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사상부 안치소, 소위 납골당.
현재 대략 10만명의 가까운 인간의 뇌가 전기자극으로 이루어진 환상 속에서 잠든 이곳의 경비실에는, 어느 남자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그는 분명 이 광활한 시설의 경비로서 채용되긴 했으나, 거의 오지도 않는 면회객을 제외하고선 달리 할 일도 없었기에, 잠이라도 자서 시간을 때워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에게 조금 더 요령이 있었다면 경비실의 단말기를 이용해 방송에 접속하기도 했겠지만.
평생 노동자로 살아온 것이 유일한 자랑거리인, 그리하여 다음날을 버틸 돈도 없어 이런 소일거리나 붙들며 자신이 관리하는 사상부처럼 될 날만을 꿈꾸고 있는.
그리 흔해빠지고 초라한 노인에게 그런 요령을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
오늘도 그는 근무시간의 대부분을 수면으로 채울 것만 같았다.
그래, 그 경보음이 울리기 전까지는.
[경보. 경보. 사상부 보관함 내부 이물질 발견. 사상부 보관함 내부 이물질 발견. 현장 대처 인력은 즉시 지시된 구역으로 이동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한번 말씀드립니다. 경보. 경보...]
갑작스런 사이렌과 함께 울리는 관제 AI의 안내방송.
노인은 방금까지 잠에 빠져있었다는 게 거짓말이었다는 듯 벌떡 일어났다.
그야 당연하다.
이 납골당은 수천만명이 접속해있는 가상현실을 관리할 정도인 고도의 인공지능에 의해 운영되는 시설.
자신 외에 경비가 없는 이유도 관제 AI의 '완벽함' 덕분이다.
그런 곳에, 최근 3일 동안 방문객 한명 없던 곳에, 갑작스레 이물질이 나타났다?
만약 관제 AI조차 눈치채지 못한 침입자의 짓이라면, 그건 정말 끔찍한 일일 것이다.
능력이야 어찌되었건, 명목상 그가 채용된 것은 관제 AI가 불가능한 것을 보조하기 위함이었으니.
설령 그로인해 유명인이나 재벌의 사상부에 손상이라도 났다면, 혹은 아예 파괴되기라도 했다면.
그는 사후보험 이전의 사람들처럼 낙원을 맛보지조차 못하고 사라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상상도 하기 싫지만, 관제 AI가 오류를 일으킨 것이라면.
노인은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구슬피 울어버릴 자신이 있었다.
더 이상, 낙원이란 존재하지 않다는 뜻이니.
'제발, 제발 별일 아니게 해다오.'
온갖 보호장구를 갖추어 입고 달려가던 노인은 자신도 믿지 않는 기도를 내뱉었다.
그는 급하게 보관실의 키패드를 두드렸다. 굳이 이런 때에 덜덜 떨려 제대로 자판을 누르지도 못하는 손가락이 야속하다.
그렇게 몇번의 실수 끝에 간신히 문을 열어 들어가, 이물질이 감지되었다는 보관실에서 노인이 발견했던 것은.
"...이게, 뭐야?"
"음! 음음! 음음!!"
콩- 콩-
안정액 속에서 유리를 두드리던 자그마한 백발의 어린아이였다.
그리고, 고양이 귀가 달린.
***
레바나스는 오늘따라 이른 아침을 맞았다.
해가 뜨는 각도가 바뀌어 레바나스의 눈꺼풀을 일찍 건드렸는지.
아니면 레바나스가 가진 예리한 직감이 무언가를 감지해서인지.
혹은 오늘이 주말인지라 다른 사람들이 늦잠을 자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레바나스가 어떤 가족들보다 일찍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항상 일찍 일어나 출근준비를 하는 상어와 여름도, 무엇인가를 경계하고 있는 가을멍멍이도, 어쨌든 자신보다 먼저 일어나는 어둠의 왕이도.
오늘은 모두 레바나스 앞에서 새근새근 잠든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이 그리 기꺼웠는지 레바나스는 기쁜 뿔토끼마냥 자리에서 폴짝 뛰었다.
물론, 가족들이 깨지 않도록 아주 조용히.
"후후. 레바나스가 일등이다! 오늘은 레바나스가 모두에게... 어... 그래! 모닝콜을 해주는 거다!"
그러면서 거실로 슬쩍 나가 시계를 보니, 슬슬 모두 일어날 시간.
왕이에게 시계보는 법을 배워두길 참 잘했다며, 레바나스는 겨울이 자는 방으로 들어갔다.
레바나스가 제일 먼저 깨울 것은 겨울.
가장 먼저 챙겨준다는 건, 가장 아끼는 뜻이니까.
다른 사람들 모두 사랑하는 가족들이지만, 역시 레바나스에게 가장 친한 친구는 왕이였다.
겨울이 자던 장소로 가보자 보이는 것은 둘둘 말아진 이불 한덩이.
어찌나 잘 말았는지 꼬리와 귀조차 이불 밖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걸 보고 슬쩍 장난기가 돋은 레바나스는 살금살금 왕이의 곁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이불의 끝부분을 잡고는, 휙!
"왕이야! 일어날 시간이다!"
"으읏!"
그리고 하얀 이불 속에서 드러나는, 푸른 머리카락.
"응?"
그 이불 속에는 익숙하던 백발의 고양이 수인이 없었다.
대신, 초등학생 정도 쯤 되어보이는 푸른색 소녀만이 누워있었을 뿐.
졸리는 눈을 비비던 푸른 소녀는 곧 레바나스와 눈이 마주쳤다.
그 둘은 잠시 아무 말도,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서로를 바라보기만 하더니.
"누구야?!!!"
"누구냐?!!!"
그러고선 여긴 우리집이다, 아냐 우리 집이거든, 상어야 가을멍멍아 어둠의 왕이야 얼른 와라, 아빠 어디 있어요 하며 부산을 떨며.
여명길드의 시끌벅적한 아침을 일깨우는 것이었다.
***
"흠흠~."
어느 이른 아침, 유봄은 즐겁게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어젯밤에는 한번도 아기가 울지 않아, 실로 오랜만에 유지태와 즐거운 밤을 보냈기 때문이었다.
지금이라면 유여름이 어떤 시비를 걸어도 넘어가지 않을 것 같음 만족감!
그것을 충분히 만끽하며 봄은 아침식사 준비를 끝마쳤다.
굳이 수고를 들여 음식을 만들지 않아도 될 정도의 능력이 있기는 하지만.
이런 사소한 일상이 또 행복의 조미료가 되는 것 아니겠는가.
식탁 위에 차려진 굴요리와 부추 장어구이를 보며 뿌듯해하는 봄이었다.
이제 다른 가족들을 깨울 시간.
그녀는 최근 사춘기가 왔는지 개인 공간을 요구하길래 아공간으로 만들어준 겨울의 방 앞에 섰다.
참고로, 유지태를 깨우는 순서는 가장 마지막이다.
그래야만 아침을 먹기 전 마음놓고 꽁냥댈 수 있으니까.
똑똑-
"겨울아, 밥 먹자."
사춘기를 거치는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공간에 대한 존중.
그런 문구를 최근 구매한 '우리 아이, 태아부터 성인까지 잘 키우기'란 도서에서 봤던 유봄은 그대로 따랐다.
-...
허나 돌아오는 대답 없이 조용하기만 하다.
다시 한번 노크해보지만 이번에도 대답이 없자, 봄은 조심스레 문고리를 돌렸다.
"겨울아, 들어갈게...?"
들어가자마자 방 한가운데의 침대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침대 위에 가지런히 놓여진 척수 딸린 뇌도.
"...어?"
그것을 발견한 순간 유봄이 비명을 지르지 않은 것은 결코 강인한 의지력 때문이 아니었다.
단지 오랜 세월을 살아가는 드래곤의 머리로도 지금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 뿐.
곧 정신을 차린 봄의 머리는 유여름의 장난 같은 현실적 시나리오부터 겨울이가 뇌로 변했다는 말도 안되는 상상까지 수많은 것이 지나갔고.
동시에 몸은 무엇이 되었든 지금 이 뇌를 보존해야 한다는 판단과 함께 보존 마법을 걸고 있었다.
뇌가 대기중에 노출되어 영양 공급이 끊겨 골든타임이 지나기 일보직전이었기에 그 판단은 실로 적절했다고 볼 수 있겠다.
"꺄아아아아아악!!!"
"봄아, 무슨 일이야!"
그래, 그 뒤 조금 꼴사납게 지른 비명도 자신이 겁을 먹어서가 아니었다.
다른 사람을 부르기 위한 매우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이었다.
봄은,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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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납골당 겨울, 최길납 겨울, 드유 겨울이 바뀌면서 생기는 우당탕탕 일상 보고 싶다
뇌 둥둥 상태 납골당 겨울한테 대충 키메라나 호문쿨루스 같은 걸로 새 육체 선물해줘서 이렇게 희망찬 세상이 있다는 거에 감격한다거나
개씹디스토피아 납골당 세계관에서 도시야생 경험다 최길납 겨울이가 잘만 살다가 혼자만 마나를 다룰 줄 알아서 먼치킨물도 찍어보고 봄한테 겨울을 대신한 마음을 가진 존재로 선택받아서 좀 더 희망찬 미래를 만든다거나
드유 겨울의 우당탕탕 먼치킨 일상물이라거나
그런 거 보고 싶어
근데 드유 본지 오래되어서 애들 말투가 기억 안나네
대충 맞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