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딴게 왜 상식이냐? 드디어 머리가 맛이 갔나?"


 내가 뺨을 붙잡고 머리를 이리저리 살피는 시늉을 하자, 장순이가 팔을 바둥거렸다.


 "모하눈고야! 나저!"


 "네, 네. 우리 장순이가 놓아달라는데 당연히 그래드려야죠."


 붙잡은 뺨을 놓고 양 손을 내 머리 옆에 가져가 항복하는 제스쳐를 취했다. 장순이가 우씨, 하며 주먹을 붕붕 휘둘렀다. 힘이 하나도 담겨있지 않은 주먹이었다. 기껏해야 투닥투닥 하는 수준이다.


 "그래서, 그딴 말은 왜 한건데?"


 "그딴 말 아니야! 상식이라니까?"


 "서큐버스가 처녀인게?"


 "당연하지!"


 "역시 제정신이 아닌 거 같은데. 오늘 병원 가서 검사 한 번 받아보자. 병원비는 내가 내줄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야!!!!"


 다시 주먹이 휘둘러졌다. 이번에는 방금 전보다 힘이 더 들어가 있었다. 퍽, 퍽 하고 팔에 꽂히는 감각이 예사롭지 않았다.


 "아야, 아야. 아픕니다, 장순씨. 저까지 당신이랑 같이 병원 신세를 지도록 만들지는 말아주세요."


 "우씨, 넌 오늘 죽었어!"


 내가 맞으면서도 끝까지 처음의 태도를 고수하자 장순이는 기어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내게 달려들었다. 아니, 정정하겠다. 날아들었다. 말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화들짝 놀란 내가 두 팔을 벌려 거의 안다시피 장순이를 받아들었다. 비록 내 키가 180cm를 넘는 장신이고 장순이가 150cm를 간신히 넘기는 단신이라고 해도, 사람 한 명이 통째로 달려드는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다. 우리의 몸이 뒤로 넘어갔다.


 등을 구부려 간신히 머리를 땅바닥에 들이박는 참사만은 면한 내가 품에 안겨든 장순이에게 버럭 소리쳤다.


 "위험하게 뭔 짓이야?! 내가 너 못 받아서 다쳤으면 어쩌려고?!"


 장순이는 어느새 내 허리에 팔을 둘러 몸을 껴안고 있었다. 그 상태로 가슴팍에 얼굴을 몇 번 비비더니, 목을 위로 젖혀 나와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헤, 하는 웃음을 지었다.

 

"장붕이 너라면 반드시 받아줬을거잖아? 믿고 있었는걸. 그런 점이 정말 좋다니까."


 "..."


 "앗, 부끄러워한다."


 "자꾸 헛소리 하면 내려놓는다?"


 "그리고."


 장순이의 손가락이 내 코를 가볍게 찔렀다.


 "네가 다칠뻔 했는데 날 먼저 걱정해주는 것도. 정말 좋아."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뜬금없이 훅 들어오는 공격에 기쁨으로 씰룩이려는 입가를 억지로 붙들어놓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어서였다. 하지만, 품 안에 안겨서 그런 나를 정확히 바라보고 있는 장순이에게 그런 감정을 숨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장순이는 히죽 웃더니 내 품안에서 폴짝 뛰어나갔다.


 "아무튼! 서큐버스가 처녀인 건 상식이야! 알았지?"


 "...이유나 한 번 들어보자. 그게 왜 상식인데?"


 방금 전에 기습공격을 당해서인지, 내 말투가 한층 누그러졌다. 솔직히 장순이가 저렇게 훅 들어오기 전에 무시했던 것도 일단 반쯤은 장난이었다. 그냥 저렇게 몇 번 놀려먹다가 져주는 척 하면서 이유를 물어볼 생각이었는데. 기습 덕분에 그 타이밍이 앞당겨졌을 뿐만 아니라 표면상으로 내가 져버린 게 됐다.


 내 질문에 장순이가 눈을 빛내며 자기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팡팡 쳤다. 순순히 그 손짓을 따라 장순이의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서로 키차이가 워낙 심한지라 내가 엉덩이를 붙인 채 앉아있고 장순이가 무릎을 대고 반쯤 서 있음에도 어깨 높이가 비슷했다. 오히려 이걸 노린건가 싶었다. 어깨높이가 비슷하다는 말은 자연스럽게 눈높이도 비슷해진다는 말이니까.


 고개를 왼쪽으로 슬쩍 돌렸더니 장순이와 눈이 마주쳤다. 장순이가 옅은 눈웃음을 지었다.


 "흠흠, 장붕 학생. 서큐버스가 무엇인지는 알고 있나요?"


 "어, 어?"


 장순이가 이렇게 본격적으로 설명을 시작할 줄은 상상도 못했기에 내가 살짝 당황하며 뜸을 들이자, 장순이의 눈초리가 샐쭉해졌다. 눈빛으로 대답을 재촉하고 있었다.


 "그... 남자 정기를 흡수해서 살아가는 생물, 맞지?"


 "아아, 조금 부족해요. 생물이 아니라 악마입니다."


 "그게 그거 아냐?"


 "떽!!!!!! 악마를 감히 생물 따위랑 비교하다니!!!!!! 감점 100점!!!!!!"


 "너도 일단 생물이란다, 장순아.."


 "앗, 아무튼. 크흠흠. 서큐버스의 정의란 정확히 말해서 '인간 남성의 꿈에 나타나 관계를 맺음으로써 정기를 강탈하는 악마' 입니다. 아시겠나요, 장붕 학생?"


 알고 있다. 더할 나위 없이 잘 알고 있다. 그거야, 서큐버스가 나오는 창작물은 어마어마하게 많으니까. 당연히 정상적인 남자라면 살아가면서 최소 한 번 쯤은 신세를 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게 떡인지든, 아니면 서큐버스 컨셉의 야동이든, 소설이든.


 "그러니까 더더욱 서큐버스가 처녀인게 말이 안 된다는거야. 남자랑 떡... 아니지, 섹스... 이것도 아니고. 아오, 아무튼 관계를 맺어서 정기를 갈취하는 악마가 무슨 처녀야? 차라리 유니콘이 비처녀라는 말을 믿겠다."


 내 주장에 장순이가 처억, 하고 검지를 내 눈앞에 내밀어 좌우로 까딱였다.


 "어허, 장붕 학생.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타파해야 할 고정관념입니다. 서큐버스는 처녀에요! 아니, 처녀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왜?"


 "전교 1등의 잘나신 머리로 생각을 해 보세요, 장붕 학생. 제가 아까 서큐버스를 정의할 때 뭐라고 했죠?"


 "인간 남성의 꿈에 나타나 관계를 맺음으로써 정기를 강탈하는 악마... 라고 했었지."


 "정확해요, 장붕 학생. 점수 5점 드리겠습니다."


 "아까 감점 100점이라며?"


 "그래서 지금 -95점이에요."


 "0점 시작이었냐?"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닙니다!"


 장순이의 손가락이 내 입을 막았다. 이쯤되니 슬슬 저 입에서 어떤 참신한 헛소리가 나올지 궁금했기에, 얌전히 그 의도대로 입을 다물어주었다.


 "자, 다시 떠올려 보세요. 서큐버스는, 인간 남성의 꿈에 나타나 관계를 맺는 악마죠."


 "그렇지."


 "꿈은 현실인가요?"


 "아니."


 "꿈에서 시험 100점을 맞으면 현실에서도 100점을 맞은건가요?"


 "난 둘다 100점 맞을수 있는데."


 "감점 100점!!!!!!"


 "야!"


 졸지에 점수가 -195점이 됐다. 그런데 이거 무슨 점수인거지. 의미가 있나.


 "한 번만 더 잘난 체를 하면 감점 200점입니다! 아무튼, 꿈은 현실이랑 다르죠?"


 "다르지."


 "그리고 서큐버스는 꿈에서 남성의 정기를 갈취하죠?"


 "아까 네 말대로라면 그렇... 어?"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장순이가 빈약한 가슴을 펴고 엣헴 하며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바로 그겁니다, 장붕 학생! 드디어 진리를 깨달으셨군요! 서큐버스가 남성의 정기를 갈취하는 것은 오직 꿈 속에서만! 그런고로 모든 서큐버스는 처녀일 수 밖에 없습니다!"


 생각보다 그럴싸한 이론이었다. 먼저 꿈은 현실이 아니라는 걸 내 입으로 직접 시인하게 만들고, 그런고로 꿈에서 이루어진 정기 갈취는 현실이 아니니까 서큐버스의 실제 육체는 처녀라는 주장으로 자연스럽게 연결한다. 그 의도를 깨닫자 절로 감탄이 새어나왔다.


 "이야, 우리 장순이 많이 늘었네. 이게 저번 기말고사에 뒤에서 전교 10등 안에 든 그 장순이가 맞나?"


 "야! 죽을래?!"


 웃으며 장순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장순이는 압으로는 펄쩍 뛰었지만 정작 내 손길이 그리 싫지만은 않은 듯 가만히 눈을 감고 머리를 쓰다듬는 손바닥의 감촉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서큐버스가 처녀인게 상식인거다?"


 "그렇지, 그렇지! 드디어 너도 알아줬구나, 장붕아!"


 머리도 쓰다듬어지고 내가 자신의 말을 긍정해줘서 그런지, 장순이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방방 뛰었다. 이쯤에서 한 번 더 놀려볼까.


 "하지만, 장순아."


 "...응?"


 멈칫, 장순이가 몸을 우뚝 멈추고 날 쳐다보았다.


 "세상에는 심기체 처녀론이라는 것이 있단다."


 "...심기체 처녀론?"


 "그래. 심(心), 기(氣), 체(體). 이 셋이 모두 처녀여야만 처녀로 인정할 수 있다는 이론이지."


 "장붕이 너 설마..."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를 눈치챈 듯, 장순이의 얼굴에서 미소가 점점 사라졌다. 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아까 장순이가 했던 포즈를 따라해 검지 손가락을 장순이의 코 앞에 가져가며 외쳤다.


 "그래! 설령 꿈에서라도 관계를 맺었다면 설령 체(體)가 처녀라고 한들 심(心)과 기(氣)가 비처녀! 그런고로 서큐버스는 처녀가 아니라 비처녀다!"


 "..."


 "자, 심기체 처녀론에 입각한 내 반박이 어떠냐! 장순... 아?"


 그냥 조금 더 놀려줄 생각이었는데, 어째 장순이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고개를 푹 숙이고, 꽉 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리는게 금방이라도 거하게 터질법한 분위기였다. 큰일났다. 너무 놀렸나. 본능적으로 좆됐음을 감지한 내가 일단 사과부터 건네려는데, 장순이가 고개를 확 들었다.


 날 바라보는 눈이 황금색으로 빛났다.


 "...어?"


 "장붕아."


 장순이의 뒤에서 끝이 스페이드 모양인 꼬리가 튀어나와 내 턱을 치켜올렸다. 잠깐, 꼬리? 그러고보니, 장순이의 몸이 점점 바뀌고 있었다.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가슴이 거의 멜론 두 개를 달아놓은듯이 커지고, 가냘팠던 허벅지에 보기 좋게 살이 붙었다. 평소의 장순이가 너무 말라서 톡 치면 부러질 것 같은 여자였다면, 지금의 장순이는... 뭐라고 해야 하나, 그래. 남자에게 성욕을 불러일으키는 여자였다.


 "장순이... 맞, 지?"


 내 확신없는 물음에 눈앞의 존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샌가, 머리에는 두 개의 뿔이 돋아나 있었다.


 "맞아."


 "그, 모습은, 뭐야?"


 "내 본래 모습."


 "네 본래 모습?"


 "응."


 장순이가 나를 가볍게 밀쳤다. 나는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간단히 침대 위로 쓰러졌다. 쓰러진 내 몸 위에 장순이가, 아니, 장순이의 모습을 한 전혀 다른 존재가 올라탔다. 위에서 내려다볼때도 엄청났는데, 밑에서 올려다보니 가슴에 달린 두 개의 흉부 지방이 상상 이상이었다. 꿈틀, 하반신에 반응이 왔다. 어쩔 수 없는 남자의 본능이었다.


 "아, 발기했구나, 장붕아?"


 그게 들켰나? 하고 속으로 놀랐다. 장순이가 쿡쿡 웃었다.


 "서큐버스는 남자의 성욕과 관련된 생리반응은 전부 직감적으로 파악할 수 있거든. 그리고, 점점 커지고 있는 것도 알 수 있고."


 꼬리가 이리저리 움직이며 내 하반신을 만져댔다. 장순이가 상반신을 숙였다. 두 개의 물컹한 가슴이 내 가슴에 맞닿았다. 그 말도 안되는 감촉에 하반신이 꿈틀거렸다.


 "아까 서큐버스가 꿈에서 관계를 맺었어도 심(心)과 기(氣)가 비처녀라고 했지?"


 정신이 점점 몽롱해졌다. 온 몸의 모든 감각이 하반신의 특정 부분으로 쏠리는 느낌이었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괜찮아. 왜냐하면..."


 장순이가 입을 내 귓가에 가져가 속삭였다.


 "내 심(心)과 기(氣)의 처녀도, 장붕이 네가 가져갔거든."


 "그, 게. 무슨, 소리..."


 "장붕이 너, 나로 몽정했었잖아. 그것도 꽤 자주. 그게 왜 그랬을거 같아?"


 그랬다. 예전부터 대략 한달에 2~3번의 빈도로 몽정을 했었고, 그 대상은 어김없이 장순이였다. 그 엄청난 사실에 점점 희미해져 가는 의식을 간신히 붙잡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설마...


 "맞아. 그 설마야. 내가 네 꿈에 들어간거지."


 장순이의 입술이 내 귓불을 가볍게 물었다. 그것만으로 몸이 벼락이라도 내달린듯 벌벌 떨려왔다. 이제 한계였다. 시야가 점점 흐려졌다. 마지막으로 눈에 담긴 건 가슴 부분의 옷을 찢어버리며 자신의 가슴을 세상에 드러내는 장순이였다.


 "내 심(心)과 기(氣)의 처녀를 가져갔으니... 우리 장붕이. 이제 체(體)의 처녀만 가져가면 되겠네?"


 서큐버스가 처녀인 건 "상식"이다.


 하지만, 가끔은 아닐 때도 있다.





 초반부 순애 파트 쓰다 각혈할뻔 ㅅㅂ 역시 난 순애 체질은 아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