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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어렸을 적부터 특별한 축에 속했다.

 

아니, 정확히는 별나다고 해야 할까.

 

아주 어렸을 적부터 내 생각을 말이라도 하면 열에 아홉은 아연실색한 표정을 보여주기 일쑤였다.

 

한번은 고양이가 나무에 올라가서 못 내려올 때 나무를 박살냈던 적이 있었다.

 

또 비가 안와서 걱정이라니까 강물을 그대로 끌어다가 밭에 부어버렸다.

 

해버리고 나서 정말 먼지나게 두들겨 맞았지만, 뭐. 왜 맞았는지는 아직도 잘 이해가 안 간다. 넘치지도 않게 적당히 부었는데.

 

여차저차 성녀가 된 이후에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나를 바라보며 제발 그건 하지 말아달라고 비는 사제들의 모습이었다.

 

먼 전장에 부상자가 많으면 성수를 대포로 날려 보내서 비처럼 내리게 하면 될 것 같아서 그대로 실행했는데, 결과는 고해성사를 치러야했다.

 

마물이 교회 근처에 알짱거리기에 대충 주변에 있는 십자가로 머리를 박살내줬던 적도 있었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십자가를 보더니 다들 기겁하더라고.

 

이렇게 보니 좀 많은 것 같기도 한데, 왜 이걸 이상하게 생각하는거지? 난 아주 상식적인 수준에서 대처했었는데 말야.

 

그 날도 좀 별난 생각이 들긴 했는데, 평소보다 훨씬 심각했던 것 같다.

 

“…또 무슨 생각 하십니까.”

 

“아, 생각해봐. 네가 볼 때 난 아주 정상적이고 훌륭한 성녀의 표본 아니야? 왜 나보고 이단이라면서 죽일 듯이 쫓아오지?”

 

“상식적으로 사람을 대가없이 되살렸으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아니! 네크로멘서들도 하는 건데 신성력으로 못할게 뭐야! 사람을 되살린 기적이야말로 주님의 위대함을 설파할 수 있는 명백한 증거잖아!”

 

내가 신성력으로 손수 되살린 병사는 이마를 손으로 짚더니 얕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 병사는 살짝 복잡한 마음이 도는지 애매한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그 이야기나 마저 해주시죠. 무슨 생각을 하시면 저를 되살릴 생각을 하셨습니까.”

 

“뭐, 여느 때와 다름없이 네크로멘서들 대가리를 박살내고 돌아오는 길에 꼭 흑마법만 시체를 되살릴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 전지전능한 주님의 힘으로 못할게 없잖아.”

 

“그래서 되살렸다?”

 

“그렇지.”

 

내가 되살릴 사람 하나는 잘 고른 것 같다. 눈치가 아주 백단이다. 정작 그 병사의 얼굴은 아주 일그러지다 못해 구겨지고 있었지만.

 

“…주님, 이 가련한 어린양의 앞길을 인도해주시옵고, 악의 길로 빠지지 않도록 보살펴주시옵소서.”

 

갑자기 웬 기도람. 되살아나니까 기분이 끝내주긴 하겠지만 가끔 이렇게 상식과 동떨어진 행동을 한다. 부활시키는 과정에서 뭔가 문제라도 있었을까.

 

“근데 네가 제일 억울하지 않냐? 멀쩡한 사람모습인데 다들 언데드라고 몰아가잖아.”

 

“살리질 않으셨으면 그런 소리 들을 일도 없지 않았을까요.”

 

“원래 생명이 가장 소중한 거야. 살아났으면 고마워하면서 살아야지!”

 

“세상의 순리에 어긋나게 살고 싶진 않습니다!”

 

“그래? 그럼 다시 죽여줄까?”

 

주먹을 사뿐히 모아 쥐고 신성력을 끌어올렸다. 선명하게 피어오르는 성력이 허공을 수놓았다. 진짜 순수한 의도에서 말한 거였는데 뭔가 또 잘못됐나보다. 병사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아니, 아니! 그렇다고 누가 진짜 죽고 싶답니까! 방식이 좀 미덥지 않다는 거죠!”

 

“아, 아니야? 그럼 말고.”

 

강력한 부인에 신성력을 다시 거둬들였다. 진작에 그렇게 말할 것이지.

 

이렇게 잔뜩 떠들면서 흙길을 걸어가다 보니, 어느새 그럴듯한 마을이 눈에 띄었다. 병사는 한동안 조용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앞으로는 어떻게 하실겁니까.”

 

“네크로멘서들 때려잡으면서 평소대로 살지 않을까?”

 

“이단이라도 불리는 데도요?”

 

“네크로멘서들은 해충이잖아. 정화해야지. 그리고 주님의 뜻을 모르는 아둔한 것들이 나를 이단이라고 칭하는 거지, 주님의 뜻은 전혀 그런 게 아니야. 난 이단이 아니거든!”

 

“보통은 주님 뜻을 멋대로 곡해하는 걸 이단이라고 부르는데요….”

 

내 반박은 어디선가 날아온 현상수배지에 의해 가로막혔다. 타이밍 좋게 우리 발치에 떨어진 그 종이는 아주 기괴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WANTED==

 

네크로멘서 성녀와 데스나이트

 

-네크로멘서 성녀가 죽은 자를 되살렸다.

 

-되살린 시체는 말을 하는 것으로 보아 지능을 가진 데스나이트로 판명됨.

 

-발견 즉시 사살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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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은 했는데 조금 빠르네요. 어지간히 충격이었나 봅….”

 

“이게 뭐야!”

 

나같이 신실한 신자를 두고 네크로멘서? 네크로멘서? 네크로멘서? 드디어 그 노망난 대주교가 맛탱이가 갔나보다. 심지어 교황의 직인까지 찍혀있었다.

 

지금 여기서 이럴 때가 아니다.

 

“돌아가자!”

 

“네? 뭐라고요?”

 

“교회로 돌아가자고! 미친 유언비어를 바로잡아야지!”

 

“제정신이세요? 돌아가서 뭐하시려고요!”

 

“이 노망난 대주교를 응징해야지! 신벌이다!”

 

내 애용품인 철퇴를 소환해냈다. 감히 주님의 산증인인 성녀를 두고 네크로멘서라고 칭해? 오늘이 네 제삿날이다. 신성한 교회에서 잘도 이단의 뜻을 숨기고 있었구나. 그동안 처먹은 밥그릇이 있으니까 억울하지는 않겠지.

 

“가서 대주교님이라도 죽이시려고요? 교회의 성기사들이 전부 막아설 겁니다!”

 

“이단에게 동조하면 싹 다 심판해야지.”

 

“그런다고 이 수배지가 사라집니까? 그 원인을 해결할 생각을 해야죠! 교회로 돌아가서 대주교님을 죽이면 악명만 더 커질겁니다!”

 

맞는 말이네. 합리적이야. 하지만 그렇다고 이 유언비어를 그대로 놔둘수는 없잖아? 이단 대주교를 단죄하지 않고 이 일을 해결할 방법이라면… 음…

 

“그래. 이 일의 원인을 없애야겠지.”

 

“잘 생각하셨습니다. 돌아가서 자수하고 상황을 설명하면 웃어른 분들도 이해해주실 거…”

 

“지금부터 모든 인쇄소를 박살낸다.”

 

“좋아… 네? 아니 잠시만요?”

 

동의했네. 다른 사람이 보기에도 이 방법이 사건 해결에 가장 합리적이겠지.

 

“가자! 수배지를 해결하러!”

 

“아니 잠깐! 거기 서요! 야 이 미친 성녀 자식아!”

 

냅다 뛰기 시작했다. 목적이 정해진 이상 망설일 이유는 전혀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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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 적어준 사람 덕분에 재밌게 적었다.


말머리 소재로 하면 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