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에, 역사에 조차 기록되지 않았던 행복국이라는 작은 나라가 있었다.

그 나라에는 대대로 성군이 태어나 백성들을 행복하고 윤택하게 하니, 이 나라의 백성들은 스스로를 행복한 백성이라 칭했더라.



하지만, 어느 날 어느 순간 강력한 군사 국가에 폭군이 태어나니, 주변의 모든 국가들을 복속하고 하나 둘 정복하였더라.

그 나라의 왕은 스스로를 황제라 칭하며 스스로의 나라를 군사국이라고 외쳤더라.



"그러니까, 우리 나라도 항복해라 이 말이오?"


"그렇소."


군사국의 사신은 행복국의 왕을 똑바로 노려보며 말했다.

허나 행복국의 왕은 사신의 무례한 행동에도 별 말을 하지않고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럼, 우리 백성들의 행복은 충분히 보장해 주는게지?"


"백성의 행복? 그게 무엇이오?"


"그게 무엇이긴? 먹을것 입을것 잠을 자고 쉬는것. 그 당연한것들을 보장해줄수 있냐는 소리요."


"흠, 먹을거야 풀뿌리를 캐먹으면 될것이고 입을것이야 누더기를 기워입으면 될것이고 자고 쉬는것이야 대충 쓰러지지는 않을만한 초가집 하나 지어 살면 되는것 아니오?"


사신은 당연하다는듯이 말했다.

그에 행복국의 임금은 사신의 무례에도 허허웃던 얼굴을 굳히고서 크게 호통쳤다.


"미쳤는가! 그대의 국가는 정말 그렇게 사는가? 백성은 헐벗고 굶주려 잘곳도 없이 지내라는 말인가?"


"허, 거참. 왜 그렇게 열을 내는 것이오? 백성이 굶고 벗고 못자는게 그대랑 큰 상관이오?"


"그럼? 이 나라를 이루는것은 백성이오 나는 백성의 어버이니, 자식이 잘 먹고 잘 자고 편히 쉬는것 그것이 큰 상관이 아니라면 무엇인가?"


"허허, 웃긴 양반이로군. 백성은 그저 전쟁을 위한 소모품에 불과하오. 적당히 배를 안굶주리고 안춥고 잘수만 있으면 어디서든 새끼를 깔테지. 그런 가축같은 백성이 자식?"


군사국의 사신은 크게 웃었다.


"정말 내 살다살다 처음 들어보는 웃기는 말이오."


"...네놈..."


"거, 그래서 어쩔거요? 항복할거요?"


"항복? 백성을 위한 안전이 없는 나라에게 항복할 생각은 없다."


"호오? 감히? 행복국 따위가 우리 군사국을 이길수 있을거라 생각하는거요?"


왕은 눈을 감았다.

아무리 머릿속을 굴려 보아도 자신의 행복국이 군사국을 이겨낼 방법따위는 떠오르지 않는다.

행복국은 아마 군사국의 병사들에게 처절하게 패배하고 물어뜯겨 유린당할테지.


하지만... 하지만 항복하고서 백성들을 불행으로 밀어넣어 살게하는것이 과연 그들의 왕으로서 해도 되는 행동일까?


그것 또한 아닐것이다.


행복국의 왕은 그저 눈을 감고 입을 열었다.


"...그 또한 우리의 운명일테지. 내 너의 목을 쳐서 보내기전에 당장 이 땅에서 나가 군사국의 왕에게 전하라."


"허 참. 내 목이라도 벨것이라하면 겁이라도 먹을줄 알고? 그래서 뭘 우리 황제 폐하께 말 하라는 거요?"


"...오만한 니네 군사국에게 우리 행복국은 절대 항복하지 않을것이라고."


사신은 행복국의 왕의 말에 웃었다.


"하하하하! 그 또한 우리 폐하께서 즐거워 하실테지!!"


그리고서는 천천히 말을 읆으며 행복국의 대궐을 빠져나갔다.













군사국의 침략은 순식간이었다.


눈을 한번 깜빡할 그 시간에 군사국의 병사들은 단숨에 행복국의 땅을 짓밟으며 쳐들어왔다.


군사국의 병사들은 행복국으로 들어오며 모든것을 불태웠다.


풀도, 짐승도, 가축도.


집부터 논과 밭 모든 것들을.


역대 행복국의 왕들이, 신하들이, 백성들이 일궈놓은 모든 것들을 불태웠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군사국의 병사들이 진격하는 곳으로는 함정과 성벽 그리고 그것을 지키기위한 병사들만이 존재할뿐 그 어느곳에도 행복국의 백성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랴? 군사국의 황제와 장군은 그저 전쟁만을 하면 모든것이 충분했음인저.


이 땅에 살아가는 백성이 있든 없든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어차피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것을 불태울것인데 그게 무슨 상관이랴?



그렇게 군사국은 모든것을 불태우며 어느덧 행복국의 최후의 성에 도착하였다.


군사국의 모든 병사들이 그 성 앞에 도달했음을 깨닫자 행복국의 왕은 그 성벽위에 올라가 외쳤다.



"나는 행복국의 왕인데, 군사국의 왕인지 황제인지 하는 천하의 개 쌍놈새끼는 거기에 있느냐?"


군사국의 황제는 행복국 왕의 말에 분노하여 직접 말을 타고서 앞으로 나와 소리쳤다.


"내가 군사국의 황제다! 감히 행복국의 왕인 니놈 따위가 나를 모욕하느냐!"


"하, 어차피 곧 죽을 목숨인데 그게 무슨 상관이랴? 그보다 내 너에게 궁금한게 있어서 물을게 있어서 불렀다."


"궁금한것? 그래 어차피 니 말대로 죽을 목숨인데 어디 한번 물어봐라."


황제의 말에 왕은 크게 소리쳐 물었다.


"전쟁은 왜 하는것이냐?"


"전쟁이 재밌기 때문이다."


"재미? 그럼 너의 그 재미를 위해 희생하는 백성은?"


"백성? 하, 너는 언젠가 도축할 가축들을 신경쓰나?"


"...답이 없군..."


황제의 대답이 이어질수록 왕은 점점 더 분노로 머리가 차올랐으나, 최대한 냉정을 유지하며 계속하여 물음을 주고 받았다.


왕은 시간을 끌어야 했으니까.


하지만 황제는 물음과 대답을 오갈수록 점점 지루함을 느꼈고 결국 어느 질문을 마지막으로 소리쳤다.


"이제 그만! 재미 없구나. 거, 이제 그 성 마저 불태울 것이니 어디 니놈이 그 좋아하는 백성들이랑 잘 불타거라."


"뭣? 아, 안된다! 한가지.. 한가지만 더 질문하게 해다오."


"이제 재미없대도? 자! 준비해라!"


왕의 간절한 외침에도 황제는 아랑곳않고 자신의 병사들을 준비시켰다.



왕은 어쩔수없이 뒤를 돌아 보았다. 자신들의 백성들을 돌아 보며 마지막을 회상하려는 것일까?


허나 그 곳에는 이미 그 누구도 존재하지 않았다.

백성들이 모두 빠져나가 텅 비어 버린 성. 병사들은 백성들을 위해 같이 딸려보냈다.


"폐하..."


"응? 내관, 왜 자네는 백성을 따라가지 않았나?"


"저는 어릴적부터 폐하를 모셔온 친구같은 사이 아닙니까?"


"핫핫, 친구?"


"그럼요. 친구지요. 이제 같이 저승에 갈 사이 아닙니까?"


왕은 붉어져 오는 눈시울을 훔치며 낮게 읆조렸다.


"고맙네..."


"저희 사이에 고맙긴요."


군사국의 병사들이 몰려온다.


그들을 대비하여 많은 함정을 파두었다.


성벽을 더 튼튼하게 만들었으며 성문을 개량했다.

아니, 성문이 아예 열리지 않기를 바라기에 홀로 벽돌을 쌓아 올려 막았다.


하늘로 군사국이 쏘아 올린 돌덩어리들이 날아온다.


허나 상관없다. 이미 이 땅에는 그 어떤 희생자도 나오지 않을것이니...


"짐은 이 땅의 왕이라."


"왕의 도리는 백성을 지키고 배불리 먹이며 헐벗지 않게 살수있도록 하는것."


"내 감히 왕의 도리로서 맹세하며 말하기를 더 이상 네놈들에게 단 한명의 백성들조차 희생시키지 않으리라."


화살이 날아온다. 왕은 살며시 눈을 감았다.


내관이 먼저 왕을 대신하여 화살에 맞고 왕의 품에서 목숨을 꺼트렸다.


"먼저... 가겠습니다..."


"...잘 가게."


행복국의 왕은 그 어떤 백성도 없는 성에서 천천히 생명의 불꽃을 꺼트려갔다.

















"그래서요 아버지. 행복국의 백성들은 어디로 간 거에요?"


어린 아들이 아버지의 무릎에 앉아 물었다.


"행복국의 왕이 자신의 아들과 함께 모든 백성과 병사 신하들을 배에 태워 새로운 땅으로 보내었단다."


"그리구요?"


"그 땅에 도착한 왕의 아들과 백성들과 신하들은 그 땅에서 절치부심하며 맹세를 하였었지. 자신들의 왕의 희생을, 그 분께서 말씀하신 왕의 도리를 잊지 않으면서."


"맹세요?"


남성은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시뻘겋게 불타오르는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그래, 군사국의 황제가 이루어낸 모든것을 불태우겠노라고."



남성의 뒤로는 과거 군사국의 황제를 지칭하던 남자와 그 남자를 따르던 장군들의 머리가 창 끝에 걸려 효수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