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깨질 것 같은 숙취와 함께 눈을 떴다.

낯선 천장과 딱딱한 침대 매트릭스, 무거운 하얀 솜 이불...


"......? 뭐지시발?"


이현은 숙취로 인해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방을 둘러보았다.


침대 바로 앞에 있는 TV 널브러진 옷가지들과 속옷

그리고

내 왼팔을 배고 잠들어 있는 수진.


김수진은 소꿉친구였다 아니, 였을 것이다.

초등학교 때 부터 알게 된 그녀는 털털하고 시원시원한 행동이 특징이였다.


늘씬하고 눈꼬리가 날렵한 이목구비가 뚜렷한 전형적인 고양이 상 미녀였지만 소꿉친구가 으례 그렇듯 서로 소닭보듯 관심이라고는 일절 없었고.


서로 여친이나 남친이 생기면 떠들기도 했고. 짱친이라는항목으로 분류를 했으면 했지.


하느님 부처님 알라, 공자, 맹자님에게 모두 맹세컨데 이성으로 느껴본 적도 없는 이거 뭐, 부랄만 안달렸지. 부랄친구나 다를 바 없는 친구였...을 것이다.


'근데 씨발 눈 뜨고 보니 알몸으로 내 가슴에 기대어 팔배게까지 하고 만족스러운 듯 은은한 미소로 쳐 자고있는 얘는 대체 뭐지?'


기억을 더듬어 어제 있었던 일을 회상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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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눈 오는 날이였다.


눈 온다고 갑자기 전화를 때리며 곱창 땡긴다고 거부권조차 받지도 않고 호출하더니 만나서부터 과 선배가 치근덕대서 짜증난다는 둥 늘 해오던 이야기를 해왔었다.


으레 기름진 음식에는 술 한잔이 필요한 법.


곱창을 집어먹으며 소주를 한잔 때리다, 한 잔이 두 잔이 되고 두 잔이 두 병이 되는 절차를 거치며 열심히 술잔을 부딪힌 기억은 존재했다.


결국 둘 다 제 몸도 가누기 힘들 때까지 마시고는


술이 좀 더 강한 자의 의무감으로 이 년을 겨울 밤 길바닥에 재워 두고두고 갈궈지기 싫으면 택시를 태워 보내는게 아주 합리적인 방안이였지만.


'문제는 나도 택시타고 가야한다는 건데 그냥 방 하나 잡아서 한숨 자고 지하철 타고 가는게 낫지않을까?'


그렇게 모텔촌으로 들어서 적당한 방 하나를 물색하려던 찰나.


"머야아...모테엘... 가려고오...?"

"어, 상관없지?"

"상관...  없지 않은데에..."


취해서 상기된 얼굴로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올려다 보는 수진.


"......너어, 나한테 관심 없는거 아니여써?"


갑자기 이상한 반응을 보이며, 그럴리는 없겠지만 은근히 기대하는 듯한 것으로 추정되는 눈초리로 날 올려다보며 잡았던 내 팔뚝을 끌어안기 까지 하니.


의식도 안되던 가슴의 감촉이 나도 모르게 의식되고, 급기야 알코올에 가려진 화장품과 향수의 오묘한 조합의 향기가 묘하게 색정적이였다.


게다가 술에 취해 달아오른 숨을 내 가슴에다 쌕쌕 내뱉으며 그러고있으니 의식이 안될래야 안될 수가 없었다.


'어...? 이거 좋지않은데...?'


"뭐래 미친... 존나 힘들어서 한숨 때리고 갈려고 그런다."

"...항상 나만 진심이지"

"???????????"


그 한마디에 수강신청기간 트래픽 터진 대학 홈페이지 마냥 대가리에 D-DOS가 때려박혀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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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을 들춰 재차 확인했다.


살짝 끈적끈적 찝찝한 몸, 새하얀 수진의 나신과 가슴 끝 몽우리에 달린 수진의 유두...


"으으으응..."


눈을 꼼질거리고 인상을 찌푸리며 일어나는 수진.


'좆됐다 이거 뭐라고 설명하냐? 나도 모른다고 말해? 아니면... 아 씨발... 이제 치맥 땡기면 누구 불러서 먹냐...'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날 보며 배시시 웃고는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으며

"......? 으헿♡"

?????????


앞으로는 금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