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 앞에 등 돌리고 누워있는 여자는 용사다.

 

그에 비하면 나는 무엇인가. 높게 쳐줘봐야 성능 좋고 대화가 통하는 짐말에 불과할 것이다.

 

소소하게나마 짐꾼 특전기술을 가지고 있는 덕에, 나 하나를 고용하면 인부 몇 명분의 보급과 식비를 아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고블린이 던진 돌멩이도 피할 줄 모르는 내가 마물방제 전문파티에 붙어있는 것은 오로지 그 이유 뿐이다.

 

전쟁은 짐배낭이 아니라 검으로 하는 것이다. 오늘 출몰한 길이 8m짜리 히드라를 쳐죽여 농부들을 지킨 것은 그녀다. 때려죽인 히드라의 독샘과 가죽을 떼어 팔 수 있는 것도, 그로 인해 나와 나머지 파티원들이 지갑을 벌려 자랑스러운 사회인 행세를 할 수 있는 것도 오로지 그녀의 덕이다. 내가 아니라.

 

내가 한 일이라곤, 해체한 시체에서 쓸만한 부위를 떼어 야영지로 옮긴 것 뿐.

 

말인즉 오늘 가장 고생한 것은 그녀라는 말이다.

 

그녀라고. 내가 아니라. 이 미친 자식아.

 

그러니 아무리 고단했던 며칠의 보상을 받고 싶더라도. 온기가 그립더라도. 


가끔 통제할 수 없게 되는 민망한 신체부위가, 일주일 전 느닷없이 들이닥친 첫경험의 기억을 떠올려 터질 것처럼 움찔거리기 시작했더라도.

 

돌아 누워 천사처럼 새근거리는 그녀를 깨울 용기가 날 리가 없었다.

 

그녀가 뒤척인다.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굴곡이 얇은 이불 위로 드러났다. 저 선을 마음껏 쓰다듬는 달빛이 질투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일어나 조용히 나가는 것조차 엄두가 나지 않는다. 힘든 하루를 보낸 그녀를 깨우게 될까봐.


더는 견딜 수 없었다. 나는 뒤척이는 척 엉덩이를 빼서 조금 떨어졌다. 그리고 이를 악물며 지퍼를 내렸다.

 

조용히 혼자 해결하기 위해서.

 

 

 

 

 

지금 내 등 뒤에 누워 끙끙거리는 남자는 짐꾼이다.

 

어느 파티에서나 필수적이기에 인적성평가조차 가끔 생략되는 그들에 비하면, 나는 차라리 대체가 가능한 전력에 가깝다.

 

세간의 인식과 달리 전쟁은 단련한 팔과 날카로운 칼이 하는 것이 아니다. 걷는 발과 배에 들어가는 음식이 하는 것이다. 내가 할 줄 아는 것은 남들보다 조금 더 잘 휘두르는 것 뿐이다. 내가 담당한 일은 세 시간의 색적과 한 시간의 추격, 그리고 단 4분의 교전으로 끝났다.
 
그러나 짐꾼의 일은 사흘 내내 이어졌다. 그는 출진할 때는 수십 명분의 보급을 날라야 했고, 그 짐이 가벼워진 다음엔 히드라의 뼈와 살을 짊어지고 돌아와야 했다. 아무리 무게를 효율적으로 짊어지는 특전기술이 있더라도 그것이 고되지 않을 리 없었다. 

 

말인즉 오늘 가장 고생한 것은 우리 자기라는 말이다.

 

쟤라고. 내가 아니라. 이 발정난 암캐야.

 

그러니 가끔 맘대로 통제할 수 없게 되어버린 신체부위가, 또다시 제멋대로 흠뻑 젖고 말았더라도. 강요하듯 밀어붙였다가 거꾸로 혼쭐나버린 한 주 전의 첫경험이 떠올라 가슴이 자꾸만 콩콩거려도.

 

훨씬 힘들었을 그를 굳이 깨워 졸라댈 용기가 있을 리 없었다.

 

그렇게나 일이 고되었던 것일까. 나쁜 꿈이라도 꾸는지 자꾸만 옅은 신음을 흘린다. 허리 빠지게 일한 탓에 나오는 힘없는 절규겠지만, 철이 덜 든건지 자꾸만 그 소리로 짖궂은 상상을 해버린다. 신께서 이 죄많은 여자를 용서해주시길.

 

창 밖의 달님은 내 사랑을 마음껏 훔쳐보고 있을 것이다. 질투가 나서 견딜 수 없었다.나는 한 이불 덮은 그를 깨울까봐 돌아 누울 엄두도 못 내고 있는데.
 
더는 견딜 수 없었다. 뒤척이는 척 엉덩이를 빼 조금 떨어졌다. 그리고 입술을 깨물며 잠옷 바지 속에 손을 내렸다.

 

조용히 혼자 해결하기 위해서.

 

 

 

 

 

끝부분만 넣으면 안될까. 끝부분만이라면 알아차리지 못할지도 몰라.

 

이불 너머로 드러난 폭력적인 엉덩이의 윤곽을 보고, 잠시 그런 생각이 스친 순간.

마음 한 구석에서 어마어마한 비난이 기다렸다는 듯 쏟아졌다. 


좆까. 탄. 이 씹새끼야.
 
미친 놈이 염치가 있나. 생각하는 꼴이 그따위니까 요즘 짐꾼들이 불륜 양아치 소리를 듣는거야. 실무자들이 목숨 걸고 개고생할때 남아도는 정력으로 좆이나 휘두르고 다닌다고.

 

차라리 깨워서 한 시간만 박게 해달라고 하지 그러냐, 병신아. 그럴 용기도 없으면서 어떻게든 섹스는 하고 싶어서.

 

미안해. 테나. 끝을 손바닥으로 감싸고 소리 죽여 속도만 올리는 애처로운 수음.

 

왜인지 한없이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테나가 돌아누워 있다는 것이 차라리 다행이었다. 테나는 물론 눈을 감고 있겠지만, 이런 꼴로 얼굴을 마주하고 싶진 않았으니까.

 

 

 

 

끝부분만 넣으면 안될까. 끝부분만이라면 알아차리지 못할지도 몰라.

 

손가락만으로는 안달나고 애달프기만 해서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 순간, 마음 한 구석에서 어마어마한 비난이 쏟아진다. 


해 봐. 테나. 어디 돌아 누워서 바지를 벗겨보라고. 그럴 수 있으면 해봐.
 
네 덕분에 퍽이나 편히 쉴 수 있겠다. 정신나간 년아. 생각하는 꼴이 그따위니까 요즘 용사들이 갑질 논란에 시달리는 거야. 실무자들이 맞춰주려고 개고생할때 남아도는 힘으로 불량배 짓이나 하고 다닌다고.

 

차라리 깨워서 한 시간만 팡팡 두드려달라고 하지 그래. 내일 아침에 근육통때문에 제대로 걷지도 못 할 녀석을 얼마나 괴롭히고 싶은거야? 가뜩이나 짐꾼이라고 대놓고 차별 받아서, 혹시 전리품 빼돌리지 않았나 내일 사내 자체 조사까지 받을 예정인 애를.

 

미안해. 탄. 최대한 빨리 끝낼게.
 
입을 틀어막고 꿈틀거리며 숨죽여 하는 애처로운 자위. 

 

어머니가 이 추태를 봤다면 등짝을 얻어 맞았을 것이다. 물론 탄은 눈을 감고 있겠지만, 돌아누운 덕에 탄에게 얼굴을 보이지 않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진땀과 함께 절정이 가까운 곳에 이르렀을 무렵, 어떤 깨달음이 스쳤다.


정말 자고 있는 게 맞나?

 

침대의 스프링을 타고 미약한 진동이 느껴진다. 내가 아니라 상대편으로부터. 귓전에 스치는 숨소리가 불안정한 점도 마음에 걸린다. 

 

봄이 만연한 시기였다. 창문을 열어두어도 감기가 들지 않을 만큼만 선선한 날씨. 체온을 조절하려고 호흡의 속도가 바뀔만큼 춥거나 더운 밤이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내 몸이 후끈해져서 덩달아 더워진 것일지도 모른다. 진땀과 함께 새어나온 열기가 상대의 숙면을 방해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수치심이 밀려왔다.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인지.

 

 

 

 

그러나 멈출 수는 없었다.
그러나 멈출 수는 없었다. 

뿌리 끝에서부터 치미는 사정감 속에서, 나는 눈을 질끈 감고 허리를 튕기며 울부짖던 테나를 생각했다. 

아랫배가 부들거리만 어딘가 아쉬운 절정 속에서, 나는 낯선 감각에 허덕이는 두려움을 다정하게 끌어안아주던 탄의 품을 생각했다. 

 

 

 

 

입 틀어막은 허덕임이 끝난 순간, 테나는 무언가를 눈치채고 다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곧 그 얼굴에 어딘가 도망가고 싶은 사람처럼 어색한 미소가 떠올랐다. 

 

테나의 눈동자 속에 내가 보인다. 눈이 동그래진 채로 마주보고 있는 내가.

 

그 속에 비친 나는 적잖이 놀란 얼굴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조금 먼저 일을 마친 덕에, 파들거리는 뒷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감상할 수 있었으니까.

패닉에 빠진 머리속이 침묵으로 텅 빈 가운데, 오직 방금 개운해졌던 다리 사이의 좆대가리만이 해맑은 의견을 던진다.
꼴린닷.

 

“안 잤어?”

“...너는?”

  

어색한 침묵. 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돌리고 있으니, 두 번째 깨달음이 밀려온다.

 

힘든 하루였다. 그러나 가끔 기운을 바닥까지 끌어다 쓴 날엔, 오히려 욕구가 저절로 꺼지지 않을 때가 있는 법이다. 한계에 내몰리다보면 번식의 욕구가 자극당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한 번으로는 부족하다.

 

 

 

“야.”

 

똑바로 누워있던 테아가, 힐끔거리며 조금씩 꿈틀거려 몸을 붙여왔다.

 

“자?”

 

심호흡. 각오. 탄은 그대로 덮쳤다. 맘만 먹으면 그를 창 밖으로 던져버릴 수 있는 여자의 팔목을 단단히 붙잡으며 내리누른다. 

“아니!”

 

탄의 머리가 아랫배를 향해 빠르게 미끄러지자, 테나는 꺅 하고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다음날 그들은 끔찍한 허리 통증과 함께 불편한 아침을 맞았다.

 

오전 9시 42분에 느지막하게 일어나 나눈 대화는, 웃으며 잠들었을 때처럼 화목하지 않았다. 소심하게 시작된 트집은 어느새 눈덩이처럼 부풀어 진심 담긴 짜증이 되었다. 들켰다는 창피함을 뒤늦게 수습해보려는 어리숙한 시도였지만, 결국 아무 소용 없었다. 

 

그 수치심을 상대에게 투명하게 들켰다는 것을 서로가 알아차린 탓에, 결국 몇 번의 고성이 오갔다. 진짜로 싸우면 접힌다는 걸 잘 아는 탄은 다리를 부들거리며 간신히 일어서서 부엌으로 향했다. 그리고 휴전의 제스처를 겸해 물을 따라 돌아왔다.

테나는 순순히 컵을 받아들었지만, 갈등은 고작 수분 보충만으로 해소되지 않았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주문한 아침식사를 마주 앉아 해치울 때도 으르렁거림은 목소리만 낮춘 채 이어졌다.

 

든든히 기운을 되찾은 만큼 더 화가 난 테나는 파티의 사무실에 전화를 했다. 용사가문 영애의 목소리에서 울화를 읽은 접수원은 빛의 속도로 책임자에게 대화를 넘겼고, 책임자는 눈치 빠르게 사태를 진화해버렸다. 둘에게 마침 휴가를 주려고 연락하려던 참이었는데, 무슨 일로 전화하셨느냐고.

 

잠시 아무 말도 못하고 씩씩거리던 테나는, 부루퉁하게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폰을 탁 내려놓은 테나는, 테나를 노려보며 기다리고 있던 탄을 마주 노려보았다.

 

그리고 팔짱을 끼고 벽에 기대 있던 그를 힘껏 안아들어 쿠션 위로 집어던졌다.

 

그들은 당분간 침대에서 나오지 않기로 했다.  좀 더 편하게 싸우기 위해서.

 

 






단편
다음편 쓸지는 모르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