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좀비들을 위한 특별 식당.

이 식당은 흉악범들을 격리하는 교도소와 연결되어있다.

재료는 교도소에서 조달한다.




2.
교도소 안의 흉악범들은 주로 연쇄살인, 소아강간, 음주운전 뺑소니 등등의 중범죄를 저질렀으며

이들에 대한 면회는 금지된다.
이들에 대해 동정심을 가지는 것 또한 금지된다.

다만 "관리"를 위해, 병에 걸렸거나 식사를 거부하는 등의 증상을 보일 경우 교도관의 감독 하에 의사가 투입될 수는 있다.




3.
식당의 셰프는 특별한 사람이다.
요리사들도 전부 특별한 사람들이다.

혹시 셰프나 요리사들이 항우울제를 요청하거나 심리적 고통을 호소하는 경우, 그들을 쉬게 해 주어야 한다.

최대 한달간의 자유 휴가가 주어진다.

봉급은 한 달 800만원이다. 휴가 시에도 지급된다.




4.
요리를 잘 하거나, 요리를 하는 데 거부감이 없는 요리사의 경우 보너스나 추가 휴가를 받을 수도 있다.




5.
식당의 메뉴는 전부 고기가 들어가 있다.
일부 인기있는 메뉴를 소개한다.


- 블랙 소시지와 치커리 샐러드
- 특제 쌈장과 생간 회
- 새콤한 소스를 뿌린 갈비 구이
- 살사 소스를 곁들인 얇게 저민 햄 모둠


요리의 가격은 가장 비싼 것이 45000원, 가장 싼 것이 9000원으로, 대부분 싼 편이다.

이는 돈이 없는 좀비들도 쉽게 먹을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6.
좀비들은 적어도 한 달에 한번씩은 반드시 식당에서 음식을 사 먹어야 한다.

먹지 않음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좀비 주변인들에 대한 피해는 좀비 스스로의 책임이다.

주변인들에게 해를 끼치고 싶지 않으면, 주기적으로 식당에서 식사하라.

이는 명령이 아닌 권유이지만, 좀비 당신들 스스로가 잘 판단하기를 바란다.







===







"여보... 나 더는 못 참겠어... 아무래도 식당에... 한번 다녀와야 할 것 같아..."


"아... 그래. 잘... 다녀와."





한 달에 한 번.
욕구가 차오른다.

성욕은 아니다.

우리 부부는 그런 쪽으로는 관계가 활발하니까.

가끔 옆집에서 한밤중에 너무 시끄럽다고 클레임이 들어올 정도다.


문제는, 이 욕구는, 내가 좀비이기 때문에 느껴지는 욕구이다.


남편에게 해를 끼치고 싶지 않다.

이 욕구를 억누르다간 남편에게 나도 모르게 해를 끼칠지도 모른다.


딱히 식당에서 파는 메뉴들이 맛이 없다던가, 너무 비싸다던가 하는 것도 아니다.

그곳의 음식들은, 고기들은 전부 맛이 좋고 환상적이며, 값 또한 굉장히 싸다.


다만... 다만 내가 망설이는 이유는...
내가 안타까워 하는 것은...


내가 그 식당에 다녀오면, 한동안 남편이 내게 키스하기를 힘들어한다는 것.

그것 하나 뿐이다.


나는 남편을 이해한다.
그럴 수 밖에 없겠지.
분명 생리적으로 무리일것이다.


하지만, 어쩐지 아까운 기분이, 슬픈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내가 좀비가 아니라면 식당에 갈 필요도 없을 테고, 그럼 남편은 언제나 나에게 입맞춤을 해 줄 텐데.





"어서오세요!
아, 혜나 씨. 오랜만이네요. 또 한 달 만이죠?"


"...네."


"하하, 아직도 부끄러워하시네.
그럴 필요 없어요. 이건 어쩔 수 없는 거니까.
무슨 메뉴 드실래요?"


"...아무거나. 아무거나 주세요. 너무 비싼 건 말고요."


"네엡!"




셰프가 웃으면서 나를 맞이해준다.

그녀는 좀비가 아니라 사람이다.

그녀는 요리를 하고, 또 요리사들을 감독한다.

그리고 언제나 웃고 있다.
해맑게, 해맑게 웃고 있다.

무서울 정도로 새하얀 이빨이 다 보이도록 웃는다.

어째서일까? 좀비인 내가 인간인 그녀의 웃음이 소름끼치는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나는 위선자다.



그녀는 돈을 벌기 위해 요리하고, 또 자신의 일에 성실히 임한다. 그리고 언제나 웃는다.

나는 평범히 살기 위해 음식을 먹고, 우울해 한다.



나는... 나는... 나는 왜 하필이면 좀비인 것일까?

그 많고 많은 이종족 중에... 하필이면... 하필이면...

차라리 내 남편도 좀비였다면 좋았을 텐데...

그이가 만약 인간이 아닌 좀비라면... 좀비라면... 나와 함께 식당에 오기도 하지 않았을까.



...식당의 창문 밖으로 우중충한 먹구름이 가득하다.
날씨가 좋지 않다.

우울할 정도로... 어둡다.







"자! 음식 나왔습니다.
힘줄로 묶은 햄과 심장 오븐구이에요. 맛있게 드세용~'



"..."




꿀꺽.

침이 넘어간다.

너무나 무시무시한 냄새.
죄악적인 살점과 근육이 마이야르 반응을 일으키며 구워진 냄새.

그 고깃덩어리 주변에 둘러진 소스와 삶아진 아스파라거스 몇 줄기.



나는 포크와 나이프를 들어, 고기를 썰고, 소스에 찍어, 삼킨다.

뭉개진 고깃덩어리가 위장에 쌓여갈수록, 나의 욕구는 점차 희미해져간다.

사실 요리를 반쯤만 먹어도 그런 욕구는 이미 다 사라지고 없다.

하지만 포크와 나이프를 멈출 수가 없다.


너무나 맛있다.

그러나 죄악적이다.

그이는 오늘도 나에게 키스를 해 주지 않겠지.



...나는 역시 어쩔 수 없는 위선자다.

고기 한 점도, 소스 한 방울도, 아스파라거스 한 줄기도 남기지 않고 요리를 모두 먹어치웠다.




"23000원 되겠습니다. 신메뉴는 괜찮았나요?
제가 새로 고안해 낸 거거든요! 혜나 씨가 첫 시식자네요. 헤헤."


"...굉장히 맛있었어요."


"아, 그래요? 다행이다...!
혹시 별로면 어떡하지 하고 마음속으로 불안해하고 있었거든요. 심장이랑 힘줄이 흔한 재료도 아니고..."


"...안녕히 계세요."


"아, 넵! 또 와 주세요!"




또 와 주세요.
나는 어차피 또 오게 될 것이다.

나는 좀비니까. 어쩔 수 없다.

셰프의 새하얀 웃음이 나를 배웅해준다.



무섭다.








===








"여보, 나 왔어..."






...남편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이는 내가 식당에서 돌아올 때면, 일부러 밖에 나가거나 낮잠을 잔다.



...이해는 가지만, 가끔은... 서운하다.



그리고 가끔은... 가끔은...






"...후우."






앗, 안돼. 뭘 주책맞게 눈물흘리는거야.
시체인 주제에. 위선자인 주제에 울지 마.

너는 그럴 자격이 없잖아.






"...그치만... 그치만..."






남길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부 다 먹어치웠잖아? 그래도 네가 위선자가 아니라고 우길 셈이야? 그 눈물은 대체 뭔데?






"...그치만...!!!"






눈물이 툭, 툭.
거실 바닥에 떨어진다.






"...나도 평범하게, 평범한 사랑을 하고 싶었을 뿐인데... 평범히 살고 싶었을 뿐인데...

좀비로 태어난 게 내 잘못은 아니잖아... 먹고 싶어 견딜 수 없는 게... 내 잘못은... 내 잘못은...!!"







"...여보?"



"!!!"






그이가 방에서 나온다.

얼굴이 약간 상기되어 있었다.






"여보... 다녀왔구나."



"...응."



"...이리 와."



"으응...??"






그이가 다가온다.
그이가 다가와서는, 내 목에 팔을 감는다.

그리고 그이는 곧, 내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겹쳤다.





"...!!"





혀가 밀려 들어온다.

아직 요리의 맛이 남아있는 혀에 그이의 혀가 밀려들어온다.

우리의 타액이 섞이고, 새로운 맛을 만들어낸다.


애정의 맛이다.

애욕의 맛이다.


한참 뒤 혀가 떨어지고, 아밀레이스와 애욕의 끈이 입에서 입으로 길게 늘어진다.



우리는 잠시 눈을 마주쳤다.

살아있는 자의 맑은 눈동자와
죽었지만 살아 움직이는 자의 죽은 눈동자가 마주친다.


전류가 튄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원하는 게 뭔지 알고 있다.



그이는 나를 공주님 안듯 들어올려, 안방의 침대로 향했다.






우리는 그날 저녁부터 밤까지, 새벽까지, 다시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전례없는 격렬한 밤을 보냈다.








===








"...이젠 도망치지 않기로 했어."



"그게... 무슨 말이야?"





그이의 품에 안겨, 체온을 느끼고 있는데 그이가 갑자기 말을 꺼냈다.

나는 되묻는다.

그 말의 뜻을 어렴풋이 깨달았으면서도, 일부러 되묻는다.





"...여보야. 당신은 나에게 있어 그 누구보다도 소중한 사람이야."



"...사람은 아니지만."



"하하... 장난치는 거 보니 기분이 조금 풀렸나봐? 그도 그럴 게, 오늘 당신 아침부터 오후 내내까지 죽을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거든."



"...이미 죽었지만. 히히..."





나의 계속되는 말장난에 그이가 내 이마를 가볍게, 장난스럽게 톡 두들긴다.

기분 좋은 손길이다.

따스하다.





"자기는 평범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어. 그래서 이젠... 더는 신경쓰지 않기로 했어."



"그래서 오늘 키스를 해 준거야? 양치도 안 했는데?"



"더는 신경 쓰고 싶지 않았어.
당신이 먹는 게 뭐든 그게 어때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음식이잖아."




"...피이, 결혼할 때부터 그랬으면, 진작에 그랬으면 좋았지."




"미안해. 결혼하면서 당신을 행복하게 해 주고 싶었지만... 마음이 먼저고 몸은 못 따라갔나봐."




"...당신은 너무 바보같이 착해.
내가 말도 안되는 투정을 부려도 받아주는 거 봐.

내가 먹는 것 때문에 당신이 키스를 거부하는 게 당연한 건데, 왜 내 투정을 그냥 받아주는거야?"




"너를 사랑하니까. 네가 뭘 먹든 너를 사랑하니까."




"...진짜 바보!!!"






작은 투닥투닥.



위선자인 나의 어리광을 남편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받아준다.

좀비와 걸혼한 것도 모자라, 이젠 나의 위선조차 사랑해 준다니, 정말 바보같이 착한 사람...



하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이젠 대놓고 인정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나는 위선자다.

하지만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는 위선자다.

그리고 나는 지금, 태어나서 최고로 행복하다.





아침 햇살이 커튼 틈 사이로, 창문을 넘어 쏟아져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