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이런 괴소문이 있다. 한밤중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할머니 귀신과, 그걸 무급으로 지우는 관리자의 이야기.


겉보기로는 정신나간 현상으로 보이겠으나 실상은 다르다. 이들이 하는 것은, 하나의 세상을 지키는 일이니.










-76세 김옥순 할머니 최후의 타즈딩고(⅕)


-우리 진짜 이대로 가면

[ 라이더]


-너는 달도 아닌데



그날도 나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둘러보고 있었다. 몸에도 정신에도 전혀 좋지 않은 비생산적인 시간 죽이기. 하지만 바쁜 현대인에게 있어선 머리를 비운 채 사람들의 뻘글을 감상하는 것만큼 쉽고 편한 스트레스 풀기도 없다.


그렇지만 오늘은 이것조차 재미있지 않았다.


"망갤 다 됐네. 뭔 뻘글이 반이냐?"


평소에도 없지는 않았지만, 오늘따라 영 심했다. 그러나 관리자는 해결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어쩌면 이미 자고 있을지도.


무심코 한 글을 누르자, 끔찍한 그림이 모습을 드러냈다. 황급히 뒤로가기를 눌렀지만 초롱초롱한 눈의 아주머니는 뇌리에 박혀 잊히지 않았다.


"씨발…"


나는 분노의 화살을 관리자에게로 돌렸다.


[완장<<<<<<이새끼 뭐함?]


[갤 망치는 뻘글은 남겨두고 멀쩡한 글은 지우고 밤에 잠이나 쳐자고 유동 아무나 앉혀놔도 이새끼보단 잘 할듯]


순식간에 오르는 추천수와 함께,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간만에 시원하게 욕을 박으니 후련했다.


그 때, 새로운 댓글이 달렸다. 관리자였다.


[니가 해보던가 시발아]


그 다음 일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처음에는 화났나며 소리내어 비웃다가, 갑자기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메스껍더니, 몸이 균형을 잃고 쓰러졌다. 


깨어난 후 보이는 풍경은 서울의 빌딩 숲이 아닌,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제발 이렇게 부탁하니….”


“아니 안한다는 사람한테 왜 자꾸 이러세요? 다른 사람 찾아보라고요.”


깨어난 곳은 마치 판타지 게임을 연상케 하는 왕국의 성이었다. 대충 나라가 마왕에 의해 위험에 처해서 마왕을 죽일 용사를 이세계에서 소환했다는, 최근에 일본 라이트노벨에서 범람하는 뻔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나같은 평범한 회사원보고 싸움을 하고 칼을 휘두르라는게 가당키나 하는가? 내가 암만 나는 힘이 없다 말해도 왕과 측근들은 소환되었으니 필히 나라를 구할 영웅일 거라는, 어처구니 없는 말만 반복했다.


“제발 이렇게 비네. 자네가 오기 전에 기사단으로 구성된 원정대도 꾸려보고 금은보화를 약속하며 마왕을 죽일 자를 모아도 보았지만 모두 천 개의 얼굴을 가졌다는 마왕 ‘토르’에게 비참히  죽었네. 이대로 가다간 무고한 백성들도, 영광의 역사가 담긴 우리 나라도 모두 사라지고 말거야. 그러다간 선대 왕들을 죽어서 뵐 면목이 없네…”


그러더니 갑자기 나에게 무릎을 꿇고 절을 하는 것이 아닌가. 측근들이 기겁하며 말려도 왕은 이마에 피가 나도록 머리를 땅에 찧었다.


이렇게되자 나도 왕이 불쌍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놔두면 내가 천하의 쓰레기가 될 거 같았다. 


“그,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해볼테니 제발 멈추세요…”


결국 마왕 죽일테니 그만 하라고 말하고 나서야 왕은 고개를 들었다. 


한시간 후 임명식이 거행됐다. 내가 맘 바뀌기 전에 떠넘기려는 티가 팍팍 나긴 했지만 나도 싫지는 않았다. 은색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일제히 나에게 경례하는 모습에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그래, 사축으로 길게 살면 뭐하나. 차라리 죽더라도 멋있게 용사로 죽어야지.


내가 한쪽 무릎을 꿇자 왕이 보석으로 장식된 검을 내 어깨 위에 올렸다.


“그대는 왕국을 지킬 검이 될 것임을 맹세하는가?”


아까까지 울면서 애원하던 사람과는 딴판인, 위엄있는 목소리었다.


“네.”


“그대는 백성들을 지킬 방패가 될 것임을 맹세하는가?”


“네.”


“그대는 어둠을 몰아낼 횃불이 될 것임을 맹세하는가?”


“그렇다면 이것으로 왕 주딱의 이름으로 선언하니…”


“…..네?”


“ 그대에게 ‘파딱’의 칭호를 수여한다.”










“어휴, 파딱님이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 녹색 악마들이 우리 농장을 털어먹는데, 우리만으로는 손을 쓸 수가 없습니다!”


“녹색 악마? 고블린 말입니까?”


“고블린이 뭡니까? 제가 말하는 건 저기 저 놈들입니다.”


농부가 손으로 가리키는 곳에서 ‘레후’하는 울음소리가 들렸다. 거기서는 두 발로 걸어다니는 초록색 생명체들이 쉴새없이 밀 이삭과 돼지 사료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망할 참피들, 저 녀석들 때문에 입은 피해가 얼만지…"


"..."


나의 착각이었다. 이 세상은 판타지 게임도, 라이트노벨도 아니었다. 이건 판타지의 탈을 쓴 대한민국 인터넷 커뮤니티, 그 중에서도 제일가는 똥통이었다.


진상을 깨닫자마자 게거품을 물고 난 안한다, 때려 죽여도 못한다 악을 썼지만 낙장불입이었다. 결국 나도 이제는 익숙해지고 말았다.


파딱이 평소에 할 일은 별거 없다. 지금처럼 유해동물 퇴치를 포함한 대민지원. 3교대 마을 순찰. 탈출한 조현병 환자 제압. 싸이버거가 걸린 대회 진행. 마을 게시판에 붙은 춘화 몰래 가져가기.


물론 무급이지만 가끔 주민들이 치킨이나 과자도 준다.


그러나 가끔 마왕의 부하들이 대규모의 악마를 이끌고 왕국의 도시를 침공할 때가 있는데, 군단의 우두머리를 우리는 '사천왕'이라 부른다.


우리는 지금까지 두 번의 침공을 받았고 모두 물리쳤다.


첫번째 침공은 식욕의 악마 '코르펨'이었다. 뚱뚱한 몸에 두 머리가 달린 괴물이었는데, 본인은 별 볼일 없지만 무수히 많은 부하들을 앞세워 공격했다. 명령을 전해주는 파란 새를 요격해 진형을 무너뜨려서 겨우 토벌했다.


두번째 침공은 속임수의 악마  '쵸●산즈옥'으로, 변장에 능해 사람 행세를 하고 왕국에 잠입했다. 모임을 가장해 사람을 납치하거나 은근슬쩍 마왕군을 옹호하는 프로파간다 등 내부부터 좀먹으려 들었는데, 곰과 달팽이 그림만 보면 발작하는 것이 밝혀진 뒤로 빠르게 토벌됐다.


치열한 사투 속에서 수많은 희생이 있었다. 검은 마스크를 쓴 뚱보 악마에게 착정당한 경비병 잭, 뚜껑 따인 웰치스를 마시더니 사라진 기사단장, 그리고 마왕군 첩자로 몰려 내 손에 고로시당한 재상의 명복을 빈다.


가슴쓰린 경험 속에서 나는 성장했고, 어느새 나는 왕에게 받은 마검 '광자검'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역전의 영웅이 됐다.


"이런 탄압은 그만두길 바라는레후!"


"일가실각인데샤앗!"


9할 정도가 죽고 나서야 참피들은 도망가기 시작했다. 고마워하는 농부가 뭐라도 주지 않을까 싶어 기다려봤지만 딱히 콩고물이 떨어지지는 않았다.


그 때 배달부가 나에게 달려왔다.


"파,파딱님! 큰일 났습니다!"


"왜요, 근첩이라도 출몰했답니까?"


"세번째 침공이 시작됐답니다! 소문으로는 마왕 토르도 모습을 드러냈다고 합니다."








평원에 서 있는 것은 과연 '천개의 얼굴' 마왕 토르였다. 군대는 없이 그의 세 측근만을 대동한 채였다. 내가 홀로 다가가자 그는 크게 소리내어 웃었다.


"과연, 네가 최후의 파딱인가? 제법 용기는 있구나."


"너야말로 직접 나올 줄은 몰랐군. 마왕성 아스가르드 응디 뒤에 계속 숨어있을 줄 알았는데."


"흥, 기고만장하구나."


새를 닮은 측근들이 까악거렸다.


"저희에게 맡겨주십시오, 토르님."


"오늘 저희는 파딱의 피를 볼 것입니다."


"가만히 있어라. 슥피, 큿피. 저 녀석의 상대는 따로 있으니."


제법 자신만만한 태도였지만,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두 번이나 실패하고도 정신을 못 차렸나보지?"


"걱정 마라. 안 그래도 아주 특별한 무기를 준비했으니."


말이 끝나자마자 천지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웬 지진인가 싶었지만 곧 그것이 마왕의 뒤편에서 오는 진동인 것을 깨달았다. 거대한 무언가가 산 뒤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나와라, 세번째 사천왕"


나는 얼어붙고 말았다. 태양을 가릴 정도로 커다란 거인의 몸짓 때문이 아니었다. 저 얼굴, 저 커다란 점, 나는 저것을 알았다. 학습된 공포가 몸을 마비시켰다.


"광기의 악마, '하르카스'."


나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생각의 흐름 기법으로 쓰다보니 길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