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촬물.

특수 효과가 쓰인 촬영물의 줄임말이지만, 이 말의 보통 의미는 하나다.

아동완구 판매 홍보용 히어로 드라마다.

이 장르에서 유명한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가면라이더라던가, 파워레인저라던가.

여기에 속하지 않아도 여러 특촬물이 많다.


어떤 종류가 있는지 중요한건 아니다.

당신이 남자라면, 한번쯤 이 영상들을 봤을 것이다.

어린시절, 당신의 가슴을 뜨겁게 울리던 사나이들의 이야기를 당신은 꿈꿨을 것이다.


"수현아, 뭔 생각 해?"


"인생 망했다는 생각."


원래는 좆같다고 말하려 했다.

그런데 이 세계의 의지인지 뭔지가 알아서 말을 검열해버린다.

아동용 드라마에서 나쁜말이 나오면 안되니까.


그렇다.

나는 특촬물에 빙의해버리고 만 것이다.

그것도 주인공이 아닌 쿨찐 엑스트라로.


"왜? 성적도 잘나오고, 운동도 잘하잖아!"


내 옆에 한 소녀가 조금은 과장되게 팔을 부풀리며 말한다.

웃는 모습이 예쁜 그녀는 이 특촬물의 주인공, '유세나'다.

맥주처럼 찰랑거리는 금빛의 포니테일, 언제나 활기차지만 되는건 잘 없는 정의감 넘치는 소녀.

그녀의 소꿉친구이자, 어릴적에 부모를 잃어버린 그녀를 거둬준 집의 아들인 '이수현'.

흔디 흔한 설정의 컨셉이다.


아니, 나의 경우엔 중간에 세나를 부러워해 타락하는 빌런이 된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아마도 2호 녀석이랑 세나가 자꾸 어울려 다니니까 거기에 질투해서 였지?

나도 그 심정은 이해가 간다.

세나같은 소꿉친구라면, 반하는게 당연할태니.


"오늘도 슈커일당 잡으러 갈거지?"


슈커는 이 창작물의 빌런이다.

그냥 뭐 흔히 있는 세계정복 노리는 외계인이다.


".....그래."


그리고 세나의 부모를 죽인 장본인이기도 하다.

세나가 라이더가 될 수 있는 있는 이유고.


"경찰에 맞기고 오늘은 그냥 가면 안될까?"


"왜? 경찰 녀석들은 그녀석을 상대 못해!"


"......아니야. 됬어."


나는 그런 그녀가 싫다.

난 별거 없는 소시민이고, 그녀는 이 세계의 주인공이다.

치열한 싸움 끝에 2호 라이더와의 사랑을 손에 쥐는 그녀와, 엔딩에서 원하는 대학에 가는 나.

나와 그녀는 엇갈릴 운명이다.

내가 그녀를 놔 주는 것이 옳겠지.

적어도 내가 좋아한 이야기의 주인공을 방해하고 싶진 않았다.

쿨해보이려고 노력하는 찌질한 '나'에게 주워진 역할은 하루라도 빨리 그녀 앞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혹시 아파? 힘 없어보여."


멍청한 심장이 두근거린다.

그래, 이 세계의 운명을 안다고, 내 배역을 자각한다고 쿨한척 해보지만 이게 내 한계다.

쿨하지도 못하고, 열등감은 열등감대로 쌓이고, 결국 잘못된 대상에게 폭팔할 멍청한 나.


"아니, 괜찮아."


그래도, 이런 나날이 싫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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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의 점심시간.

나와 그녀는 학교 옥상에서 매점에서 사온 빵을 뜯고 있었다.

그날 햇살이 좋아서.

그날 구름이 좀 예뻐서.

그날 너도 좀 예뻐서, 무심코 걸어봤던 말.


"넌 뭐가 되고싶어?"


"응?"


"아니, 그냥."


말주변도 잘 없고, 쉽게 꿍해지던 내가 무심코 너에게 던진 말을 너는 상냥히 받아줬다.


"음..... 슈커 쓰러트린 라이더?"


그리고 그 말을 후회했다.

나와 그녀가 같은 세게에 있지 않다는 사실에.


"아니, 그거 말고. 슈커를 쓰러트리고도 인생은 계속될거잖아?"


"오....역시 수현이는 머리가 좋아. 확실히 미래도 생각해야겠지!"


"그래. 너는 뭐가 되고 싶어?"


"나는, 경찰! 나쁜놈들 잡는건 이제 자신있으니까 좋은 경찰이 될것 같아!"


"경찰되려면 공부 많이 해야 하는데?"


여기서도 경찰 시험은 어렵다.


"....그렇네. 나 경찰 못하는 거야?"


그런 사소한 거에도 풀이 죽는 너를, 난 내버려둘 수 없었다.


"내가 공부 도와줄게."


"정말?"


"응. 너랑 나 둘 다 경찰이 되자."


그리고 쿨하지 못하게, 내 미래까지 약속했다.

어서 꺼저줘야 할 멍청한 나를-

먼저 알았다고 너를 좋아해버린 나를-

이제는 해어저야지 해도 너에게 언제나 약속만 하는 나를-


"좋아!"


너는 쿨하게 긍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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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도 별거 아닌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하며 해어졌던 날이였다.

오늘 저녁은 카레니 일직 들어와 달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녀는 빌런을 쫓으러 갔다.

그 날도 나는 세나를 솔직하게 응원하지 못했었다.

다치지 말라고 속으로 이름모를 신에게 기도했다.

그 날도 나는 세나에게 2호녀석과 만났는지 묻지 못했다.

아직 10화 전이니 만난적 없으리라 생각했다.


"속보입니다!"


생각없이 틀어둔 뉴스에 나온 슈커와 라이더의 싸움.

그녀가 라이더로 선택받은 뒤, 흔히 나오던 뉴스.

평상시라면 너무 보기가 무서워서 외면해버릴 그런 뉴스를-

오늘은 그러지 못했다.

왜냐하면 오늘 2호 녀석이 출현하는 시점이니까.

나는 그 녀석을 추하게 질투할게 분명하니까.

내가 세나의 첫번째가 아니게 될 날이니까.

그래서 보았다.


"크하하하! 라이더란 녀석이 고작 이정도냐?"


온 몸에 스피커를 달아둔 것 같은 슈커의 괴인이 카메라 잡혔다.

그리고는 급히 화면이 돌아가서, 세나를 보인다.


"뭐...뭐야?"


세나는 무릎을 꿇고 있었다.

라이더 슈트가 군대군대 깨졌다.

벨트를 제외하곤 여기 저기 금가고, 깨지고, 불탔다.

하얀 피부가 보이는 곳도 있다.


"큭......난 너한테 안져!"


그럼에도 일어나서 주먹을 내지르는 세나.

이제 슬슬 나타나야 한다.

그 좆같지만, 그래도 미래를 맡길 수 있는 2호 녀석이.

그 녀석의 얼굴을 봐야만, 나는 세나에게서 떨어질 수 있다.


나는 너를 인정하기로 했다.

그러니 나와라.

1분이 지났다.

세나는 땅바닥을 10번 정도 굴렀다.

그럼에도 일어나 다시 주먹을 휘두른다.

그래, 원작에서도 1분 정도 싸우다가 2호가 난입하지.

이제 곧 올 것이다.

내가 패배할 시간이겠지.


3분이 지났다.

세나는 건물 벽에 2번 정도 처박혔다.

얼굴 부분이 깨졌고, 깨진 틈새로 보이는 입에서 피가 흐른다.

5분이 지났다.

이 시점에서 등장 해야 하는데?

왜 안나오는거야?

10분.

세나는 더욱 만신창이가 된다.

그러나 2호 녀석은 나타나지 않았다.


"젠장...."


시발.

시발.

시발시발시발.

난 병신이다.

구제할 수 없는 병신.

쿨찐, 아니 그냥 찐다다.

내 머릿속에 오만가지 자기혐오가 몰아친다.

내가 빙의자가 되었는데, 원작이 그대로 유지되었으리라 생각한 것도 멍청했다!

나는 뛰었다.


"하아하아....!"


거친 숨을 몰아쉰다.

한 손으로는 스마트폰으로 중계 되는 TV를 바라본다.

2호는 도착하지 않았다.

2호는 오지 않을 것이다.


그 대신 내가 가는 것도 바보같다.

멍청한 짓이다.

나는 방해만 될 것이다.

거기서 괴인에게 납치 당해 괴인으로 개조나 안당하면 다행이다.

내가 할 수 있는건 없을 것이다.

그래도-


"제발....!"


나는 뛴다.

여기서 뛰지 않으면 후회할거다.

개처럼 숨을 헐떡이고, 멍청한 자신을 몇백번이고 타박하고 나자, 나는 그녀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후하하하! 무릎을 꿇어라 라이더여! 너는 이제 끝났다!"


"으윽.....!"


스피커 괴인은 세나를 밟고 있었다.

세나의 슈트는 이미 제 기능을 상실한지 오래.

헬멧부분만 조금 남고 걸레짝이 되었다.


"세나야!"


"...수현?"


"오, 넌 누구냐!"


괴인이, 나를 바라본다.

그저 웃기기만 한 괴인의 모습일 건데, 두려워서 다리가 떨린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수현아! 여긴 왜 온거야!"


"그...그게....."


세나가 걱정해주는데도, 나는 두려워서 제대로 말 하지도 못한다.


"도망쳐!"


"오, 여기 이 라이더의 왕자님인가?"


새끼 손가락을 들어올리는 괴인녀석.

괴인은 세나를 짓밟던 발을 땠다.


"생각이 변했다 라이더. 여기서 너의 왕자님을 죽이면 넌 더 절망하겠지?"


"아, 안돼!"


"무력함에 발버둥 쳐라."


스피커 괴인은 나를 향해 걸어온다.


"무서운가?"


"....."


"무섭겠지. 쿠흐흐흐흐."


이상한 웃음소리로 웃고 있는 괴인.

무섭다.

왜 여기 온거지?

이렇게 무력하게 죽기 위해서?


"개인적인 원한은 없다 소년이여."


어느 순간, 내 앞에 온 괴인은 손을 들어올리고 있었다.

거기엔 이글거리는 불꽃이 보인다.

저 손으로 내 머리를 찍을 것이다.

난 수박처럼 터지겠지.


아-


오늘 카레 정말 잘 됬는데.


공기를 가르는 손날이 떨어지는걸 본다.

그리고 눈을 감는다.

인생이 스친다.

그 중심엔 세나가 있다.

틱틱대도 웃어주던 너의 미소.

조금 아는 척 하는 것 뿐인 나를 똑똑하다 생각해준 너의 상냥함.

그리고 전하지 못할, 전해서는 안되었던 나의 마음.


퍽-


나는 눈을 떴다.

내 몸은 쓰러진다.

내 앞에서 쓰러지는 세나의 몸을 받아냈기에.

세나가 나 대신 그의 공격을 맞았다.


"그 정도로 너에겐 소중한 남자란 건가?"


"세....나야?"


털썩 하고 주저 앉은 세나.

그녀의 몸이 반짝인다.

변신이 풀릴때 나타나는 징조다.

그녀는 응답이 없다.

정신을 잃었거나...... 혹은 죽었거나.


왜?

어째서?

빛나던 너가 왜 초라한 나를 왜?

이어지는 의문들.


"사랑하던 남자를 위해 희생한 것인가? 크흐흐흐, 멍청하구나."


".....쳐."


나는 내가 어떤 말을 내뱉었는지 믿을 수 없었다.


"응?"


"입 닥치라고...!"


나는 쿨찐이다.

쿨하려고 노력해보지만, 결국 찌질하게만 되는 찐다.

그래서 지금은, 좀 찌질하게 해보려 한다.


"호오? 싸울거냐?"


"그래....씨발!"


쨍그랑.

내 마음속에 있던 무언가가 깨진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싸우자고 씨발. 너 오늘 집 못가."


"욕이라....꼭 입만 산 놈들이 그런 하찮은 말을 하지."


그 말이 맞다.

나는 욕 아니면 내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병신이다.

그리고, 이 세계는 그런 병신을-


"잠깐만, 너 그 손에....? 어째서?"


내 손에는 붉은 기계 상어가 들려있다.

내 허리에는 벨트가 있다.

원작에선 본 적이 없다.


"너 그거 아냐?"


"벨트조차....? 네 놈은 누구냐!"


"괴인이랑 라이더는 힘의 근원은 같아."


나는 쿨찐이다.

멋진말 따윈 할 줄 모른다.

하려 해도 아마 병신같이 말이 꼬일 것이다.

그러나 내가 내뱉어야 하는 말은 간단하다.

딱 한단어.

이 정도는 쿨찐인 나도 할 수 있다.


"변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