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회귀했다고 말하는 성좌를 뭐라 생각하면 좋을까.
-저는 회귀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한참 뒤, 미래에서요.
“......”
-정말이에요. 믿기 힘드시겠지만, 저는 멸망 이후의 세계에서 돌아왔어요.
앞에 있는 거울을 보니 웃고 있는 내 모습이 비쳐 보였다. 당연하게도 허탈해서 짓는 웃음이었다. 성좌도 정신병에 걸리나? 아니면 착란? 내게 미안해하는 목소리는 퍽 그럴싸해보였다. 아마도 진심이겠지. 시스템에서 표기하는 친밀도란 내가 어제 봤던 수치보다 한참 높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믿지 않는다. 설령 정말로 내게 미안해하고 있어도, 난 그 사과를 받아줄 마음이 없었다. 회귀? 지랄하네. 몇 년 만에 처음으로 내게 목소리를 들려줬으면서, 정작 처음 말하는 게 저딴 소리라니.
잘도 그럴듯한 변명을 지어낸 내 성좌에게 돌려줄 답이란 하나뿐이었다.
“미친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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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좌. 그래, 성좌.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고, 메마른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자 조금은 이성이 돌아오는 것 같았다. 내가 뭘 먼저 해야 하지? 그 질문에 대한 답은 금방 내릴 수 있었다. 내 상황부터 먼저 파악해보는 것. 어제까지만 해도 날 무시했던 성좌가, 왜 갑자기 달라졌는지부터 파악하는 게 먼저 아니겠는가.
성좌라는 게 세상에 등장한 건 그리 오래 되지 않은 일이었다. 기껏해야 내가 태어나기 전인 20년 전, 갑작스레 하늘에서 떨어져 지구와 충돌한 ‘바빌’이라는 물체 때문에 세상이 뒤집힌 적이 있었다. 건축가들의 말로는 마치 ‘탑의 부속품’ 같다며 그런 이름이 붙여졌고, 그렇게 그 내부에 대한 조사가 시작됐다.
한 과학자가 말하기를, 탑의 내부는 마치 유적과도 같은 형상이라 했다. 지구에 떨어진 수많은 탑은 전부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는데, 모두 아주 오래된 유적을 보는 것 같았다는 점이었다. 왜 그런 것이 지구에 떨어졌는가.
이유가 밝혀진 것은 그 직후였다.
바빌이라는 탑이 지구에 떨어진 이유, 바빌의 대한 모든 조사가 전부 멈춘 이유. 사람들은 여러 이유를 꼽지만, 결국 모든 키워드를 관통하는 건 하나로 밝혀졌다.
“괴물.”
총으로 죽여도 죽지 않고, 잘 훈련된 군인 수십을 우습게 죽이는 괴물. 아직도 TV엔 그 괴물에 대한 언급이 나오고 있었다. 예전에야 괴물이라 불렸지만, 지금은 ‘스펙터’라는 이름이 괴물을 부르는 호칭이었다.
조금이라도 불안정한 국가는 스펙터에게 휩쓸려 멸망하곤 했다. 뉴스에 나오는 건 날마다 사람들이 죽고 있다는 소식이었으며, 종교단체는 저들끼리 모여 지구 종말이 다가온다고 소리쳤다.
‘멸망까진 아니었지만.’
그래도 사람이 불안에 떨던 것은 사실이었다. 만약 성좌라는 존재가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세상은 조금 더 끔찍한 곳이었을 게 분명했다. 물론 그 일은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일이다. 바빌 사태로 인한 문제들이 안정화되기 시작한 건, 내가 온전한 기억을 품기도 전인 어릴 때였으니까.
자신을 성좌라 소개한 존재들은 직접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홀로그램 형태의 창을 이용해 소통했고, 인간에게 가호를 내려 스펙터와 맞서 싸울 힘을 내려줬다. 누군가는 이 힘에 의문을 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힘을 받아들여 스펙터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내가 처음 성좌를 만난 건 어렸을 때였다. 남들처럼 성좌와 함께 싸우고, 바빌을 오를 수 있을 거라고 꿈을 꾸던 시절도 있었다.
[<순결한 달>이 긍정합니다.]
[<순결한 달>이 당신의 기억력에 감탄합니다!]
물론, 내 성좌는 나를 무시했지만 말이다. 간절할 때 무시했고, 도움이 필요할 때는 바쁘다며 응답조차 하지 않았다. ‘성좌빨’이라는 단어가 만연한 시대에서, 성좌에게 무시 받는 인간이 뭘 할 수 있을까.
내가 성좌를 아니꼽게 보는 이유는 단순했다.
나한테 좆같이 굴었으니까.
...자기가 회귀했다며 떠들기 전까지는 그랬단 얘기다.
“좀 조용히 해봐. 머리 아프니까.”
[<순결한 달>이 시무룩해합니다.]
[8ㅅ8]
내가 손을 휘젓자 허공에 창이 떠올랐다.
물론 저렇게 나온다고 속아주면 안 된다. 지금까지 도와달라고 할 때마다 무시해놓고선, 이제 와 친한 척은. 한숨을 쉬며 눈살을 찌푸리자, 무어라 중얼거리던 성좌가 조금은 조용해졌다. 생각할 게 너무 많았다. 아까 회귀라고 그랬나, 그 말이 거짓말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게 사실인 것과 내가 믿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성좌와 대화를 나눠본 적도 거의 없는데, 다짜고짜 회귀했다는 말을 그렇구나, 하고 믿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럼에도 궁금한 점은 아까 성좌가 한 말에 있었다.
“그럼 왜 회귀한 건데?”
회귀라는 건 시간을 되돌려 다시 과거의 한 시점으로 오는 것.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애초에 미래를 예지하는 성좌가 있는 시점에서 상식은 의미가 없었다. 왜 회귀했냐는 그 질문에 성좌는 전보다 약간 어두운 목소리로 답하기 시작했다.
-...회귀를 한 이유에 대해서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제 회귀가 바빌에서 비롯된 것은 사실이에요.
“바빌?”
-저는 멸망 이후의 세계에서 회귀했습니다. 바빌의 최상층을 공략하지 못한 미래, 종말의 시대에서 겨우 도망쳐 나온 것이죠.
“잠깐만. 중간을 너무 건너뛴 느낌인데.”
바빌의 최상층이 있다는 것에 대한 건 이해했다. 탑의 부속품들이 떨어져 한 층씩 공략되고 있는 지금, 분명 최상층이 있을 거란 추측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공략에 실패했다는 건, 최상층에 있을 스펙터들이 전부 현실로 쏟아졌다는 소리였다.
“그러면 그 스펙터들이...사람들을 습격했겠지.”
당장 최초의 바빌에서 튀어나온 녀석들조차 감당이 힘든 현실인데, 최상층의 스펙터가 쏟아져 나온다면 그 결과는 뻔했다.
“멸망.”
[<순결한 달>이 긍정합니다.]
“그래서 너도 회귀했다는 건가. 나도 운 좋게 그때까지 살아있었다는 거고.”
성좌는 담당하는 인간이 죽을 경우 즉시 사라지게 된다. 소멸인지, 아니면 단지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는 건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때까지 살아있다 회귀까지 했단 얘기는 내가 그 시점까지 살아있다는 거겠지.
멸망했다는 것까진 이해했다. 이제부터 문제는 그 멸망까지 얼마나 걸리냐는 것이었다. 적어도 대비하고 막을 시간이 필요했으니 말이다.
“...그럼, 최상층 공략이 실패되는 시점은?”
내 예상은 한 20년 정도였다. 어쩌면 그 정도의 여유가 있기를 바라는 걸지도 몰랐다. 이유 모를 불안함이 느껴져 답을 재촉하자, 뜸을 들이던 녀석이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졸업식이 끝나기 직전에, 최상층 공략이 시작됐습니다.
“졸업식? 잠깐만, 그럼-”
-지금은 그 공략이 실패하기 정확히 3년 전이죠.
순간 턱 하고 말문이 막혔다. 멍하니 벌린 입을 손으로 가린 채 눈을 감는다. 졸업식은 내가 곧 입학할 아카데미의 졸업을 입학하는 것이었고, 그럼 오늘로 딱 3년이 남은 게 맞았다. 3년, 그 시간을 헤아려보다가 이내 쓰게 웃는다.
“조졌네.”
눈앞에 보이는 건 내일 있을 입학시험의 안내문이었다. 입학시험을 통과하고, 어떻게든 졸업해서 잘 살아보려고 했는데. 졸업하기도 전에 세상이 망한단다. 이걸 믿어야 하나 싶었지만, 아무래도 내 성좌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진 않았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정보의 범람 속에서 과열이라도 된 것처럼 뜨거워진 뇌가 연신 두통을 만들어냈다. 내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데, 세상이 망한다고? 꾹 쥐어진 주먹이 새하얗게 질렀다. 손톱이 손을 파고드는 와중에도 전혀 아프지 않았다. 그냥 어이가 없었을 뿐이었다.
미간을 꾹 누르며 생각한다. 3년 뒤에 세상이 망하는 게 사실이라면, 그게 내가 받아들여야할 운명이라면.
나는 지금 여기에서 한숨만 내쉬고 있어야 하는가.
그건 아니었다. 내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더라. 나름 악착같이 살아왔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운 좋게 만나게 된 성좌는 날 개무시했지만, 그럼에도 어떻게든 여기까지 버티며 살았다. 그런데, 3년 뒤에 세상이 멸망한다는 이유로 포기한다고?
억울해서라도 그렇겐 못 한다.
천천히 내가 가진 것에 대해 떠올려본다. 성좌는 있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신체 능력인 평균에 아슬아슬하게 걸치는 정도, 그렇다고 능력이 특출난 것도 아니었다.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성좌는 내게 어색한 단어였으니까.
그런 내가 특별한 특성이나, 높은 신체 능력을 지닌다는 것부터가 어불성설이겠지.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머릿속에 떠오른 질문의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어떻게든.
탁자에 놓인 입학시험 안내문을 집어 들었다. 괜히 종이를 집은 게 아니었다. 이 종이야 말로, 앞으로 내가 할 일에 대한 이정표나 다름없었으니까.
힘을 키운다, 그리고 바빌 최상층을 공략할 세력을 모은다. 그 두 가지 목적을 충족시키기 위한 가장 좋은 곳은 바로 아카데미였다.
일단은, 아카데미 입학이 먼저란 소리다.
주인공은 회귀 안했으니 아무튼 회귀물 아님 ㅋㅋ
"정통 판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