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제게 이르시기를,

너의 형이 어렸을 때 산에 갔다가 길을 잃어 이내 돌아오지 못하고 말았는데, 죽은 셈 치고 있었더니

그 후로 가끔 꿈을 꿀 때마다 그 형이 호랑이가 되어서 돌아오지 못한다고 울고 있는 것을 본 즉


분명히 너의 형이 산 속에서 호랑이가 되어 돌아오지 못하는 모양이니, 네가 산에서 호랑이를 만나거든 형님이라 부르고 자세한 이야기를 하라고 하시었다.


나는 하도 어이가 없어서

"그럼 피가 같은 형제이니, 제가 산에 들어가도 호랑이가 되겠습니다?"하고 물었다.


그에 어머니는 엄한 표정을 지으시어 꾸짖으며 말을 이으시기를


"환웅님에게 시집간 웅녀님의 후손이야 그 은덕이 깊고, 농경 사회를 이루어 대대손손 사람과의 조화를 이루었으니 곰이 되는 일이 없으나, 호람님의 후손인 우리는 산과 짐승에 연을 떼지 못하여 호랑이로 돌아간다."


"헛된 생각 말고 너도 산에 들어갈 생각이걸랑 말거라."


장작 거리 가지려 나무를 캐낼 적에 호랑이를 만나버려 죽을 위기에 처했구나 싶을 때에 주마등처럼 그때의 일이 지나가 넙죽 엎드려 "아이고. 형님!" 하고 말하니.


내 몸에 코를 가져다 대어 킁킁 냄새를 맡아보고는

이내 야윈 몸을 애처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고, 얘야, 그래. 어머니께선 지금도 안녕히 계시냐?”


“예, 안녕하시기야 하지만, 날마다 형님 생각을 하고 울고 만 계십니다. 오늘 이렇게 만났으니, 어서 집으로 가서 어머님을 뵙시다.”


난처한 표정으로 제안을 거절하며 내 등을 토닥인다.


“얘야, 내 마음은 지금 단숨에라도 뛰어가서 어머님을 뵙고, 그 동안 불효한 죄를 빌고 싶다만, 내가 이렇게 호랑이 탈을 쓰고서야 어떻게 갈 수가 있겠느냐..…. 내가 가서 뵙지는 못하나마, 한 달에 두 번씩 돼지나 한 마리 갖다 줄 터이니, 네가 내 대신 어머님 봉양이나 잘 해 드려라.”


오늘 있던 일이 너무나 생생하여 집에 돌아가 어머니를 만나 뵙고서 천천히 설명하였다.


"어머니 오늘 형님을 뵈었습니다. 형님이라 부르니 어머님 안부를 물어보시고는 사냥한 돼지 한 마리를 저에게 주었답니다."


식탁에 들어선 돼지고기를 보고서야 눈물을 보이시며 믿어주시는데, 고개를 들지 못하시고 하루 종일 울어 퉁퉁 부운 눈을 거울 꺼내어 닦아낸 후 그녀는 물었다. 


"건강은 해 보이더냐?"


천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제 자리로 돌아와 효를 다하려는 형님의 마음씨에 감동하고 끝내 자식을 찾아내지 못한 슬픔을 말로 표현하니.


"미안하다.....미안해....."

가늘게 떨리는 어깨.


그날따라 올려다 보던 어머니의 모습이 작고 왜소해 보였다.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처지를 한탄하고 

다음날이 되어 어머니는 형님을 위해 음식을 하고 보자기로 싸매어 내게 심부름을 시키신다.


일 끝나고 네가 먹거나, 형 만나거든 밥이나 한 끼니 채우게 주거라.


날이 좋았는지 아니면 형님이 내가 눈에 밝혔는지 운수 좋게도 만나 어머니가 챙겨주신 도시락을 함께 먹을 수 있었다.


"줄 곧 꿈꾸고 있었다. 어머니가 만들어 주시는 음식을 형제와 함께 먹는 일을 말이다."


약해 보이지 않는다 하여도 강하다는 것은 아니다.

어머니의 달래주시고 보살피시는 사랑과 걱정을 다 받지 못하고 원망해도 할 말이 없는데 가족이라고 나 반겨주니 헤실헤실 웃으며 사람의 식사도 잘 먹는다.


사람들은 언제 끝날 줄 도 모르는 긴 겨울에 집에서 얌전히 보냈다.

호랑이 형님 추우실까 걱정하시던 어머니 시름시름 앓다가 득병하여 돌아가시니.


상실에 직면하여 어머니 제사에 집중하고 형님도 어머니 돌아가신 것을 아실 적에 형님도 집에 찾아 오지를 않는다.


그리 슬퍼 혼자 집에 있으려니 미약한 희망을 발견했다.


산에 갔다가 조그만 호랑이 세 마리를 만났는데, 겁도 안 내고 가만히 보니까, 그 꼬랑지에 헝겊을 매달고 있었다. 하도 이상해서 그것이 무엇이냐고 물어 보니.


 “우리 할머니는 호랑이가 아니고 사람인데,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그날부터 우리 아버지는 굴 밖에 나가지도 않고, 먹을 것을 잡아오지도 않고, 굴 속에만 꼭 들어앉아서 음식도 안 먹고, ‘어머니 어머니’ 하고 부르면서 울고 만 계시다가 그만 병이 나서 돌아가셨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흰 댕기를 드린답니다.”


느닷없이 마주한 찬란한 생의 순간.


뜻밖의 위로를 느꼈다.


우리 가족이 나만 남은 것이 아니구나.


"내 삼촌이니, 조카야 나와 함께 산으로 가자꾸나."


"네? 삼촌은 범이 아닌데 산으로 가셔야 되겠습니까?"


"형님이 산을 올라 범이 되셨으니, 그 피를 함께하는 나도 산으로 오르면 범이 되지 않겠느냐. 어머니와 형님이 하늘로 떠났으니, 내 피를 나눈 가족이 너희 말고는 남지를 않았다."


"동생으로써 형수님이나 뵙고 형님에게 받은 은혜를 갚아야 하지 않겠나 싶다."


조카들에게 내가 형님의 빈자리를 감당할 수 있을까.

어머니 돌아가신 집에서 쓸만한 물건들을 쓸어 모으니 짐이 많다.

두 짝 등에 매어다 산행의 준비를 마쳤다.


호랑이가 사람의 물건으로 무엇을 할까 싶지 만은 내가 산으로 올라가자마자 호랑이가 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생필품과 먹을거리는 필요하지 않겠는가.


세 조카들과 나란히 산길에 들어서니 제법 울창한 숲이 펼쳐져 있는 도중에 으르렁 말소리 들려온다.


"누가 이 산의 산군의 자리를 넘보느냐. 내 아이 넘기고 썩 꺼지거라!"


적나라한 적의가 사방에 퍼지며 나를 바라보는 눈이 매서워 오금이 저렸으나


"어머님 제사가 길어져 이제서야 형님의 제사를 치루려고 제가 형수님을 뵙고자 찾아왔으니 잠시간 화를 누르시지요."


"형수님...라고?"


눈을 껌뻑이며 이게 뭔가 싶다며 내게 다가오는 호랑이 한 마리.


현재의 나를 있게 해 주신 형님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표하고,

형님이 지녔던 생전의 뜻을 기리며 추모하는 의식이니


인간이 먹는 불을 쬔 음식을 차리지 않아 과일 안주에 형식을 갖춘 술 상이 마련 되었다.


"내 남편이 인간일 적이 있었다 하였으니 인간의 제사도 치루어야 함이 옳겠구나. 범은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 하였으나 내 남편은 가죽도 이름도 남기고 가는구나."


어머니가 알려주신 형님의 이름 석자


늘해랑


어릴 때 산에 올라 호랑이가 되었으니 성인 남성이 되는 관례를 치르지 못해 초명을 쓰게 되었지만

아명을 불러서는 형님이 알아차리시지 못할 것이니 이게 최선이리라.


술 상이 펼쳐져 있는 그 앞에 형수 호랑이님 앞발에 얼굴 기대어 과거를 회상하시어


"내 낭군님은 산짐승 답지 않게 어머님의 제사도 치루지 못한다며 슬퍼 꺼이꺼이 울기를"


"멍청하게 인간에게 속아넘어가 죽었다 여기었거늘..."


"호랑이 아우가 찾아와 예를 다한 제사를 치루는 모습을 바라 보고서야 낭군님 말씀이 옳았음을 알게 되었고, 이 멍청한 여편내의 어리석음을 알게 되었구나."


조카 호랑이, 제사 술 상 뒤로 작은 몸을 숨기고서 그 위에 올려진 감을 훔치는 것을 보고 형수님 "어흥" 하시니.


"제사 도중에 음식을 먹는 것은 예법에 어긋난 일이지만, 형님께서는 후손을 귀엽게 여기실 터이니 노엽게 여기지 않을 겁니다"


형수님은 내 말에 인간의 도리가 다른 종에게도 통할 것이라는 예감을 하자 아이들을 가르칠 것을 바라였고,

나는 세 아이의 삼촌이자 선생이 되었다.


산 자는 살고 죽은 자는 말이 없다.

형님을 끝내 보지 못한 어머니와 효를 다한 형님의 삶은 슬픈 일이나,

나와 이 아이들의 삶이 계속되는 한 비극은 아닐 것이다.


"저를 형수라 부르시듯이, 시숙이니 도련님이라 불러야지요. 사람이나 호랑이나 가족 아끼기를 금 쪽 대하듯 하니 어려움 마시고 편히 계시길."


나와 함께 식사를 할 가족들이 나에게 절실했다. 그 제안을 받아 산에서의 공동 생활이 시작된다.


산골 생활이 어려울 것이라 여겼건 만, 오히려 인간으로서 빈한하게 살아왔는데 매번 고기를 먹으니 배 따시다.


"도련님은 너무나 산세에 눈이 까막눈이시니 교육이 필요하겠습니다. 범이라면 능히 가져야 할 힘과 지식이 없으니 답답하기 그지 없군요."


"내 엄하게 가르칠 것이니 저만 믿고 잘 따르십시오."


그 눈을 바라보니 그 눈에 광망이 서려 사물이 흐려지고, 정신이 몽롱해졌다.


"스스로의 본능을 믿고 몸이 요구하는 것에 귀를 기울이세요."


그것으로 내 심신은 변혁한다.


두터운 손에는 전에 없던 날카로운 손톱이 위험스럽게 휘여져 공격적이게 변해 있다.

옷이 아니라 왠 털들이 휘날리고, 몸이 배는 커져서 검은 줄무늬가 에워싸니, 내가 호랑이가 되었음을 인지했다.


"부조리한 신분제의 울분을 잊으시고, 그 어떤 것에도 속박 받지 않는 산중에 호걸이 되신 것을 축하 드립니다."


모질고 사악한 귀신이라 하더라도 순한 다람쥐나 다름이 없고, 온갖 짐승을 산하에 두어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호랑이 말이다.


"도련님도 이제는 호랑이신 바 천성적인 행운과 예리한 감을 타고나셨을 터이니, 세상을 아우를 지식과 지혜를 가져야 해요."


"공부란 목표가 있으면 빨리 성취하니, 이 모든 공부가 끝날 적에는 제 아이들을 위하여 글을 쓰심이 어떠한지?"


맹호출림. 사나운 호랑이가 숲 속에서 나오니


형님이 인간으로 둔갑할 때 사용하던 유품이라며 건내어 받은 장 담배 손에 굴려 보다가

내 이야기 처음에 쓰기 좋은 글이 생각나니.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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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호랑이의 경계에서 여행을 떠나는데 그때마다 사용하는 명칭이 "지나가던 나그네".

한국의 전래동화 세계관이라서 스토리는 많은데 문제가 있다면...


별주부 속이는 요망한 토생원,

들러 붙으려는 아양을 떠는 창귀 세 자매,

대낮에 비 내리면 호랑이 장가가는 날이라며 호랑이들이 청혼을 하고,

호가호위(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려 호기를 부리는 일) 하겠다며 따라붙는 구미호,


퍼리, ...하렘, 좋아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