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과 의사 마커스 D. 그레이에게는 한 가지 특이한 사실이 있다.
전쟁 후에 PTSD를 겪는 군인을 치료하는 것을 전문으로 하는 의사라는 것이다.
그런 그가 한 환자를 맡게 된 것은 얼마 전의 일이었다.
 
“고든 V. 프랑켄슈타인?”
“그렇소. 의사 나리에게는 미안합니다.”
“왜 그러십니까? 제가 원해서 하는 일인데.”
“그…. 쓰읍….”
 
군인의 말은 이러했다.
이슬람 단체에 의해 피랍된 군인 여럿을 데려왔는데, 그를 본 의사들이 하나같이 진료를 거부했다.
그의 말을 들은 마커스는 의사들의 태도에 대해 괘씸함의 감정을 품었다.
전쟁 후의 PTSD를 겪는 아버지를 두었기에 똑같은 증상을 겪는 군인들을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자신하던 그였다.
 
3일 후, 마커스는 드디어 환자와 만나볼 수 있었다.
들어가는 과정에서도 엄격한 것이, 그가 얼마나 심한 부상을 당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안대라도 드릴까요?”
“아닙니다. 아무리 부상이 심한 병사라도 그런 모습으로 다가간다면 오히려 증상이 악화될 겁니다.”
“안대를 거부한 의사들은 전부 환자와 이야기하자마자 상담하기를 포기했습니다. 분명히 저희는 경고했습니다.”
“이만 나가주시겠소? 당신들 때문에 환자의 상황이 악화될 수 있으니.”
 
불쾌감을 표할 거라는 마커스의 예상과는 달리 군인은 의외로 순순히 자리를 비켜주었다.
군인이 나간 이후, 손을 마저 씻어낸 그가 병실에 들어갔다.
병실에는 침대가 하나뿐이었는데, 그 모습이 어딘가 어색했다.
오히려 6인실에 적합한 공간이었지만 그를 위해 다른 침대는 모조리 제거한 느낌이었다.
기묘한 위화감을 느낀 그가 다음으로 마주한 것은 커튼에 가려진 침대였다.
 
“…누구시오?”
 
이윽고 그 침대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가 성치 못한 것이 그가 어떠한 사건에 의해 성대를 다쳤거나 목이 쉰 것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으로 추측했다.
 
“마커스 D. 그레이입니다. 당신과 상담하기 위해 찾아온 정신과 의사이기도 하고요.”
“제길. 또 까무러치는 모습을 봐야 한다니.”
“커튼을 치우겠습니다. 괜찮겠습니까?”
“…그러쇼. 어차피 나는 상관이 없었으니.”
 
침대를 가린 커튼을 치운 후, 그가 마주한 것은 심각한 부상을 입은 군인의 모습이었다.
대체 어떤 일을 겪었는지 상상하지도 못할 정도로 심각한 부상이었다.
 
“…의외로 오래 버티는군.”
“제가 비위는 강합니다.”
“비위라….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군.”
 
그는 부상으로 인해 몸을 일으킬 수 없었다.
불가피하게 침대에 누워 이야기하게 된 그는 헛웃음을 흘렸다.
 
“날 보고 역겨워하지 않는 사람은 처음이네.”
“부상이 꽤 심각하긴 하지만 굳이 역겨워할 필요는 느껴지지 않는군요.”
 
그러곤 문서에 무언가를 체크하기 시작한 마커스였다.
그의 흥미를 이끈 것은 그의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였다.
 
“…이슬람교를 믿는가?”
“예? 아닙니다. 이건.”
“아. 미안하네. 그날 이후로 구불거리는 것만 봐도 혐오감이 들끓는지라.”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본 마커스가 이해한다는 듯이 끄덕였다.
그의 반지에는 뱀 한 마리가 그려져 있었다.
그것은 의학을 상징하는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였다.
 
“안심하십시오. 이건 아랍어 따위가 아닌 의학의 상징일 뿐입니다.”
“직업정신에 투철하신 분이구먼. 빌어먹을.”
 
마커스는 의학을 모욕하는 그의 발언이 어느 정도 이해됐다.
이처럼 끔찍한 부상을 입히고도 그를 살려놓으려면 솜씨 좋은 의사가 필요했으리라.
 
“혹시 그때의 상황을 말씀해주실 수 있습니까?”
“…다른 사람에게 물어본다면 친절하게 대답해줄 것이오.”
“다른 사람들이 기록한 것이 없길래 그러는 겁니다.”
“하…. 그래. 내 얘기를 들으러 온 자들은 하나같이 자기가 뭘 먹었는지를 자랑하기 바빴으니.”
 
아마도 토악질을 뜻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저는 괜찮습니다. 오늘 공복으로 왔으니까요.”
“유감이군. 얘기를 듣는다면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할 텐데.”
 
그러면서도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그가 말을 시작했다.
 
“시작은… 그래. 시작은 3개월 전이었지. 빌어먹게도 화창한 날이었어. 처음으로 해를 총으로 쏴 떨어뜨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
우리는 그 빌어먹을 추종자들과 싸우고 있었어.
혹시 그들에 대해 알고 있나?”
“모릅니다.”
“그래. 모르는 게 좋을 거야.
그들은 쓸데없이 신앙심이 깊어.
신을 위해서라면 자신들의 목숨이라도 바칠 기세지.
실제로 바치기도 했지만 말이야.”
“실제로 바쳤다고 하면, 어떻게 바친 겁니까?”
“폭탄이었어. 몸에 다이너마이트 여럿을 제 몸에 감싸고는 빌어먹을 알라를 외치며 산화했지.
책상에서 펜대나 굴리던 자네는 이해하지 못할 거야.”
“글쎄요. 저는 펜대보다 메스를 더 잡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 의사 나리라면 그렇…. 잠깐, 자네 정신과 아니었나?”
“전문의가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레지던트를 맡은 기간이 더 길었으니까요.”
“그래. 내가 특수성을 무시했군. 무례를 이해해주게.
아무튼 그때도 똑같은 날이었어. 그 엿 같은 추종자들이 건물 몇 개를 날려 먹었다고 출동해야 했지.
생각해보니 건물을 날려 먹지 않아도 출동은 했겠어.”
“이유가 뭡니까?”
“이유? 하! 당연히 뻔한 이유지. 국민 여론이 나빠져서 더는 지원할 수 없다고 하던가?
지원이 끊기기 전까지 우리는 전쟁을 빨리 끝내야 했어.
빌어먹을 테러리스트들과 협상하기는 싫었거든.”
 
이야기를 듣던 마커스가 문서의 몇몇 조항을 체크했다.
 
“내가 말하고 있는 이 말, 녹음되고 있나?”
“아닙니다. 이 공간에는 당신과 저뿐입니다.”
“그래. 혹시 녹음하고 있다면 지금부터 끄는 게 좋을 거야.
 
그 빌어먹을 테러리스트들이 알라를 외치며 터져나갈 때, 우린 전장을 걷고 있었어.
뜨거운 태양이 계속 피부를 달구고 있는 데도 두꺼운 방탄복과 방탄모를 착용해야 했지.
그것 때문에 시간이 지체된 게 아닌지 몰라.
 
이상하리만치 조용한 날이었네. 구역질이 나올 정도로 고요했지.
평소 같으면 중국제 총탄을 쏴 재끼며 우리를 반겨야 할 그 빌어먹을 새끼들이 보이지를 않았네.”
 
“다 처리한 게 아닙니까?”
 
“그러길 바랐지. 하지만 그런 일은 없단 걸 우린 알고 있었어. 
3개월 동안 내가 머리에 구멍을 뚫은 테러리스트가 몇인지 알고 있나?
자그마치 50명이 넘어. 제길. 윌리엄! 좀 조용히 할 수 없나?
아, 미안하네. 잠시 소란이 있었어.
하루에 가장 많이 사람을 죽인 건…. 10명 정도를 쏴 죽였네.
그리 적다고 생각했나? 유감이지만 전혀 아니야.
우리는 대대 단위로 투입된다고. 비록 한 전투에 모든 인원이 참여하지는 않아도 쏴죽인 놈들을 모두 더하면 3000명은 넘을 걸세.”
“과장이 심하시군요.”
“유감이지만 아닐세. 물론 내가 쏴죽이기 전에 자살한 놈들을 포함하긴 했지만.
내가 어디까지 얘기했지?
그래. 고요한 날. 그날은 빌어먹게도 고요한 날이었어.
우리는 긴장을 놓을 수가 없었지.
언제 그 빌어먹을 새끼들이 들이닥칠지를 몰랐거든.
그렇게 긴장한 탓일지도 모르겠어. 총탄 하나가 콜슨의 종아리를 뚫고 지나갔네.
아, 콜슨은 내 동료 분대원이야. 지금쯤 어떨지 모르겠군.”
“동료를 말씀하신다면 다 죽은 걸로 나오는군요.”
“알려줘서 참으로 고맙군. 빌어먹을.”
 
살짝 이빨을 딱딱거리면서 무언가를 찾는 그의 모습에서 묘한 느낌을 얻을 수 있었다.
 
“혹시 담배 있나?”
“있긴 합니다만 권장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래. 빌어먹을 의사 나리가 권장할 리는 없겠지.”
“평소에 담배를 자주 하십니까?”
“담배? 그런 건 입에 댄 적도 없어. 그 전장을 빠져나온 뒤로 계속 이러는군.”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시며 말을 이어갔다.
 
“담배 하니 떠오르는군. 그때도 안개가 자욱하게 낀 줄만 알았어. 실상은 그놈들이 터뜨려댄 연막탄이었지만.
콜슨이 다리를 다친 이유도 이것 때문일지 모르겠어.
우린 싸웠네.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총을 힘껏 쏴댔지.
하지만 그놈들의 공격은 멎을 생각을 하지 않았네.
오히려 공세가 더 강해졌지. 빌어먹을.
어쩔 방법 없이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었네.
콜슨은 아마 그때 죽었을 거야. 그놈들은 굳이 우리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려고 생각하지 않았을 테니까.
 
혹시 비닐봉지 같은 거 있나? 지금 구역질이 나오려고 해서 말이야.”
 
마커스는 아무 말 없이 그에게 비닐봉지를 건넸다.
검은 비닐봉지를 휙 낚아챈 그가 5분가량 토사물을 뱉어낸 이후에 말이 이어졌다.
 
“자네, 소설 좋아하나?”
“네. 좋아합니다. 한때 자주 읽었죠. 톨킨이나 스티븐 킹의 작품 같은걸요.”
“그럼 프랑켄슈타인을 알 수밖에 없겠군?”
 
새삼스러운 그의 말에 마커스는 잠시 생각했다.
다름이 아니라 그의 자연스러운 ‘Frankenstein’의 발음에서 어색함을 느낀 것이다.
 
“아, 혹시 내 발음이 이상했나? 이해해주게. 부모님이 독일인이어서 말이지.”
“괜찮습니다. 계속 말하시죠.”
“그래. 우리는 어디 있는지도 모를 적을 향해 총탄을 쏴댔어.
그 와중에 동료들이 휙휙 쓰러지더군. 물론 전부 쓰러졌는지는 나도 몰라. 나도 그 도중에 쓰러져버렸으니.
연막탄에 수면 가스라도 섞었나 보지. 빌어먹을.
우리는 그동안 납치당했네.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곳으로.
 
난 그곳에서 미국이 얼마나 좋은 곳인지를 처음 느꼈네. 아무리 포로를 가둬놓는다고 해도 이 정도로 열악한 환경이 있을까 싶은 곳이었지.
아마 30년은 넘은 창고가 더…. 씨발! 윌리엄. 좀 조용히 해줄 수 없나?
자네. 윌리엄을 조용히 해줄 수 없나?”
“안타깝지만 저도 지금 손이 부족합니다.”
“그래. 씨발! 참으로 편안한 의사 나리시군.”
 
잠시 그가 화를 삭일 때까지 기다리며 마커스는 문항 몇 개를 더 체크했다.
 
“그곳에서 어떤 짓을 당하신 겁니까?”
“자네. 내가 한 말을 들으면 잠을 잘 수도 없을 걸세. 난 그곳에서 ‘누더기’를 보았어.”
“‘누더기’요?”
“그래. 그 빌어먹을 누더기. 남은 천을 덧댄 그 누더기가 맞네.
나는 그때 사람으로 누더기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지.
그리고 더 끔찍한 것을 봐버렸네.
그 누더기를 만드는 방법이었어.”
 
침을 꼴깍 삼킨 그가 말을 이었다.
그의 눈은 벌겋게 충혈된 지 오래였다.
 
“사람을 잘랐네. 그래. 말 그대로 사람을 잘랐어.
가위로 종이를 잘라버리듯이 사람을 잘라버렸어.
물론 전기톱으로 잘랐다는 차이점이 있겠지만.
 
내 동료들은 각기 다른 부위가 잘렸네.
알프레드는 왼팔이, 모건은 오른쪽 귀가, 스티브는 오른쪽 다리가 잘렸어.
그리고 윌리엄은…. 윌리엄! 씨발! 좀 닥쳐달라고!”
 
고든이 발작을 일으킬 듯이 경련했다.
군인의 몸부림은 일반인의 그것과 힘의 차이가 있었다.
다행히도 그의 팔에는 수갑이 채워져 있었기 때문에 비교적 수월하게 진정제를 투여할 수 있었다.
 
그는 진정제를 투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잠들었다.
문항 몇 개를 더 체크한 이후 병실 바깥으로 나섰다.
바깥에는 군인 몇이 더 대기하고 있었다.
 
“대단하군요. 마커스 선생.”
“뭐가 대단하다는 겁니까?”
“저런 환자를 보고 멀쩡히 상담할 수 있었지 않습니까?”
 
저런 환자.
마커스는 그 말을 더 골똘히 생각했다.
 
“확실히 어색한 환자이긴 합니다.”
“그렇죠? 한 사람이 아니니까요. 저희도 구출 작전을 시도하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사람 하체 하나에 상체를 주렁주렁 매다는 식으로 사람을 기울 수 있을 줄은 몰랐으니까요. 인간 지네도 아니고.”
“그게 전부가 아닌 것 같습니다.”
“…설마 더 있다는 건가요?”
 
마커스는 군인을 향해 문서를 내밀었다.
그가 체크한 여러 문항이 눈에 띄었다.
 
“환청, 환각, 그리고 기억상실. 한 사람은 맞을 겁니다. 다만 저 몸에 기워진 다른 이들은 죽었겠죠. 환자의 상태를 보니 그런 것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왜 그걸 모르고 있죠?”
 
마커스는 자신의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들겼다.
 
“PTSD는 당신이 상상하는 그 이상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저 환자가 보는 모든 상황이 저 환자의 환각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저 환자의 머리는 자기 몸에 달린 자들을 모른 체 한다는 겁니까?”
“모른 체라…. 그건 아닐 겁니다. 환자의 시각이 회복되지 않았다는 말이 맞을 테죠.”
“…끔찍하군요.”
“저 환자는 죽을 때까지 자신의 상황을 알지 말아야 할 겁니다. 자신이 포로로 잡혀서 본 누더기가, 실은 자신이라는 걸 받아들일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