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작품은 삼국유사의 '서동요' 일화를 각색한 픽션이며, 실존 인물과 연관이 일절 없음을 밝힙니다]

 

이번 편은 빌드업 수준이라 야한 부분이 많이는 읎음.....

 

본격적인 19금은 다음 편부터

 

 

 

 

 "선화공주님은 밤마다 문을 열고 서동을 안고 간다네~남몰래 사귀어 두고 밤마다 정을 통한다네~"

 

 다소곳이 손을 모은 동자가 간드러지는 음색으로 창(唱)을 했다. 여태 변성기가 도래치 않은, 때 묻지 않은 청량함이 돋보였다. 

 

 허나 그와 대조적으로 부르는 가사는 불순하기 짝이 없었다. 일국의 공주이자 왕의 삼녀가 남몰래 외간 사내와 통정을 하다니? 그것도 하루이틀이 아니라 매일 밤마다? 그야말로 경천동지(驚天動地)할 끔찍한 추문이었다. 

 

 한 나라의 왕으로서는 물론이요, 딸을 가진 아버지로서도 심화(心火)가 울컥울컥 솟는 이야기리라.

 

 자연히 이 노래를 듣던 왕의 안색은 전혀 밝지 않았다.

 

 노래를 마친 동자가 공손히 배례를 올렸다. 

 

 놀랍게도 동자가 창을 한 곳은 다름아닌 어전이었다. 문무백관이 참석해 홀을 들고 줄지어 선 가운데, 옥좌에 앉은 만인지상이 붉으락푸르락한 낯으로 동자를 쏘아보고 있었다. 

 

 지끈거리는 이마를 문지르던 왕이 손을 들어 하명했다.

 

 "수고했다. 약속대로 이 아이에게 비단 열 필을 하사해 본가로 돌려보내도록 하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이에 신하들이 일제히 합창을 하듯 반응했다. 짭짤한 수확을 올린 동자 또한 국왕의 앞에 넙죽 엎드리며 감읍, 또 감읍함을 표현했다. 

 

 잠시 후 동자가 사라진 어전은 참으로 어수선하기 그지없었다. 

 

 일개 소년이 가락을 외울 정도라면 이런 상스러운 풍문이 서라벌 곳곳에 퍼졌다는 뜻이었다. 지금 이 시각에도 길가의 주막과 시전의 가게에서 백성들이 선화공주의 음행을 비웃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노랫말이 사실인지 관련해서는 신하들 간에도 찬반이 갈렸다. 

 

 선화공주를 옹호하는 측은 대개 이렇게들 외쳤다.

 

 "폐하, 이는 고작 노래일뿐이옵니다! 증좌도 없이 공주 전하의 정절을 의심하는 건 도리가 아닌 줄로 아뢰오!"

 

 "그러하옵니다, 폐하! 선화 공주께서는 정숙한 품행과 아름다운 마음씨로 삼국에 명성이 자자하신 분이옵니다!"

 

 그러면 바로 선화공주를 비난하는 측의 주장이 따라붙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소? 공주 전하의 품행이 올바르다면 어째서 이런 추문이 시작되었다는 말이오?"

 

 "얌전한 고양이가 먼저 부뚜막에 오른다고 했소이다! 공주 전하의 행보가 의심스러운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오!"

 

 차츰 논의가 가열되며 양측의 공방이 치열해졌다. 

 

 서로 점잖게 이야기를 주고받던 대소신료들은, 곧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며 서로 헐뜯고 공격하기를 서슴지 않았다. 순식간에 어전은 어지러운 장바닥만도 못한 아수라장으로 변모하고 말았다. 침을 튀기며 갑론을박을 벌이는 신하들의 목소리가 궐 바깥까지 들릴 정도로 떠들썩했다.

 

 "어허, 참! 구태여 공주 전하의 흠을 잡는 이유가 무엇이오! 어디 찔리는 구석이라도 있소이까!"

 

 "웃기는 소리! 그럼 공께서는 억지로 전하를 두둔하는 배경이 무엇이오! 또 뇌물이라도 한 사발 드셨소이까!"

 

 "뭐, 뭣이! 뇌물! 이 늙은이가 노망이 났나!"

 

 "언동을 삼가시오! 주상 폐하의 앞이외다!"

 

 한참 엎치락뒤치락 싸움이 지속되던 차였다. 

 

 드디어 결심을 굳힌 왕이 옥좌를 박차고 벌떡 일어섰다. 왕의 찌푸린 낯에 대소신료들의 소동도 급격히 잦아들었다. 

 

 끄응, 불편한 신음을 흘리던 그가 입을 열어 하교를 내렸다.

 

 "결정을 내렸소이다. 짐이 친히 하명할 터이니, 대소신료들은 이 이상 왈가왈부하지 말고 그대로 따를 것을 권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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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구, 쯧쯧. 딱해서 어째?"

 

 좌판의 사내들에게 국밥을 퍼주며 늙은 주모가 혀를 찼다. 그러자 젓가락을 들고 식사만을 기다리던 장돌뱅이들도 살짝 안타까운 빛을 내비쳤다. 김이 모락모락 솟는 국밥에 숟가락을 꽂으며 그들이 수다를 떨었다.

 

 "그 소문이 진짜래? 선화공주님이 궁궐에서 쫓겨났다는."

 

 "아유, 그렇다니까? 그 젊고 여린 공주님이 어딜 가서 무얼 어쩌실꼬? 도대체 서동인지 맛동인지 뭐하는 놈팡이람."

 

 선화공주가 출궁(出宮)을 당했다는 소식은 천리마보다 빠르게 도성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최소한의 경비와 패물만을 지참한 채 혈혈단신으로 전국을 떠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처량한 신세는 참으로 연못가의 부평초보다 나을 바가 없었다. 

 

 공주에 관한 소문을 확산시키며 낄낄거리던 백성들도, 막상 출궁 조치는 과하다 싶었는지 다들 안타까움을 표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럼 공주님은 어떻게 되는 거래? 어딜 가서 뭘 드셔?"

 

 "내가 아나? 그래도 공주님인데 어떻게든 되것지."

 

 "하기사, 부잣집 곳간이 망해도 삼 년은 가지."

 

 국밥을 꾸역꾸역 밀어넣으며 장돌뱅이들이 수다를 떨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그들도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다. 이러한 세상에 홀몸으로 쫓겨난 여인이 발붙일 곳은 없음을. 결국 공주라는 허울좋은 미명이나 지키다 타지에서 쓸쓸히 객사할 팔자였다. 그것이 기댈 언덕이 없는 아녀자들의 미래 아니던가?

 

 "뭐, 또 모르지."

 

 "뭐가?"

 

 쩝쩝, 반찬을 씹던 장돌뱅이가 떠들자 상대 장돌뱅이가 어리둥절 물었다. 그러자 입을 연 장돌뱅이가 꿀꺽, 입 안의 것을 삼키며 대꾸했다.

 

 "누가 아나? 하늘이 공주님을 가엽게 여기신다면 갑자기 동앗줄이라도 하나 뚝 떨어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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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짹짹짹, 졸졸졸. 자연의 운치가 드리운 골짜기에 앉아 선화공주는 푹푹 한숨만을 쉬었다. 

 

 오색찬란한 비단옷을 걸치고, 머리는 보석과 진주로 치장한 휘황찬란 차림새였다. 갸름한 얼굴과 곱디 고운 피부, 오똑한 코와 도톰한 입술, 그리고 호수처럼 깊은 눈망울은 보기만 해도 넋이 나갈만큼 아름다웠다. 실로 천하일색이요, 한 떨기 꽃과도 비견할 미모를 지닌 공주님이었다.

 

 허나 그런 겉치레가 이제 다 무슨 소용이랴?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고 떠돌이 신세로 나앉았다. 근거도 없는 헛소문에 연루되어 공주의 신분으로 전국을 떠도는 처지로 전락한 셈이다. 갈 곳이 없어 자주 걸음하던 냇가로 왔지만, 그렇다고 막막한 앞길이 갑자기 열리지는 않았다. 

 

 스스로의 기구한 명운을 되새기자 절로 눈물이 어룽거렸다. 

 

 "대체, 대체 서동이 누구야......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그 사내가 도대체 누구냐고......."

 

 힘없이 흐느끼던 공주가 품 안의 은장도를 꼭 그러쥐었다. 입술을 꾹 깨물며, 그녀는 속으로 천지신명께 맹세를 올렸다.

 

 서동이란 자를 만나거든, 반드시 이 은장도로 목을 찔러줄 테다!

 

 "흑, 흐흑, 흑......"

 

 으르렁!

 

 그때 옆에서 우렁찬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아니나 다를까, 고개를 돌리자 집채만한 호랑이 하나가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쩍 벌린 아가리에서 뾰족한 이빨들이 저승사자의 칼날처럼 번뜩였다. 

 

 "호, 호랑......"

 

 뒷걸음질을 치던 공주는 그만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지고 말았다. 

 

 서둘러 일어나 도망쳐야 하거늘, 그녀는 붙박인 듯이 미동도 하지 않았다. 놈의 무시무시한 동공과 시선을 마주치자, 공주는 손가락 하나도 꼼짝할 수 없었다. 그저 벌벌 떨며 호랑이가 성큼성큼 다가오는 걸 무력하게 기다리기만 했다. 

 

 배를 채울 요량으로 신이 난 맹수를 보며 선화공주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대로 놈의 한끼 입가심거리로 전락하는 것인가?

 

 싫어! 아바마마! 어마마마!

 

 "훠이!"

 

 탁! 무언가를 휘두르는 소음과 함께 누군가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듬직한 덩치를 지닌 준수한 외모의 청년이었다. 비록 차림새는 수수하기 이를 데가 없었으나, 풍신에 흐르는 기묘한 기운은 자못 예사롭지 않았다. 

 

 혈기왕성한 눈동자를 부라리며 청년이 호랑이에게 위협을 가했다. 손에는 길쭉한 장대 하나가 들려있었다.

 

 "꺼져! 안 꺼져? 한 판 뜨려고? 덤벼, 이 자식아!"

 

 기이할 정도로 당당한 청년의 태도에 호랑이도 당황한 모양이었다. 그대로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빈틈을 모색하더니, 곧 단념했는지 꼬리를 내리고 물러갔다. 터덜터덜 숲으로 돌아가는 범의 꽁무니를 보며 청년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가 빙그르르, 묘기를 부리듯 장대를 돌리며 혼잣말을 뱉었다.

 

 "싱거운 자식. 진짜 붙을 줄 알았더니."

 

 "저, 저기......"

 

 "음? 아아, 그렇지."

 

 머뭇머뭇 부르자, 그제야 선화공주의 존재를 자각한 듯 사내가 몸을 돌렸다. 

 

 복색으로 미루어 보아 산골짜기에서 밭을 일구며 사는 평범한 농부, 혹은 계곡을 종횡무진하며 일확천금을 노리는 심마니 같았다. 

 

 다만 평범한 의상과는 달리, 용모는 제법 준수한 축에 속하는 미남자였다. 고마운 심정에 말을 걸었던 선화공주는 상대의 얼굴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뺨을 붉혔다. 

 

 물론 곧 허벅지를 찰싹 때리며 그런 잡스러운 상념 따위는 떨쳐냈다.

 

 뭐하는 거야, 오늘 처음 만난 사람한테.

 

 "아씨, 괜찮으십니까? 귀한 댁의 자제 분이신 것 같은데, 어찌 몸종도 없이 이런 곳까지 걸음하셨는지요? 이곳은 산짐승이 많아 위험하답니다."

 

 "가, 감사해요. 이 은혜를 어찌 갚을지......"

 

 "마땅한 도리를 한 것뿐이니 괘념치 마십시오. 아씨의 주소나 알려주시지요. 산중은 위험하니 쇤네가 모시겠습니다."

 

 주소.

 

 내 주소......

 

 "흐윽......"

 

 그 말을 듣자 공연히 눈물이 다시 샘솟았다. 평생 집도 절도 없이 헤매다가 불귀의 객이 될 자신의 처지가 새삼 떠오른 것이다. 

 

 울컥, 낙루를 비 오듯 흘리며 어깨를 떨자 당황한 청년은 어쩔 줄을 몰라했다. 장대를 내팽겨치고 무릎을 꿇으며 그가 서둘러 사과의 뜻을 전달했다.

 

 "소, 송구합니다, 아씨! 쇤네가 천것이라 그만 무례를......"

 

 "흐윽, 흑, 으흑, 무례 아니에요. 무례 아닌데......아닌데.......흐어엉!"

 

 결국 펑펑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한 공주의 모습에 청년은 안절부절을 못했다. 

 

 당연히 선화공주도 은인을 곤란하게 만들고 싶은 속셈은 없었다. 하지만 그가 하필 주소를 언급한 이후, 설움이 극렬히 북받쳐 견디기가 힘들었다. 한번 터뜨린 울음을 멈추려고 해도 멈출 길이 없었다. 

 

 사실 어릴 적부터 별명이 울보 공주님이었던 선화이니 달리 어찌 하겠는가?

 

 그 덕에 청년은 그저 뒷통수만 벅벅 긁으며 난처한 표정만 지었다.

 

 "아, 이거......어떻게 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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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사 하십시오, 공주 전하."

 

 겨우 통곡을 멈춘 선화공주는 청년이 차려 온 밥상을 보았다. 

 

 생각 외로 융숭한 대접에 그녀도 놀랐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그의 선에서 최대한 성의를 다한 티가 났다. 찐 고구마와 갓 담근 김치, 흰쌀로 지은 고봉밥, 싱싱한 나물과 버섯 무침, 된장과 애호박을 넣어 끓인 구수한 찌개, 거기다 푹 찐 닭고기까지. 

 

 닭 요리를 가리키며 청년이 넉살좋게 말했다.

 

 "공주 전하 드시라고 씨암탉을 잡았습니다. 실한 놈이니 살은 많을 테죠."

 

 씨암탉을......

 

 과분하기까지 한 호의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씨암탉은 어염의 창생들이 살아가는데 중요한 가축 중 하나가 아니던가? 보아하니 연고도 없이 후미진 구석에서 혼자 머무는 것 같은데. 

 

 죄스러운 기분이 들어 선뜻 수저를 잡을 수가 없었다. 허나 야속하게도 그녀의 뱃속은 오로지 본능대로만 반응을 했다.

 

 꼬르륵.

 

 요란한 소리에 선화공주는 창피해서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었다. 

 

 얼추 그에게 사정을 설명한 후, 청년의 거처에서 하룻밤을 머물기로 했다. 낯선 이의 호의를 덥석 받는 건 위험천만한 일이지만, 그래도 자신을 호랑이에게서 구해준 은인이 아니던가? 그의 선심을 무시하는 것도 의롭지 않을 뿐더러, 어차피 갈 곳이 전무했다. 가녀린 여인이 밤이슬을 맞으며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일단 당신부터 드세요. 어찌 집주인보다 먼저 수저를......"

 

 그러자 청년이 손사래를 치며 대꾸했다.

 

 "아이고, 쇤네는 이미 배를 채웠습니다. 인삼이나 마를 캐는 채삼꾼들은 평소 든든히 먹거든요. 신경쓰지 말고 드시죠."

 

 "그래도......"

 

 "공주님, 쇤네는 공주님이 드시는 것만 봐도 만족합니다. 게다가 자고로 고기란 놈은 식으면 맛이 없어요."

 

 청년의 강권에 선화공주는 결국 염치불구하고 허기를 달래기 시작했다. 

 

 장터에서 물건을 살 용기도 없어 온종일을 굶은 그녀였다. 궁궐에서 먹던 화려한 식단과는 비교도 안 되거늘, 이 초라한 음식들이 마치 수랏상의 산해진미처럼 느껴졌다. 역시 시장이 반찬이라는 속담이 괜히 떠도는 건 아니었다.

 

 "천천히 드십시오. 여기, 물도 좀 드시고요."

 

 "고, 고마워요."

 

 그가 내민 물잔을 받으며 선화공주는 슬며시 청년의 얼굴을 요모조모 뜯어보았다. 

 

 확실히 늠름하고 잘생긴 외모였다. 초야에 묻힌 천한 채삼꾼이지만, 신수는 서라벌의 귀족 도련님 못지 않게 훤했다. 특히 미간과 인중, 눈썹에서 요동치는 총기가 가히 예사롭지 않았다. 관상을 보는 법은 모르지만, 어째 범상한 사내는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공연히 가슴이 동당이질치기 시작했다. 

 

 후우, 속으로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이게 무슨 궁상이야. 구해준 은인한테.

 

 "......"

 

 그러고 보니 청년은 그녀와 통성명을 하지 않았다. 본명을 캐물어도 별 것 없는 하찮은 이름이라며 능청스럽게 넘길 따름이었다. 은혜를 입은 신세라 꼬치꼬치 추궁하지는 않았지만, 좌우지간 궁금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대관절 성명이 어찌 되길래 부득불 숨기는 걸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드디어 식사를 마친 선화공주가 시원한 날숨을 뿜어냈다.

 

 "하아......"

 

 끼니를 해결하니 그나마 살 것 같았다. 그러자 청년이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

 

 "치우겠습니다."

 

 "아, 아니에요. 그 정도는 제가......"

 

 "에이, 공주 전하는 손님이십니다. 손님이 일하는 거 보셨습니까? 편히 계시죠."

 

 그렇게 말하며 보란 듯이 상을 들고 방을 나가버렸다. 그녀가 개입할 여지조차 주지 않는 신속한 동작이었다. 

 

 "......"

 

 착잡한 눈빛으로 청년을 바라보던 선화공주는 가만히 자신의 보따리를 끌렀다. 궁궐을 나설 때 챙긴 다양한 재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비취로 만든 빗, 옥으로 만든 비녀, 황금 귀고리와 홍옥을 박은 가락지......

 

 자신의 유일한 재산이지만, 어느 정도는 나눠주어도 좋을 성싶었다. 그가 없었다면 호랑이 밥이 되거나 길거리에서 얼어죽었을 것 아닌가?

 

 덜커덩, 다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아, 오셨......"

 

 반가운 마음에 그를 돌아보던 선화공주가 순간 말을 멈추었다. 영 달갑지 않은 반응에 청년은 그저 어리둥절한 태도만을 보였다.

 

 "왜 그러십니까?"

 

 "음, 저기......혹시 그거......."

 

 "맞습니다. 술입니다. 아주 잘 빚은 놈이거든요."

 

 수, 술이라니. 마뜩찮은 표정을 지으며 망설이는 선화공주에게 청년이 물었다.

 

 "술을 안 좋아하십니까? 허면 치우겠습니다."

 

 "아, 아뇨. 그게 아니라......술을 먹어본 적이 없어서......"

 

 그 말에 청년이 짐짓 놀라는 시늉을 하며 주안상을 내려놓았다. 하얀 백자 안에서 술이 찰랑찰랑 넘실거리는 맑은 소리가 들려왔다. 안주 삼아 가져온 삶은 콩을 씹으며 그가 말했다.

 

 "전하께서는 이미 성년이 아니십니까? 그런데 한 번도 술을 드신 일이 없다고요?"

 

 "네. 그, 별로 단정한 행동이 아니라 여겨서......"

 

 그러자 청년이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그가 작은 잔에 술을 채우며 주절거렸다.

 

 "아니, 천하 만민이 다 마시는 게 술인데 거기 단정함이 어디 있습니까? 즐거움만이 있을뿐이죠. 그리고 본래 울분이 쌓였을 때는 술을 마시고 확 푸는 게 삶의 지혜 중 하나랍니다."

 

 그렇게 말하며 청년이 대뜸 잔을 내밀었다. 

 

 갈피를 잡지 못하며 멈칫거렸으나, 곧 조신하게 그가 건넨 잔을 받아들었다. 음주 여부와는 별개로 상대방을 무안하게 만들고 싶은 의사는 추호도 없었다. 

 

 잔 표면에서 흔들거리는 술을 주시하며 선화공주는 살짝 향을 맡아보았다. 비리고, 쓰고, 또 무언가 속을 후끈하게 만드는 기묘한 냄새였다. 척 봐도 그다지 맛날 것 같은 음료는 아니었다.

 

 이런 걸 왜......

 

 "캬!"

 

 그때 청년이 깔끔히 비운 잔을 탁 내려놓았다. 실컷 개운한 낯으로 입맛을 다시며 그가 안주를 한움큼 집었다. 그대로 입에 털어놓고 우물우물 씹으며 청년이 공주를 부추겼다.

 

 "술은 맛으로 먹는 게 아닙니다, 전하. 취하기 위해 먹는 거죠. 만사가 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 술에 몸을 맡기면 잠시나마 모든 고통과 두려움을 잊을 수 있죠. 그래서 술이란 게 참으로 헤어나오기 어려운 요물인 겁니다."

 

 그......런가?

 

 내음은 고약하지만, 저렇게까지 말한다면 시도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기왕지사 이리 된 일, 이판사판으로 시도해보고자 작심하며 선화공주는 쭉 술을 들이켰다. 투명한 감례(甘醴)가 혓바닥을 건너 목구멍을 타고 위장으로 내려갔다. 덩달아 고약하기 그지없는 쓴맛과 정체모를 후끈한 미각이 그녀를 괴롭혔다.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가 투덜거렸다.

 

 "으윽, 써."

 

 "첫 잔이라 그렇습니다. 익숙해지면 술만큼 달디 단 게 없지요. 자, 한 잔 더 받으시죠. 쇤네가 전하께 올리겠습니다."

 

 이런 게 어떻게 달게 변한다는 거야. 

 

 이해할 수 없는 궤변이었으나 잠자코 청년이 따르는 술을 받았다. 왜인지 약간 더 넘기고 싶은 욕구가 몽골몽골 샘솟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확실히 청년이 장담한 대로 기분도 나아지는 것 같았다. 꼴꼴꼴, 맑은 소리를 내며 채워진 잔을 선화공주는 다시 꼴깍꼴깍 삼켰다. 

 

 맛을 음미하지 않기 위해 숨을 참고 단번에 넘겼고, 그 덕에 취기가 훨씬 빨리 찾아왔다. 

 

 "하아, 하음......"

 

 난생 처음 경험하는 취기에 선화공주는 손목을 살짝 떨었다. 

 

 기분이 요상했다. 몸이 붕 뜨는 것만 같고, 동시에 묘하게 흥분된 감각들이 관자놀이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이게 이 사람이 주구장창 자랑하던 술의 효능인가? 

 

 그러자 청년이 대견한 눈초리로 선화공주를 칭찬했다.

 

 "잘하셨습니다. 또 한 잔 드십시요."

 

 그가 따르는 술을 받으며 선화공주는 후아, 뜨거운 숨결을 쉬었다. 한번 마시기 시작하니 거침이 없었다. 그의 말마따나 실컷 들이켜고 곤드레만드레 인사불성이 되어도 괜찮을 것만 같았다. 꼴깍꼴깍, 연거푸 술잔을 비우는 공주의 모습에 청년이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묘한 눈빛을 빛내며, 청년이 공주에게 속삭였다.

 

 "그겁니다. 계속, 계속 그렇게 드시지요."


  

 

()()()()()()()()

 

 

 

 "저런, 참으로 억울하셨겠습니다."

 

 "당연, 히끅! 하죠! 서도오옹, 그 나아쁜 노오옴."

 

 청년이 맞장구를 쳐주자 선화공주는 한층 거리낌 없이 주사를 부렸다. 혀가 꼬였는지 제대로 말이 나오지 않았지만,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 

 

 결정적으로 하소연을 들어주는 말동무가 있으니 앙금이 한결 풀어졌다. 궁에서는 그 누가 그녀의 사정을 이리도 정성을 다해 들어주었던가? 누가 그녀의 해명을 이리도 순수하게 신뢰해주었던가? 지천으로 깔린 나인들이고 시종들이고 다 이 한 사람만 못했다. 만약 환궁할 수만 있다면 반드시 데려가고 싶은 인재였다.

 

 선화공주가 술잔을 내밀며 외쳤다.

 

 "한 잔, 끄흑, 더!"

 

 쪼르륵, 백자 잔이 채워지자 단숨에 비웠다. 

 

 슬슬 몸을 가누기도 힘들 지경이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아예 정강이가 풀려서 쓰러져도 상관없었다. 한없이 술로 아픈 가슴을 달래고, 찰나라도 출궁의 슬픔을 잊고픈 생각 밖에 없었다. 

 

 술잔을 탁 내려놓으며 그녀가 꼬부라지는 소리로 중얼거렸다.

 

 "서어어도오옹, 만나기마안 해 봐아아, 흐끅! 내가, 으응? 내가아 은장도로오오 모글 콰악! 응? 히끅!"

 

 그렇게 지껄이며 다시 잔을 내밀자 청년이 술병을 흔들며 대답했다.

 

 "송구합니다, 전하. 다 떨어졌네요."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세상에, 내 정신 좀 봐. 남의 집 술을 나 혼자서.......

 

 "미, 미안해요오오오......."

 

 "아닙니다. 어차피 길손에게 대접하려고 담은 술인데요."

 

 참으로 도량이 넓은 작자였다. 요즘처럼 다사다난한 세상에 이런 선량한 백성이 남아있었다니. 내가 환궁만 하면 반드시 천만금을 하사해서 이 공덕을 갚으리라. 아니, 아예 궁으로 데려가서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주는 쪽도......

 

 "시간이 늦었습니다. 이만 주무셔야 하겠군요."

 

 "히끕, 네헤엥. 저어는 어디서어어......"

 

 눈을 붙일 장소를 물어보려던 찰나였다. 

 

 갑자기 청년이 선화공주 쪽으로 다가왔다. 그러더니 말없이 그녀의 앞에 앉아 상체를 내밀었다. 

 

 술기운 탓에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어리둥절해하는 찰나, 청년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뒤이어 그의 뜨거운 입술이 그녀의 입술을 포갰다.

 

 "웁? 우웁, 웁!"

 

 갑작스러운 입맞춤에 당황한 선화공주가 버둥거렸으나, 이미 만취한 몸으로 저항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았다. 그를 떼어내려고 기를 썼으나, 정작 청년이 스스로 입을 떼기 전까지는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했다. 

 

 후아, 비로소 입술이 떨어지자 선화공주는 뺨을 붉히며 그를 밀어내려고 시도했다.

 

 "시, 싫......."

 

 하지만 이도 오래가지 못했다. 

 

 청년이 이번에는 그녀의 보드라운 목을 탐하며 얼굴을 파묻은 것이다. 

 

 자신의 살결을 뒤덮는 사내의 감촉에 선화공주는 그만 아앙, 신음을 토하며 몸을 비비 꼬았다. 그의 손이 옷깃을 파고 들고 치마를 풀어헤치는 게 느껴졌다. 허리와 가슴, 엉덩이를 더듬는 손길이 머리를 아찔하게 만들었다.

 

 아, 안 돼! 이래서는 안 돼!

 

 "머, 멈춰요! 제발!"

 

 필사적으로 바둥거리며 선화공주가 외쳤다. 

 

 나름 효과가 있었는지, 청년이 가만히 고개를 들어 그녀와 시선을 마주쳤다. 초롱초롱히 빛나던 두 눈동자가 정염의 불길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 불길의 기세에 기겁한 선화공주는 사내의 가슴을 가녀린 손으로 밀며 말했다.

 

 "이, 이러면 안 돼요. 이런 난잡한 짓은, 흐읍!"

 

 다시 입술을 덮어버리는 청년의 행동에 선화공주는 그만 저항의지를 상실하고 말았다. 

 

 몸이 너무 뜨겁고 이마가 두들겨 맞은 것처럼 어지러웠다.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큰일을 치를지도 몰랐다. 하, 하지만 이런 음행은 절대로 하면 안 되는데. 혼례를 치르고 신방으로 맞을 낭군님이 아니라면 이런 음행은......

 

 "하아읍, 하아......"

 

 그녀의 입 안으로 청년의 혀가 파고들었다. 두 남녀의 혀가 걸쭉한 타액을 교환하며 승천하는 두 마리의 용처럼 끈적하게 뒤엉켰다. 너무나도 능수능란하고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기교에 선화공주는 그저 부끄럽기만 했다. 처음 해보는 입맞춤인데도 바로 직감할 만큼 솜씨가 뛰어났다. 

 

 도대체 몇 명의 여인과 부대꼈길래 이런 기교를......

 

 "아흣, 싫어엇!!"

 

 겨우 혀가 떨어지는 찰나, 선화공주가 소리를 빽 지르며 청년의 따귀를 때렸다. 취기에도 불구하고 젖먹던 힘까지 끌어모아 때린 나름의 반격이었다. 

 

 허나 청년에게는 별달리 타격이 없는 눈치였다. 그가 빙그레 웃으며 헐떡거리는 선화공주를 주시했다. 그러더니 그녀의 귀에 대고 작게 소근거렸다.

 

 "괜찮습니다, 공주 전하. 본디 술에 취하면 남녀는 이런저런 일탈을 하기 마련입니다. 공주 전하 탓이 아니니 안심하십시오."

 

 뭐, 뭐라는......거야......

 

 그 사이 그녀의 저고리가 풀어지고, 치마가 땅에 떨어졌다. 새하얀 속옷이 드러나고 살구처럼 싱그러운 살갗도 조금씩 그 은밀한 자태를 선보였다. 

 

 공주의 늘씬한 허벅지를 매만지며 청년이 하아, 거친 숨결을 몰아쉬었다. 움푹한 가슴골을 핥고, 앙증맞은 배를 어루만지고, 뒤이어 여인의 소중한 계곡으로 손을 가져갔다. 아직 피어보지 못한 꽃망울, 만개하기 직전인 깨끗한 샘을 청년이 건드리자 공주는 아앙, 가녀린 교성을 토하며 얼굴을 가렸다. 

 

 태어나 최초로 체감하는 성욕, 암컷의 본능적인 쾌감이 그녀를 사각사각 갉아먹고 있었다. 

 

 아니야. 정말로 이건 아니야.

 

 작게 흐느끼며 그녀는 가빠진 숨을 정리하려고 노력했다. 

 

 어마마마에게 배웠던 몸가짐, 나인들과 시종들에게 들었던 무수한 교육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정숙하고 단정하게 스스로를 갈고 닦아야 하는 공주. 음행을 멀리하고 정절을 중시하며, 무엇보다 외간 사내를 주의하라고 엄히 가르침 받은 공주. 

 

 그 과정에서 차근차근 쌓아간 공든 탑이, 지금 그녀의 안에서 와르르 무너지려 하고 있었다. 

 

 "아흐흑!"

 

 등허리를 비틀며 공주가 한차례 상체를 들썩였다. 차츰 초점을 잃어가는 그녀의 눈동자 안에서 최후의 이성이 부질없이 발악하고 있었다. 

 

 하아하아, 한 줄기 침을 흘리며 그녀가 내심 중얼거렸다.

 

 안돼. 이런 짓은 하면 안 돼.

 

 나는 이런 음란한 여인이 아니야.

 

 나는.......이런 음란한 여인이......

 

 "하아, 아하아, 하응......"

 

 점점 전신에서 기력이 빠졌다. 청년의 노골적인 손짓에 대항하려는 최소한의 의지도 신기루처럼 자취를 감추었다. 그의 부축을 받으며 사실상 몸을 내맡긴 공주는 가만히 고개를 들었다. 

 

 자신을 바라보며 음흉하게 웃는 이 사내. 도와주는 척 술수를 부려 그녀를 함정으로 내몰은 사내. 치가 떨릴 만큼 간교하고 영악한 사내.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간악무도하고도 후안무치한 희대의 철면피.

 

 그런데, 분명히 그러한데......

 

 아아. 

 

 잘 모르겠어......

 

 어느덧 그녀의 속옷 또한 사르륵, 부드러운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완전히 알몸을 노출한 상반신이 사내의 목전에 먹음직스러운 밥상처럼 차려진 상태였다. 땀으로 젖은 자신의 젖가슴, 올라갔다 내려가길 반복하는 여린 복부가 기분을 야릇하게 만들었다. 

 

 청년이 곧 그녀의 젖꼭지를 입술로 머금었다.

 

 "아응......"

 

 마치 갓난아기가 어미의 젖을 찾듯 쪽쪽거리는 소리. 혀로 그녀의 유두를 이리저리 돌리며 간지럽히는 수작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무언가 그녀의 안에서 와장창 박살이 나는 기분이었다. 

 

 거긴, 거긴 안 돼.

 

 달아오르는 부끄러움에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지금껏 누구에게도 드러낸 적 없는 처녀의 젖가슴이었다. 동성의 나인들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던 곳이었다. 그런데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남자가, 외간 남자가 내 젖을.......

 

 한참 공주의 젖꼭지를 괴롭히던 청년이 비로소 얼굴을 뗐다. 그대로 그녀의 하반신 또한 나체로 만들려는 찰나, 공주가 살며시 그의 얼굴을 붙들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끌어당겨 그와 다시 혀를 깊숙하게 섞었다.

 

 "하아읍, 후웁......"

 

 사내의 목에 팔을 두르고 열렬히 입을 맞추며, 그녀는 나지막이 스스로를 위한 핑계거리를 새겨두었다. 혀와 혀가 섞이는 뜨거운 열기가 그녀의 얼굴을 한껏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그래, 이건 다 술 때문이야.

 

 술 기운 탓에 머리가 이상해진 거야.

 

 단지 그것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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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칸에 있던 서동요의 내용을 함 써봤음


당연히 장챈제일야설대회 출품작 ㅇㅇ


근데 너무 기네......


하지만 4편, 5편으로 나누자니 흐름이 너무 끊기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