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음후 열전의 주인공이자 다다익선(多多益善), 암도진창(暗度陳倉) 등 여러 고사의 근간이 된 영웅 한신


사람들은 한신이 죽은 이유가 그저 '주군보다 잘나서', '유방이 질투를 해서'라고 알고 있는데


토사구팽을 외치며 '억울하게' 돌아가신 한신 장군니뮤의 행적을 한번 짚어보자







1. 역이기 튀김 사건


전설 중의 전설


유방의 한나라와 항우의 초나라가 피 터지게 싸우고 있을 당시, 제나라의 제후 전광은 누구 편을 들까 존나게 간을 보느라 바빴다. 


이때 유방의 신하인 역이기가 등판, 전광을 설득해 한나라의 편으로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했고 


실제로 이 협상은 성공할 뻔했다


그런데 갑자기 한신의 부하였던 괴철이 한신을 충동질한다


"님 지금 하북 평정한다고 난리치는 중인데, 역이기가 제나라 설득 성공하면 님보다 공이 커짐. 그대로 보고만 있을 거??"


이 말에 꼴받은 한신은 회담이 한참 진행 중인 제나라를 그대로 밀어버린다


한편, 회담을 진행하며 희희낙락하던 전광은 한신이 쳐들어왔다는 말에 아연실색


자기가 유방한테 속았다고 오해한 전광은 분노하여 역이기를 그대로 기름에 삶아 죽이고 도망친다







2. 제나라 왕 하게 '해줘'


전설을 잇는 2단 콤보


뜬금없는 한신의 팀킬로 인해 수하 역이기를 잃은 유방은 머리 끝까지 분노했다


그래도 한신이 유능한 천하기재고, 심지어 자기 정예군을 한신한테 맡긴 후라 한신이 배신하면 골치 아파서 일단은 참았다


며칠 후, 유방의 군영으로 찾아오는 한신의 사자


유방은 당연히 전후사정에 대한 해명과 복배사죄의 그랜절이 담겨 있으리라 믿었다


그런데 편지 왈: "아, 제나라 애들이 말 안 들어서 못 해먹겠음. 나 임시로라도 제나라 왕으로 봉해주면 통제가 잘 될지도??"


이 글을 읽고 이성의 끈이 뚝 끊어진 유방. 그 자리에서 사자후를 내뿜으며 칼을 뽑아 사자를 죽일 뻔했다


하지만 장량이 다급히 유방을 말리며 속삭인다. "님, 지금 열내서 한신이 통수 치면 감당할 자신 있음? 그냥 원하는 대로 해주셈 ㅇㅇ"


결국 유방은 임기응변을 짜내 "짜아식! 그렇게 왕이 하고 싶냐?? 그럼 임시 왕이 뭐야! 진짜 왕 해!!"라고 긴급 드리프트를 친다







3. 일명 쿨쿨 사건 


시기적으로는 1번 사건보다 먼저 일어났지만, 레전드성은 거기 뒤지지 않는다


한신이 하북을 평정한답시고 정예병을 다 끌고 간지라 유방의 군대는 엄청나게 허약해졌다


그런데 상대는 무려 서초패왕 항우. 별명이 만인지적이고 산을 뽑는 기개다


촌구석 정장 출신인 유방이 미친 듯이 두들겨 맞는 것은 당연지사


어렵게 어렵게 성고 지역을 방어하며 유방은 한신에게 계속 SOS를 쳤지만


한신은 "하북 평정이 더 급하다"는 소리만 반복하며 구원 요청을 씹었다


"아니 내가 뒤지면 게임 오버인데 뭔 개소리야!!"라고 폭발한 유방은 몰래 진영을 빠져나가 한신이 주둔하고 있는 군영으로 갔다


그리고 한신은 그때 막사에서 여유롭게 자고 있었다


심지어 실컷 자고 일어났더니 진영에 유방이 와 있자 경악하며 허둥대는 모습까지 보인다



그 광경에 고혈압으로 뒤질 뻔한 유방이지만, 참을 인 자를 100번은 새기며 고비를 간신히 넘긴다


그는 곧장 한신에게서 군권을 빼앗고 군대를 분할해 일부는 자신이 인솔, 나머지는 한신 진영에 남긴 후 항우와 맞서러 돌아간다


그리고 한신은 이 남은 병력을 이끌고 상술한 역이기 튀김 사건을 일으켜서 유방을 뇌혈관 파열로 살해하는데 거의 성공할 뻔했다







4. 아, 내가 땅이 부족하네??


온갖 고비를 넘기며 항우를 전국적 왕따로 만들고 궁지로 몰아넣는데 성공한 유방


소수만 남아 도망치던 항우의 군대는 해하 쪽으로 도망치다가 고릉이라는 땅에 이르렀다


그런데 고릉에는 한신과 팽월을 포함한 유방의 군대가 겹겹이 매복을 하고 있었다


이제 다같이 항우를 샌드위치로 쌈싸먹으면 끝나는 상황


전쟁 끝낼 생각에 군침이 싹 돈 유방은 한신과 팽월에게 진격 명령을 내렸다


그런데 이 두 새끼는 그 명령을 대놓고 씹는다


어이가 터진 유방이 "아니, 항우 도망간다고!! 지금 안 잡으면 놓친다고!!!"라며 가슴을 탕탕 쳤으나


한신과 팽월 왈, "아 그건 님 사정이고 ㅋㅋㅋ 근데 우리 영지가 쪼까 좁네?? 땅 더 주면 움직일 마음이 생길 지도??"


이 위급한 상황에 딜을 거는 두 새끼를 보고 복장도 덩달아 터진 유방


혼자서라도 항우를 쫓아갔다가 항우한테 신나게 두들겨 맞고 본인도 거기서 전사할 뻔한다



다행히 기마대장 관영이 개입해 유방을 구출했지만, 항우는 포위 따위 진작에 뚫고 멀리멀리 가버렸다. 유방은 '만신창이 + 닭 쫓던 개' 꼴이 된 셈


결국 이번에도 장량이 씩씩거리는 유방을 간신히 설득, 실제로 이 두 놈에게 더 넓은 영지를 주기로 약조하고


그제서야 한신과 팽월의 군대가 움직이며 항우를 추격하기 시작, 이는 초한지의 대미인 해하 전투로 이어진다


(한신과 팽월은 유방이 항우랑 싸우다 죽길 원해서 개입하지 않았다는 속설도 존재한다)


(그런데 맹장 관영이 유방을 구해 나오는 바람에 계획이 어긋나자 그냥 유방이 시키는 대로 했다고......)







5. 초나라 왕으로 봉해줬더니 한다는 짓이......


항우를 죽이고 전국을 통일한 유방은 한신을 초나라 왕으로 봉한다


그런데 어느날, 뜬금없는 첩보가 들어온다


초왕 한신이 거병을 준비하며 군마를 먹이고 병사를 조련 중이라는 첩보가


첩보가 사실인지는 불확실하나, 일단 한신이 초나라에서 갑자기 군사를 사열하고 민심을 어지럽히는 중이었던 건 팩트


놀란 유방은 대신들을 불러 사태를 논의하고 의견을 구하는데


여기서 레전드인 건, 대신들 중 그 누구도 "한신은 그럴 사람이 아닙니다!"라고 비호해주지 않았다는 것


한솥밥 먹으며 전투를 치른 중신들이 봐도 한신은 그닥 충성스러운 인물상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후일 소하를 비롯한 다른 공신들이 의심을 받을 때, 목숨 걸고 나서 변호하는 신하들이 있었던 것과 비교하면.......



결국 이 일 + 후술할 6번 사건으로 인해 한신은 초나라 왕의 작위를 빼앗기고 회음후로 강등당하는데


이때 한신이 외친 말이 바로 그 유명한 토사구팽이다







6. 너 종리매 왜 숨겨주니??



종리매(혹은 종리말)은 항우의 충성스러운 신하 중 하나로


초한전쟁 때 엄청난 활약을 했으며, 이 때문에 유방이 이를 바득바득 갈고 있었다


통일이 끝난 후, 항우의 세력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유방은 종리매를 찾는 자는 바로 관청에 넘기라는 포고문을 곳곳에 붙였다


그런데 초왕으로 재위하던 한신은, 무슨 생각인지 종리매를 자기 집에 숨겨주고 손님으로 대접하는 짓을 한다


안 그래도 군사를 훈련하며 분탕질을 치던 차에, 항우의 옛 신하까지 몰래 숨겨두고 보고를 생깐 것


이 사실이 귀에 들어가자 유방은 노발대발, 당장 저 두 새끼를 잡아오라고 어명을 내린다


그제서야 발등에 불이 떨어진 한신은 "내가 너 때문에 곤란해졌는데 좀 죽어주면 안 됨??"이라며 찌질하게 종리매에게 빌었고


어이가 터진 종리매는 "미친 놈, 내가 죽으면 네가 살 것 같으냐??"라고 응수하며 자결해 버린다


뒤늦게 한신은 종리매의 목을 들고 유방을 찾아갔지만


이미 인내심 스택이 한계치였던 유방은 한신을 체포해 초왕 벼슬을 빼앗고 회음후로 강등시킨다


상술했듯, 한신은 이때 "아 시발 토사구팽!"이라고 외쳤다







7. 내가 번쾌와 동급이라니!


회음후로 강등당한 한신은 분을 못 이겨 트롤링을 하고 다닌다


심지어 자기 공만 믿고 원년 공신인 주발과 관영을 까며 "내가 왜 저 놈들이랑 같은 대우를 받냐!!"라고 사람 속 긁는 소리만 골라서 해댔다


하도 염병을 떨고 다니니 주변인의 눈살이 찌푸려지는 건 당연지사


이에 또 다른 공신인 번쾌가 한신을 초대, 극진히 대접한 후 "당신은 폐하의 신하지, 군주가 아니오. 처신을 바로 하시오."라고 좋은 말로 타이른다


그러자 이 말을 들은 한신 왈: "살다살다 내가 번쾌랑 동급이 되었구나!"



참고로 번쾌는 유방과 동향 출신이며, 유방이 처음 거병을 했을 적부터 충성스럽게 따라다닌 짬킹 of 짬킹이다

(삼국지의 관우, 장비급 위치)


항렬로만 따지면 한신에게 꿇릴 이유가 전혀 없는 원로대신인 것


이 말을 번쾌 면전에서 했는지, 나중에 다른 데서 했는지는 모르지만


기록이 남은 걸로 보아 면전에서 했을 가능성이 꽤나 농후하다


그 자리에서 칼로 베지 않은 번쾌의 인성에 찬사를......







8. 진희의 반란


한신이 결국 죽게 된 사건


거록군의 태수였던 진희라는 인물이 갑자기 유방을 상대로 반란을 일으킨다


그런데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충격적인 사실이 하나 밝혀지니


회음후 한신이 진희와 짜고 내부에서 호응하기로 약조했다는 것


물론 단순 모함일 가능성도 있었기에 유방은 이번에도 죽이지는 않고 함 상황을 보려고 했다


하지만 유방의 황후인 여후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여후의 속내

: 그동안 비호감 스택을 저렇게 쌓은 놈인데 과연 모함일까?? 모함이라 쳐도 앞으로 진짜 반란 안 한다는 보장은 있고??


그래서 여후는 이참에 아예 한신을 담글 작정으로 소하와 은밀히 밀담을 나누었고


소하의 계책에 따라 한신을 진희의 반란 진압 축하연에 초대한 후 


한신이 나타나자 즉석에서 붙잡아 죽여버렸다


한신의 유언: 괴철의 말을 듣지 않아 내가 이렇게 죽는 구나!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이렇게 비호감 스택만 쌓을 거면 진짜 괴철 말대로 독립해서 천하삼분지계라도 하던가 


주군인 유방한테 온갖 고로시는 다 넣고, 근데 정작 독립은 하라고 떠밀어도 안 하고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보라 하겠다



우리는 '한신'하면 억울하게 죽은 천하의 영웅으로, 유방은 그런 영웅을 죽인 간교한 인간 정도로만 생각한다


하지만 이 내용을 다 읽고 한번 곱씹어 보자


내가 유방이었으면 한신을 죽였을지, 말았을지??


노노


내가 유방이었으면 언제 한신 목을 날렸을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