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아, 하아......"


 붉게 핀 자신의 꽃망울을 바라보며, 순백의 성녀는 깊은 푸른빛 호수에서 수정구슬과도 같은 물방울을 흘렸다. 언제나 새하얀 눈처럼 깨끗하고 고아했던 백지, 그 누구도 감히 점조차 찍을 수 없었던 숭고한 도화지. 그리고 그리 지켜지는 것이 마땅했던 신이 내린 성스러운 보루.


 그것이 오늘, 부정한 죄악을 통해 갈기갈기 찢기고 말았다.


 허나 더욱 비참한 점은, 죄책감이나 후회가 아닌, 용솟음치는 열기와 황홀한 몽환이 구름처럼 그녀를 감싸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처음이었다. 성국의 백지에게는 이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감히 새장 밖을 나서 살쾡이가 도사리는 숲으로 나선 것도, 그곳에서 불어닥친 폭풍에 휘말려 도망치지 못한 것도. 


 그리고 한 음흉한 늑대에게 자신이라는 백지에 그림을 그리도록 허락한 것도.


 용사라는 이름의 늑대, 방금 성녀를 더럽힌 사내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성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망울 속에도 마찬가지로 죄책감이나 후회 따위는 없었다. 오히려 한층 불어난 갈망, 용암처럼 들끓는 욕정만이 활화산이 되어 폭발하고 있었다. 순간 불길함을 느낀 성녀는 재빨리 일어서 도망치려 했으나, 이미 그녀를 사로잡은 태풍에게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다시 성녀는 바람에 휘둘리고,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다시 한번 꽃망울을 열고, 그리고 부정하게도 그 과정에서 야릇한 쾌감과 부당한 고양감에 취하고 말았다. 


 늑대의 주둥아리가 성스러운 앵둣빛 입술을 침범할 적마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상스러운 혀를 놀렸다. 


 늑대가 그림을 그리려고 하면 몸을 흔들어 더 잘 그릴 수 있도록 도왔다. 


 생명의 우유가 맺힌 늑대의 자부심을 깨끗이 입으로 청소해 주었고, 자신의 굴곡을 더듬는 늑대의 욕정에 못 이기는 척 몸을 맡겼다.


 지금 이 순간, 성녀는 더 이상 과거의 성녀가 아니었다. 


 남은 것은 그저, 늑대와 어우러져 꽃을 피우는 기쁨을 알게 된 바빌론의 탕녀뿐.


 "엉덩이를 드십시오, 성녀님."


 노골적이고도 음란한 추설로 그녀를 희롱하는 늑대. 저것이 정말로 세상을 구하기 위해 발탁된 존재라는 말인가? 


 그리고 그 말에 흥분하며 복종하는 나는, 정말로 세상을 보듬기 위해 태어난 성녀라는 말인가?


 그러나 고뇌할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늑대는 곧바로 성녀에게 기쁨을 선사했고, 도화지에는 새로운 그림 한 폭이 다시 그려졌다. 늑대와 성녀가 합심해 시작한 도화지의 예술은, 하늘에 우뚝하던 해가 지평선 너머로 떨어지고, 찬바람이 불어 꽃을 시들게 할 때까지 멈추지 않고 이어졌다.


 이윽고 셀레네의 축복이 휘영청 뜬 호숫가, 그곳에 힘없이 쓰러진 성녀는 늑대의 지시대로 그의 자부심을 맛보았다. 꼬박 한나절이 걸린 쾌락, 그걸 거치며 성녀는 자신을 옥죄고 있던 굴레를 벗어던진 후였다. 새하얗고 순수한 꽃, 피지 않은 여린 꽃망울, 아무도 손대지 않은 도화지는 이제 없었다.


 남은 것은 그저......


 "잘하셨습니다, 성녀님. 아, 아니지. 이젠 성녀님이 아니야. 그렇지?"


 그러자 성녀는 황홀한 한쌍의 호수를 빛내며 늑대의 품에 고이 안겼다. 그리고 그대로 녹아버릴 듯 간드러지는 음성으로, 방금 깨달은 스스로의 운명을 되뇌었다.


 "네에, 주인님. 전 성녀가 아니라 주인님의 노예입니다. 말 잘 들을 테니, 앞으로도 많이 많이 상을 주세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