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내가 다시 올 때까지 병을 낫게 하라고 명하였을텐데?”


“죄송합니다 폐하.. 쓸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써봤지만 도무지 차도가 없었습니다..”


궁중 최고의 치유사의 말끝이 흐려진다. 애초에 가능성이 0에 수렴하긴 해도 명령은 명령이다. 그것도 이 나라의 최고 권력자의 엄명이다. 명령을 어긴 자에게는 벌이 내려지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한 남자를 살려내라는 명령을 내린 여왕 조차도 이것이 억지임을 알기에 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폐하, 주제 넘게 충언을 하나 드리자면 절대 저 자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마십시오. 저 병은 아마 전염병일 것입니다. 벌써 저희 치유사 셋이 전염되어 사망했습니다.”


치유사는 주섬주섬 자신의 기구들을 진찰가방에 집어넣었다. 최고의 치유사조차 치유할 수 없는, 그것도 전염력이 아주 강한 병을 증명이라도 하듯 죽은 듯 누워 숨만 간신히 쉬고 있는 남성의 구강 근처에는 성수가 발려져있는 붕대가 감겨져 있었다.


”나가보거라.”


“알겠습니다..”


여왕은 도무지 믿고 싶지 않은 현실에 정신을 놓고 싶었다. 수많은 역경을 함께 이겨온 전우이자 부관인 남자가 이리도 허망하게 죽음의 신을 기다릴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왜.. 이런 몰골로 누워있는거야.. 어서 일어나.. 나랑 드레스도 맞추고.. 식장도 직접 꾸미고.. 뜨겁게 입 맞춰주고.. 평생 같이 있어주겠다며.. 왜 거짓말 하는거야..“


여왕의 맑은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국민과 귀족의 앞에서는 그 누구보다 냉혈한 철의 여제지만 그 남자의 앞에서만큼은 한 명의 여성이자 순종적인 아내이고 싶었다. 하지만.. 그 소원은 아무리 강력한 권력을 가져도 이룰 수 없는 물거품이 되어 하늘로 훨훨 날아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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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오늘도 오셨습니까..”


그 날 이후 여왕의 일과에는 한 가지 일정이 추가되었다. 다른 신하들이 한 자리에 모여 명을 거두어달라는 각종 퍼포먼스에도 여왕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들의 절박한 목소리에 관심조차 주지 않고 치유원에 마련된 여왕 전용의 병실로 향했다. 


“…”


싫은 내색을 하지 않으려 애쓰는 치유원장의 말조차 무시한 여왕은 남자의 병실로 들어섰다.


”오늘은 혹시나 다를 줄 알았는데.. 너는 여전히 무례하게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구나.. 내 앞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누워있을 수 있는건 오직 너뿐일꺼야.”


여왕은 손수 남자의 입에 싸여져 있는 마른 붕대에 성수를 조금씩 적셔주었다. 입이 막혀 영양소를 섭취할 수 없는 상황이라 직접 마법을 걸어 남자의 몸에 영양분을 넣어주기도 하고 미동조차 없긴 하지만 조금씩 흐트러진 침구도 직접 정리해주었다.


이런 일들은 원래 치유원에 소속된 견습 치유사들의 일이다. 만일 치유원의 그 누구라도 여왕이 직접 한 환자의 뒤치닥거리를 해주고 있는 이 장면을 본다면 놀라 쓰러지고 말터였다. 


하지만, 여왕은 이 일에 모든 신경과 집중을 쏟아부었다. 혹여나 남자가 불편해할까봐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노심초사하는 모습으로 남자의 병간호를 하였다. 


오늘도, 어제도, 그리고 내일조차도 그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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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일어나주면.. 안돼..? 나.. 너무.. 가슴이 아파.. 뭘 해도.. 너무 아파..”


여왕은 어느 날 부터인가 아예 궁중의 업무를 보지 않기 시작했다. 충성스러운 가신 한 명을 임명해 섭정을 펼치게 한 뒤 여왕 본인은 아예 드레스까지 벗고 치유원에서 생활하였다.


한 시도 남자의 방에서 떠나지 않으며 그의 병수발을 들었다. 


”이게 뭐야.. 계속 보고 있으면 좀 아픈게 덜 할줄 알았는데.. 더 심해지잖아..“


여왕은 점점 수척해져가는 남자를 붙들고 투정을 부려댔다. 마치 여왕의 자리에 오르기 전 자신을 보좌하던 남자에게 하던 것 그대로 말이다. 하지만 그 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 때는 남자가 모든 응석을 받아주었지만 지금은 그 응석을 받아줄 남자가 없다는 것이었다.


남자가 수척해져감에 따라 여왕 또한 점점 수척해져갔다. 낮에는 남자의 병수발을 들고, 밤에는 하염없이 울기만 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더 이상, 남자의 가슴에서는 심장 박동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그의 심장소리가 들리지 않음을 인지한 여왕은 울지 않는다. 체념한 것이 아니다. 슬프지 않은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저, 묵묵히, 묵묵히 남자의 입에 씌워진 붕대를 걷어낼 뿐이었다.


”분명 평생 내 곁에 있어준다고 했지..? 여왕과 맺은 약속을 쉽게 져버릴 생각이라면 접어두는게 좋을꺼야.“


여왕은 그대로 눈을 감고 남자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맞부딪혔다. 


“…”


”…”


병이 점점 전이되는 것을 느끼는 여왕, 하지만 그럼에도 남자와의 입맞춤을 멈출 생각은 없었다.


“푸하.. 이제.. 함께.. 할 수.. 있ㅇ..”


여왕은 점점 흐릿해져가는 시야를 느끼며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온몸에 힘이 빠져갔지만 이상하게도 남자의 싸늘한 손을 붙잡은 악력은 약해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욱 세게 그의 손을 붙잡을 수 있었다.


털썩..


그렇게 여왕은 정신을 잃었다. 하지만 정신을 잃는 그 순간에도 놓지않고 이어진 두 손은 아마 저 세상에서도 이어질 두 영혼의 운명을 쉽게 예견할 수 있게 만들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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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할 때는 이렇게 추상적이지 않았는데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