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님."


문득 당신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스승님.


분명 당신도 드래곤과 싸우다 죽었지요.


저의 눈 앞에 있는 것은 리바이어던. 지상 최강의 드래곤이자 신에 비견되는 괴물입니다.


영웅의 마지막 상대로 손색이 없는 괴물이죠.


...이런, 죄송합니다. 영웅은 절 말한 겁니다. 당신이 죽은 후로 많은 일이 있었거든요.


그 많은 사건을 다 소개해줄 순 없지만, 제 이름 석자가 영웅의 이름으로 구설수에 올랐단 것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스승님."


지금 저의 상황은 썩 좋지 않습니다.


두터운 갑옷은 누더기가 되었습니다.


무거운 방패는 가루가 되었습니다.


비장의 카드였던 '붉은 귤 꽃의 검' 도 비장의 짐덩어리가 되었습니다.


- 이런 때야말로 필요한 것이 동료들의 힘이다 제자야.


키메라를 토벌할 때 스승님은 그리 말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스승님께선 다친 팔로 트레이드마크셨던 붉은 귤 꽃 장식의검을 뽑으며 그리 말하셨죠.


하지만 스승님, 제 동료들은 이미 전멸하였습니다.


목숨은 붙어있지만 오로지 목숨만 붙어있을 뿐입니다.


그들은 마법을 거는 것도, 도끼를 휘두르는 것도 하지 못합니다.


전부, 전멸했습니다.


"스승님."


부모에게 버림받은 겨울, 반라의 몸으로 저는 당신의 산을 찾아갔습니다.


입이 얼어 말도 제대로 못하는 저를 보고 문지기는 비렁뱅이인 줄 알고 내쫓으려 했던 기억이 납니다.


간신히 올라온 거였는데 어찌 해야하는지 눈앞이 깜깜해졌죠. 그 냉혈한은 사정은 듣지도 않고 제 등만 밀었고요.


거 문지기 녀석, 처음에 아주 대단한 듯이 말을 해서 저는 그 녀석이 이 산의 주인이라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나중에 접객 담당이란 걸 알았을 때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더라죠. 제자도 아닌 것이 왜 까불었던 거야.


저를 쫓아내던 문지기를 향해 일갈하던 스승님이 생각납니다.


- 이 아이의 얼어붙은 두 손이 안 보이느냐! 열살도 채 못된 아이를 어찌 내쫓느냐! 설령 비렁뱅이더라도 이 추운 겨울에 내쫓는 것이 말이나 되는 소리더냐!


뻔하다면 뻔한 말. 그래도 제겐 화롯가 따스한 불 기운 보다도 따뜻했습니다.


"스승님."


저의... 저도 모르던 본성을 깨달았을 때가 기억이 납니다.


저의 병. 사람과 교감할 수 없는 병을 보고 사형, 사저들이 하나 같이 위험한 녀석이라고 했죠.


딱히 사형제들을 원망하지는 않습니다. 맞는 말이었고 저였어도 그리 말했을 테니까요.


그때 스승님이 하신 말씀도 뻔하디 뻔한 말이었습니다.


- 이 아이가 위험한 아이인 것은 맞다. 이대로 둬선 안되는 것도 맞지. 하지만 아직 위험하다 뿐이지 뭘 실제로 한 것은 아니지 않느냐.


대충 이리 말씀하셨죠.


그 말씀도, 뻔했지만 또한 따뜻했습니다.

"스승님."


성좌의 힘, 신들의 힘을 저만이 끌어쓸 수 없다는 걸 알았을 때, 저는 절망했습니다.


성좌의 힘은 교감이 베이스이기 때문에 저는 닿을 수 없는 힘이랬던가요.


그때도 스승님의 말씀은 뻔했습니다.


- 그딴 것, 없으면 좀 어떠냐. 네 실력은 이미 우리 문중의 정점이다. 넌 내 제자들 중에 정점이란 말이다.


... 그 문중, 망해서 정점된 거지만요.


그 말씀도 좌절을 녹이기에 충분할 만큼 따뜻했습니다.


"스승님."


처음으로 기술을 쓰는 데에 성공한 게 기억납니다.


그날 밤에는 시장엘 내려가 고기를 사주셨던 가요.


"스승님."


설거지하다가 접시 깨먹은 일도 기억납니다.


깨나 혼났더라죠.


"스승님."


사매한테 고백하고 차였던 날도 기억납니다.


... 그날 왜 비웃으셨어요.


"스승님..."


그래도 역시 지금 제일 기억이 나는 건 스승님의 마지막 전투입니다.


그날 저는 조금 안전한 후방에서 싸웠고 스승님은 최전방에서 싸우셨죠.


실력차에 따른 인원배치라고 들었습니다만 아니었겠죠. 저보다 실력이 약간 아래인 분들도 최전방에 섰습니다.


아마 당일날 컨디션이 안 좋았던 저를 염려하여 스승님이 직접 부탁드리신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 저는 살고 스승님은 죽었습니다. 제가 도착했을 때 스승님은 이미 죽어가고 계셨습니다.


스승님을 원망했습니다.


스승님을 원망하며 저는 다시 한번 마음을 닫았습니다.


분명히 그랬습니다.


스승님의 상징이었던 붉은 귤 꽃의 검도 줍기만 하고 비상시가 아니면 안 쓰기로 다짐했죠.


그런데 왜일까요.


왜 지금에 와서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가 스승님이고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검이 스승님의 검이고


제일 먼저 떠오르는 기억이 스승님과의 기억일까요.


"스승님...!"


죄송합니다. 저는 사실 거짓을 말했습니다.


이곳에서 100m가량 떨어진 돌기둥, 그 뒷편에 제 동료가 하나 숨어있습니다.


동료라기보단 제자입니다. 아직 미숙하여 무슨 일이 생기면 반드시 도망가도록 일러뒀습니다.


그 애만은 아직도 쌩쌩할 것을 압니다. 후방에는 주의가 끌리지 않았거든요.


그 애는 마법사입니다만 저는 그럼에도 제 모든 것을 가르쳤습니다. ... 당연히 검은 빼고 말이죠.


제자를 기른다는 것은 재밌더군요. 잘 따라오는 모습이 귀엽기도 했고요.


여기서 제가 죽더라도 저 애가 살아나가면 큰 한은 없겠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제자가 앞으로 달려나오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죽음을 각오한 모양입니다.


스승님 말씀은 귓등으로도 안 듣겠다 이거죠. 못난 놈.


그런데 기이한 일입니다. 그런 제자의 모습을 보면서 제 입꼬리는 올라가고 있습니다.


눈썹은 사나워지고 미간에는 주름이 잡히는 데 입꼬리만은 올라가고 있습니다.


스승님.


알 것 같습니다 스승님.


당신의 의미심장했던 마지막 미소의 심정을.


알 것 같습니다.


그때 당신이 저를 보던 심경이


알 것 같습니다.


똑같이 죽음에 이르른 지금은.


저또한...


[서자 '???' 가 당신의 죽음을 바라지 않습니다.]


... 스승님 아무래도 사람은 죽을 때가 되면 헛것이 보이나 봅니다. 지금 제 눈과 귀가 환영을 헤메고 있습니다.


혹시 스승님도 이러셨나요?


... 뭐야? 뭐라고 써지는 거야? 부... 군 시?


[성자 '부? 군 고이 기시' 가 당신의 죽음을 바라지 않습니다.]


눈 앞에 띄워진 네모 판. 거기에 새겨진 글자가 조금씩 바뀌고 있습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환상인 걸까요 스승님.


[성좌 '부은 굴 고의 기시' 가 당신의 죽음을 바라지 않습니다.]

[성좌 '부은 굴 고의 거사' 가 당신의 죽음을 바라지 않습니다.]

[성좌 '북은 굴 곳의 거사' 가 당신의 죽음을 바라지 않습니다.]

[성좌 '붉은 굴 곶의 거사' 가 당신의 죽음을 바라지 않습니다.]

















[성좌 '붉은 귤 꽃의 검사' 가 당신의 죽음을 바라지 않습니다.]


어?


[성좌 '붉은 귤 꽃의 검사' 가 자신의 목소리가 닿은 것에 놀랍니다.]


[성좌 '붉은 귤 꽃의 검사' 가 진심으로 기뻐합니다.]


[성좌 '붉은 귤 꽃의 검사' 가 당신에게 손을 내밉니다.]


[성좌 '붉은 귤 꽃의 검사' 가 당신과의 계약을 원합니다.]


"스... 승님?"


[YES]


[OR]




=======절단선=======


왜 이거 어디서 본 거 같지 느낌이 쎄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