌아가 행복한 결혼식을 올린 뒤 백년해로했다고 함
그리고 혹자는 이런 전승을 말하기도 했지
이안테는 이미 이피스가 여자라는 사실을 알아차렸지만 그녀를 너무 사랑하는 마음은 그대로였다고
그녀는 신혼 첫날밤에 남자의 몸이 되어 온 이피스에게 그 사랑을 고백하였고, 그때 다시 여신의 축복이 내려 이피스는 남녀의 몸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게 되었다고
두 여인은 서로의 성별에 구애받지 않는 행복한 사랑을 하며, 둘 사이에서 태어난 많은 아이들과 함께 백년해로할 수 있게 되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