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 새끼.."


그녀가 덮고 옆에 놓여 있던 담요로 그녀의 신체를 가리며 말했다.
그녀가 미처 가리지 못한 새하얀 피부는 충분히 매혹적으로 보였기에, 자칫 이성을 잃고 달려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조차 들 정도였지만,
그녀의 앞에는 그 누구도 아닌, 신관. 그것도 성자(聖者)이기에 별걱정은 안 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그녀를 그리 만든 게 그 누구도 아닌. 그였으니.


"세상에.. 지금 성자에게 짐승 새끼라 하신 건가요? 용사님이 스스로가 싸울 때 얼마나 짐승같이 싸우시는지 아시나요? 한번 가슴에 손을 언고 다시 생각해 보시는걸 추천 드릴게요. 그리고 저는 신의 아들이자, 신의 대행자라 불리는 존재. 그런 존재를 짐승 새끼라 부르다니... 와.. 이거 완전 이단 아닌가요?"


그리 말하며 그는 용사가 이단이라니.. 하며 충격먹었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얄밉다. 어찌 저리 얄밉게 말할 수 있는 걸까. 성자란 사람이 저리 얄미워도 되는 걸까.
자신과 다른 시간대를 사는 게 아닐까. 새벽까지 자지도 못했으면서 2시간만 자고도 저렇게 움직일 기력이 있는 걸까?


혹시 눈이 실눈인 이유는 그가 몽유병이라서 지금도 자는 게 아닐까 하며 실없는 생각 또한 하는 그녀였다.


그러지 않고서야 정녕 새벽까지 기력을 사용해 놓고 지금 저리 멀쩡하게 새벽기도를 올리겠다며 일어날 수 있을 리 없다.


창문을 내다보니, 새벽에 더워서 열어놓은 창문은 닫혀 있다.
저래봐도 추울까 봐 문을 닫아 놓은 거겠지.
이러면 무어라 하지도 못 하지 않는가.


게다가 자신이 벗어놓은 옷들은 죄다 건조대에 널려 있고,
건조대에 있던 옷들은 죄다 개켜 있다.


부끄러워 무어라 하고 싶지만 따스한 이불이 그녀를 놔 주지 않았다.


아직 바깥엔 해도 보이지 않으며, 사람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셔츠를 입고 새하얀 가운을 두르고 있는 그의 모습은 어두운 밤에도 빛이 나는 것만 같았다.


그가 무어라 계속 재잘거리고 있지만,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정말 지치지도 않는 것일까.


이래 봬도 성자라는 건지 하염없이 부지런하기만 한다.


어차피 그의 말에 귀 기울인다 하더라도, 반박조차 하기 힘들 것이다. 계속 그래 왔으니.


그 사실을 깨달아 버렸다는 것에 분해, 그녀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짐승 새끼.."


그러고선 그녀의 의식이 끊겼다.
방 안에선 더 이상 재잘재잘거리는 소리가 맺었지만,
밖에선 일찍일어난 새들이 지저귄다.


그녀의 숨소리가 일정해지고, 방 안에는 지저귀는 소리와 새근새근 자는 한 소녀의 숨소리뿐.
그는 그것에 피식 웃고선 그녀의 이마에 입맞춤했다.


그녀의 이마엔 자국이 남았다.
내일 아침엔 저 자국을 보곤 부끄러워하며 이를 가리려 노력하겠지.


그 모습이 사랑스러우면서도 그는 괘씸하여 목에도 키스자국을 냈다.
이제 가리기 힘들 것이다.


그녀가 탱커의 놀림을 받으며 얼굴을 붉히고
마법사가 밤새 탱커에게 짜여 골골거리는 모습을 상상하며 피식하고 웃었다.


이런 일상을 회상하는. 혹은 상상하는 건 항상 행복하다.


그래도 이 새벽기도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찌 사람이 매일매일 새벽에 일어날 수 있겠는가.


그리 생각하며 그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그녀가 갑자기 움직여서 흠칫 놀랐지만, 그녀는 한번 잠들면 누가 업어가도 모른다는걸 깨닫고는 안도했다.


그래도 뭐 어쩌겠는가. 내가 선택한 성자는 아니었지만 이 파렴치한 여자와 같이 있으려면 적어도 마왕까진 같이 가야 할 것 아닌가.
 악으로 깡으로 버텨야지. 뭐...


그리 생각하며 한숨을 내뱉었다.
맨들맨들한 이마에 딱밤을 때리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래도 새벽까지 자지 못한 소녀에게 그 잠까지 빼앗을 순 없을 것 아닌가.


그녀의 금빛 머리카락이 빛을 받아 매혹적인 자태를 뽐낸다.
흐트러진 그녀의 담요를 가지런히 정렬하고,다시 덮어 주었다.


마음 같아서는 옷 까지 입혀주고 싶지만, 그렇게 한다면 진짜 혼날지도 모르니 자중했다.
따스한 햇볕은, 우리의 일상을 밝혀주는 것과도 같이 아름답게 방 안을 비추었고,


만약 신을 증오한다 하더라도 신앙심이 피어오를 것만 같이  신성스러워 보였으니.
잠시 햇볕을 즐기고 있었다.


잠깐. 햇볕?
이 평화로운 일상에 잠식되어 눈치채지 못하였는데, 아직 새벽기도를 드리지 못했다.
새벽이라 하기엔 너무나도 밝은 바깥은 나에게 이미 늦었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였다.


'망했다.'


이래 봬도 완급 조절을 할 줄 아는 일상이였다.


생각보다 2000자 채우기 힘들어서 혼났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