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돌다 보면 여러 신화와 전설을 들을 수 있다.


신화와 전설에는 때로 역사의 영역과 전설의 영역을 넘나드는 자들이 있다. 전쟁 영웅이라던가, 위대한 업적을 남긴 왕과 황제들이라던가, 하여간에 그런 자들 말이다. 그들은 날이 갈수록 부풀려지고 덧붙여져, 어느샌가 전설의 영역으로 들어가게 된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전설이 되게 만들 수 있었는가? 그들이 고귀한 피이기 때문인가? 아니다. 번쩍번쩍 빛이 나는 갑주와 보석 박힌 지팡이 없이도 전설로 남은 영웅은 꽤 많다. 댐에 난 구멍을 손가락으로 막아 범람을 막았다던 소년의 이야기는 유명한 일이다.


그들이 훌륭한 업적을 세웠기 때문에? 그래야 영웅이라 불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훌륭한 업적에 빛만 있는가? 아니다. 온전한 선은 이 세상에 없다. 영웅이란 족속은 왕이나 귀족과는 다른 법이라, 업적에 흠집을 내는 단점이 더욱 크게 다가온다. 왕관에 새겨진 흠집이 녹슨 쇠에 새겨진 상처보다 더욱 크게 다가오는 것과 마찬가지의 이치이다.


결국, 영웅을 만드는 것은 미화이다. 전사와 황제들의 이야기는 수많은 기록과 구전된 설화로 우리에게 전해진다. 그 과정에서 부풀려지고 덧붙여질 뿐만 아니라, 흠집을 지우고 광택을 더 내서 우리에게 전해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들의 어둠을 볼 수 없이 그들을 영웅으로써 존경할 수 있는 것이다.


아까보다 더 크게 발걸음이 들린다. 돌계단을 걸어올라가, 나무로 된 문을 연다. 그들이 미화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로는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것이 구전으로 전해져 내려오기 때문이 있지만, 기록마저도 그들의 손을 들고 있는 것에도 있다. 기록마저도? 아니다. 기록은 원래 쓴 사람을 대변한다. 정확히는, 쓴 세력을 대변한다. 개인의 양심은 개인이 좌우할수 있는 것─물론 환경에 크나큰 영향을 받지만─이나, 세력의 양심은 한두명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세력에게 쓰여진 기록은 그 세력을 변호하고 또한 정당화한다.


정당화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우리 모두, 그러니까 인류는 항상 스스로를 정당화하고, 그러면서 발전하는 족속이다. 오히려 나는 정당화를 너무나도 좋아한다. 스스로를 꾸미는 것이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그러나 그렇지 않은 자가 있었다. 모두가 우러러보았기에 어둠을 보여줄 수 없었던, 그런 자가 있었다. 모두를 지켜냈음에도, 모두를 지켜내지 못한 자가 있었다.


영웅의 범주에 속하는 자로써,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었던.


사실 그 자가 왜 어둠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지극히 당연한 일을 한 것일 뿐이다. 그것이 왜 어둠이 되는지조차 나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피를 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나는 이해할 수도 있다.


또 하나의 나무문을 열었다. 그가 가지고 있는 어둠이 그의 몇 퍼센트였는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그가 가진 빛은 그의 그림자를 가려버릴 정도로 크기에, 또 그 빛으로 인하여 모두가 우상을 가질 수 있게 되었기에, 그 빛을 지켜내야 한다.


계단이 끝났다. 계단에 나무문을 두다니, 하지만 개의치 않는다. 그의 어둠으로 가는 길 또한 적지 않게 복잡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미 그의 심장에 들어와 있었다. 아무도 살지 않는, 보이는 색깔이라고는 희게 쌓인 눈의 백색만이 전부인 곳에 세워진 등대. 그의 심장은 바로 이곳이었다.


방을 둘러본다. 초라한 침대와 탁자. 벽에 걸린 액자는 깨진 지 오래고, 제 수명을 다해가는 양초는 마지막 불을 피우고 있었다. 이런 엄혹한 곳에 세워진 곳 치고는 추위를 막기 위한 준비가 너무나도 되어있지 않았다. 이게 그 나름대로의 속죄인가.


위에서도 말했듯, 나는 그가 가진 어둠을 이해할 수 있다 - 하지만 그의 속죄를 받아들일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계속해서 방을 둘러본다. 그의 침대에 앉아보고, 접시에 담긴 허여멀건한 죽을 먹어본다. 등대지기, 아니, 수감자인가. 등대지기의 삶이 냉혹하고 또한 열악하다고 하나 이보다 더 나쁠 수가 있을까. 이것은 그의 속죄임이 분명하다.


나는 침대에 앉아 아래를 고개를 숙였고, 마루에 붉은 액체가 묻어있는 것을 보았다. 등대지기의 피인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나는 다시 고개를 들어, 깨진 액자를 보았다. 그의 동료들이 있었겠지. 그가 우상이 되는 과정을 장식할 수밖에 없었던, 그럼으로써 영웅에 가까워진 이들.


그렇게 나는 침대에 앉아 몇십여분을 보냈다. 등대지기는 돌아오지 않는다. 우상은 돌아오지 않는다. 우상이 그에게 주어진 계단을 다시 내려와 평범한 인간이 되는 일은 많다. 이 세상 그 어떤 이가 영원한 우상으로 남았는가. 그것은 전설의 영역이 아니라 신화의 영역이다. 영원은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다.


위에서 기록에 대한 생각을 말했다. 기록은 어떤 사람을 우상으로 만들기도 하지만, 우상에서 끌어내리기도 하는 법이다. 기록이 있기에 우상은 우상으로써 영원할 수 없게 되는 여지를 남기게 되는 것이다.


그래, 내가 찾아야 하는 것은 기록이다. 탁자에 펜이 있었다. 기록이 있을 것이다. 방의 옷장을 열고, 서랍장을 연다. 그래, 이게 여기 있구나. 제목 없는, 빛 바랜 공책이, 우상의 어둠이자 영웅의 속죄가 내 눈 앞에 있었다. 나는 공책을 펼쳐, 그것을 읽어본다. 몇 번이고 다시 읽어본다. 이것은 어둠인가? 어둠이다. 속죄인가? 속죄이다. 기록인가? 명백한 기록이다. 영웅을 끌어내릴 수 있는, 명백한 기록이다. 그는 더 이상 영웅이 아니다─이것이 존재한다면.


나는 영웅의 궤적을 따라왔고, 궤적에 어렴풋이 남아있는 어둠을 모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 나는 그가 영웅, 우상이 아님을 깨달았다. 흠집 얘기를 하자면, 왕관이 반으로 갈라진 정도의 흔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불충분하다. 구전할 수 있는 자들은 적다. 그것은 역사의 영역에 들어섰다. 말하고 싶은 자들이 땅에 묻혀 있는, 그런 시대가 된 것이다. 하지만 아닐 수도 있다. 이 기록이 밝혀진다면, 역사는 수정된다. 영웅은 영웅이 아니게 되고, 우상은 끌어내려진다.


그렇다면 영웅을 지키는 방법은 단 하나밖에 없다.


나는 라이터를 키고, 공책에 불을 붙였다.


심장의 가구들은 대부분 목재이다. 불에 타기에는 덧없이 좋은 소재이다. 이내 어둠은 불타 사라지고, 재만이 남아 있을 것이다.


나는 다시 방을 나온다. 불에 타는 소리를 뒤로 하며, 나는 계단을 걸어내려온다.


내 발에 한 노인의 시체가 채였다. 올라올 때 밟았던 피웅덩이를 다시 한 번 밟고 말았다. 그러나 이제는 상관없다.


신문에는 「등대 습격 사건, 前 전쟁영웅 사망... 방화 후 도주」따위의 기사로 실릴 것이다. 아무렴 어쩌겠는가.


그래도 영웅은 지켜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