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살짝 곱슬곱슬한 긴 검은 머리카락. 짙은 검은색 동공의 눈동자.


그녀는 한참 동안이나 눈을 껌벅거리며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한참 동안 바라 보았다.


그리고 끄덕이며 돌아선다.


과묵한 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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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외곽 외진 곳에서도 한참 떨어져 있는 마법 연구소.


그곳에서 홀로 마법 연구를 하고 있다는 대마법사를 동경하여 무턱대고 찾아가 문을 두들겼다.


설마, 나랑 비슷해 보이는 나이대 였을 줄은.


마법사들은 죄다 천재 라는데 그녀는 그중에서도 정말 뛰어난 천재 인게 틀림 없었다.


그녀의 연구 거리는 도시에서 한가로이 왕복 하면서 도와 줄 만큼 적은 양이 아니었다.


일주일 만에 절실하게 깨달았다.


하루 종일 책 더미를 나르고 신비 해 보이는 마법 도구와 재료를 팔다리가 지칠 때 까지 나르고도 그녀의 연구실에 불이 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느 정도냐고? 공장에서나 볼 법한 컨테이너 벨트가 몇 군데 설치 되어 있다면 짐작이 갈까.


이 연구소 자체도 도시 외곽 외진 곳에 있어서 그런가 엥간한 대저택 만큼 어마어마하게 컸다.


이러다 내가 쓰러지겠네.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앞으로 연구소 구석의 창고에서 자겠다고 말씀 드렸다.


때려 치는게 아니었냐고? 목표가 있어서 그럴 수는 없다.


무언가 눈동자에 큰 동요가 오시던 마법사 님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라고 하셨다.


다음날 연구소 구석 잡동사니를 처박아두던 창고는 나름 사람이 살만한 숙소로 바뀌어 있었다.


대마법사는 역시 다르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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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부터 무언가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잡동사니를 조잡하게 이어 붙여서 만드는 것을 좋아했고 장난감을 조립하는 것을 좋아 했다.


스스로 움직이는 골렘을 처음 보았을 때는 같이 놀자는 또래 아이들을 떼놓고 길거리에서 골렘만 계속 바라보던 시절도 있었다.


소년이 마도 공학에 관심을 가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재능이 좀 있었나 보다. 내가 배운 것을 한 문장으로 요약 하자면 기계를 조립하고 마력원석을 박아 넣으면 생명을 가지고 움직인다 였다.


별로 한 것도 없는데 학교를 졸업 할 때 쯤 제일 잘난 놈이라고 수석 자리를 주어 졸업 시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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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을 느꼈다. 어릴 적 추구하던 것은 살아 숨 쉬는 듯한 마도공학 골렘.


전혀 그 느낌에 다가 설 수 없었다. 학교를 다닐 때는 매일 매일이 새로운 계단 뒤로 올라서는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하늘을 향하던 계단이 뚜욱 끊겨버린 느낌이었다.


손재주는 있는데 '마법' 지식은 부실하다 느꼈다.


책을 읽고 수식을 정리하여 마법을 구현하는 것 보다, 직접 만들고 조립하는 것에 흥미를 가졌던 탓인가.


그때였을 것이다.


한 유명한 마법사가 마법사의 탑을 떠나, 도시 외곽에 연구소를 짓고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게.


무턱대고 걸음을 연구소로 옳긴 날이었다.


그분이라면 내 답답함을 좀 해소 해 주실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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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이 지나는 동안 그녀와 나름 가까워지며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우선 무뚝뚝 한 게 아니었다. 그냥 말 수가 없던 것일 뿐.


대화 하다 보면 친절하고 배려심 깊고 정이 많은 여성이라는 것을 일 년의 시간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어색해서 처음엔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고 조용히 말을 걸어줬던 날이 아직도 기억난다.


내가 찾아온 그 시기는 그녀가 하던 연구 중에서도 제일 힘들고 까다로운 부분이었다고 말해주었다.


할 일이 태산이라 연구소에 칩거하며 밑도 끝도 없는 마법 연구를 하던 중이었는데 내가 찾아왔던 것이라고.


그럼 나는 정말 큰 민폐를 끼쳤던 것인가. 일을 돕는답시고 적응하느라 수도 없이 삽질 했던게 기억이 난다.


왜 무턱대고 찾아온 나를 조수로 받아줬냐는 물음에 눈빛에서 무언가를 느낄 수 있어 승낙 해 줄 수 밖에 없었다고.


내가 미안해 하자 잠시 뜸을 들인 그녀가 나를 바라보더니, 그래도 너 덕분에 한숨 돌리면서 살 수 있었다고 말해주었다.


그녀가 고맙다며 얼굴에 미소를 띄우자 괜히 부끄러워져 시선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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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지식을 배우고 그녀에게서 가르침을 받으며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그녀가 마력 폭주에 대해서 어두운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처음 연구소에 들어왔을 때 그녀가 연구하던 내용을 이제는 알 수 있다.


마력을 억제하거나 소멸 시키는 마법 도구의 재료를 일 년 동안 수도 없이 날랐으니.


마력 폭주 현상 때문에 수많은 마법사가 죽는 사건을 보았다고 한다.


친하게 지내던 이들이 눈앞에서 가루가 되어 부숴지는 이야기를 하는 그녀의 얼굴은 매우 깊고 어두웠다.


자기 자신만 잘나서는 아무것도 해결 할 수 없다는 것을 그때 통감 했다고 한다.


대 마법사라 한들 대규모 마력 폭주 앞에선 제 목숨 챙기기도 바빴기에 동료들이 부숴져가는걸 바라만 볼 수 밖에 없었다.


마법사가 아니어도, 누구나 사용 할 수 있는 마도공학 기계라면 이런 대 참사를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마력이 아닌 기계장치를 이용하는것이니 더더욱.


얼마 후 마탑을 나와 도시 외진 곳에 연구소를 차린 것도, 대마법사라는 명성에 비해서 지난 몇년 간 대단한 마법은 사용하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 였다. 마력 폭주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나도 모르게 그녀의 손을 꼬옥 잡아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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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광풍 속에서 공중에 떠오른 채 고통스러워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마력 폭주를 막기 위한 마력 제어 장치 시험 동작에서 큰 오류가 생겼다.


연쇄적인 마력 충돌을 상쇄 시키지 못해 상쇄되지 못한 마력이 계속해서 반발을 일으킨 탓이었다.


보통이라면 이러다 마력이 고갈 되어 끝날 일이었지만 그녀의 마력은 보통이 아니었다.


안전 장치들이 전부 터져나가고 연구소 전체가 찢겨져 나갈 듯 광풍이 몰아치며 주변을 흔들고 있었다.


그동안의 연구가 실패한 것에 대한 좌절을 떠나 그녀의 목숨이 위험했다.


-말 할게 있어.


전음. 마력을 통해 심적인 메시지 전달. 그 동안 너무 고마웠다고. 또 눈앞에서 누군가를 잃을 순 없다고.


널 도시로 안전하게 공간 이동 시킬거 라고.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럴 수는 없었다. 아직 그녀에게서 배우고 싶은 것도 많았다. 그리고 말하고 싶은 것도.


내 몸 근처에 공간 이동 술식 마법진이 펼쳐지는 것을 품안의 마도구를 꺼내 훼손 시켰다.


-안돼. 무슨 짓을 하는거야.


절망과 분노가 뒤섞인 그녀의 외침이 머리속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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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수년 간 당신 아래서 가만히 있던 것은 아니었다.


눈빛에서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다고?


당신 혼자만 그런 것이 아니다.


무언가 한에 맺혀 밤낮을 연구하고 몰두하던 너의 모습을 수년 간 지켜 봐왔다.


거기에 깨달은 바가 있어 그녀가 시간을 내어 나를 가르칠 때마다 필사적으로 배우고 익히려 노력하였다.


오래 전 뚝 끊겨버렸던 하늘로 향하던 나의 계단.


그 길을 새로 열어 준 것이 당신이었다.


나의 스승. 나의 동경. 나의 소중한 사람.


나 자신의 마력을 펼친다. 나의 심상 세계에 있던 이미지를 마력을 통해 구축한다.


그녀의 연구를 곁에서 지켜보며, 그녀의 가르침을 받으며 머리속에 넣은 수식을 토대로 마법진을 그녀와 나 사이에 만들어냈다.


마력 폭주로 인한 현상 때문에 마법진이 흐트러졌다. 지금까지 모아온 나의 마력을 퍼부으며 그 형태를 유지하였다.


거대한 밸브 형상의 마력. 마법을 안정화 시키고 마력 폭주를 억누른다는 이미지를 마력 술식을 통해 구현해 낸 것이었다.


그 마력을 토대로 바닥 아래 떨어진 거대한 밸브를 집어 든다.


허공에 고정한 채 마력 술식을 증폭시키는 용도로 사용하는 물건이었다.


안전 장치가 다 터져나갔으나 밸브만 무사하다면, 아직 연구소에 남아있는 마력 제어 장치들이 작동 될 것이다.


거기에 밸브를 돌리는 행위가 마법 술식을 증폭시켜 이 일대의 모든 마력을 안정화 시키고 억누를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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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릴 수 있다면 말이지.


마력 폭주는 거세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 할 수 없는 저항이 몸에 전해져왔다.


억지로 돌리려 하니 몸 안에서 무언가 솟구치는 느낌이 들었다.


쿨럭. 피가 입에서 뿜어져 나왔다. 찢어지는 듯한 그녀의 비명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마력 폭풍이 더욱 거세어졌다.


아. 그녀가 그나마 통제를 한 덕에 이렇게까지 할 수 있던건가. 생각 이상으로 심각한 상황이구나 이거.


정신이 들어 흐려져가던 시야를 바로잡고 고통을 참아내어 앞을 본다.


새하얗게 질려 벌벌 떠는 그녀가 허공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별 다른 수가 있나.


-너를 믿어. 그러니...


마력 밸브에 힘을 거세게 준다. 어차피 실패하면 죽는다.


-나를 믿어줘...!


그러니 한발짝 앞으로 나아가기로 했다.


정말 무어라 표현해야 할까. 온 몸이 찢어지는 격통과 입에서 터져나오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그 모든 감각을 무시한 채로 밸브를 필사적으로 돌렸다. 밸브가 조금씩 돌아간다.


수식이 작동하여 마법진의 발동 소리가 귀를 청명하게 울린다.


연구소의 모든 마력 제어 장치가 공명 하며 근처의 모든것을 잠잠하게 한다.


성공이었다.


아. 허나 의식이 없어진다. 블랙 아웃이라고 하나. 세상이 순식간에 검게 변한다. 울부짖는 비명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 하나 살리고 죽는거라면 나쁜 죽음은 아닌거 같아.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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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했겠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살았다.


도시에 있는 병원에 입원한 채로 안정을 취하며 휴식하는 중이다.


지금까지 해온 건 과거 회상.



반 송장인 채로 쓰러진 나를 그녀가 등에 맨 상태로 도시까지 미친 듯이 뛰었다고 한다.


연구소 일대 마력 억제가 너무 잘 된 탓에 그녀의 마력 역시 하루 이상 닫혀버렸다고 한다. 공간이동 같은건 꿈도 못꿨다고.


근데 자기 키 만한 성인 남성을 아가씨가 등에 업고, 연구소에서 멀리 떨어진 도시까지 갈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본다.


마력 이상 현상이 일어나자마자 이상 돌풍을 보고 도시의 누군가 신고를 하였고, 그녀와 나는 신속하게 구조되어 도시 병원으로 옳겨 졌다고 한다.


그녀는 가벼운 탈진으로 기절 한 것 외에는 별 이상이 없었으나 나는 몸 상태가 말이 아니게 심각하여 치료를 받고 입원해 있었다.


천만다행으로 몸 속의 마력이 뒤틀려서 다시는 마법을 사용하지 못한다거나 그런건 아니다. 쉬면 완전히 회복 한다더라.


뭐 마력 폭주때 제대로 막아내지 못했다면 이런 진단도 의미가 없었겠지. 그 자리에서 아마 찢겨나가지 않았을까.


운이 정말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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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 한 켠에 엎드려 있던 그녀가 부스스 눈을 뜨며 일어났다.


아침 면회 가능 시간부터 저녁 면회 종료 시간까지 입원 한 그날 부터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내 곁에 붙어있던 그녀였다. 


의자에서 하품을 하며 눈을 껌벅이는것도 피곤해서 그렇겠지.


연구소로 돌아가서 기다리라 해도 듣질 않았다.


- 오후에는 잠시 밖에 다녀 올께.


아무래도 사건의 당사자 이다 보니 도시의 높으신 분들과 대화를 하고 올 수 밖에 없는 모양이었다. 고개를 끄덕인다.


나를 그윽하게 바라보던 그녀가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더니 나에게 다가왔다.


두 팔을 벌려 나를 꼬옥 껴안아주었다.


요 몇 일 새 사이가 급격하게 가까워진 기분이다.


나 또한 팔을 들어 그녀를 껴안아 등을 토닥이며 머리칼을 쓰다듬어 주었다. 이젠 마음을 숨길 필요도 없었으니.


- 난 괜찮아. 너무 걱정 마.


그녀의 작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서로 몸을 떼어내고 눈동자를 마주친다.


- 네가 나를, 구했어.


여러 의미를 함축하여 그녀가 나에게 말한다.


- 네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야.


고마워 라는 말을 하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녀가 눈을 감으며 얼굴을 가깝게 하고 있었기에 나 또한 입맞춤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연구소 돌아가면 해야 할 일이 많아지겠군. 여러모로 말이야.


그렇게 생각하며 태풍 후의 평화를 잠시 즐겼다.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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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상처 입은 두 사람이


서로에게 힘을 얻으며 큰 위기를 겪고 이겨내는 그런 걸 표현 하고 싶었음


표현이 잘 안 된 거 같지만....


단편의 한계지 뭐


아니면 내가 글 자체를 못쓰던가!!


배경은 마법에 기계공학 섞은 건데 장편 연재도 아니고 그냥 내 욕심 이었던걸로!!


이런 글 쓸 기회를 주신 대회 주최자 님에게 참으로 고맙소


그리고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장챈 이용자 여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