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져 가는 신념 아래 스스로의 정의(正義)를 관철하여 살아가는 용맹한 자여.


무엇이 너를, 움직이게 하는가? 그대가 정의(定意)하려는 정의(正義)는 그르고 헛된 것일 터.


강한 자가 정의(正義)요, 강한 자만이 정의(正義)를 정의(定意)할 수 있을지어니 그대는 한 줌 재로 바스라질지어다.


"닥쳐. 아직 안 끝났으니까."

"헛된 희망을 꾸는 필멸자여. 어찌 목숨을 헛되이 하는가?"


입에 맴돌던 핏덩어리를 바닥에 내뱉으며 다시 검을 쥔다. 용맹도, 용기도, 믿음도 모두 바스라졌다. 압도적인 힘은 모든 것을 무마하기에 충분했다.


신념? 꺾인 지 오래다. 희망? 바스라진 한 줌 잿더미에 있는 미약한 티끌이로다. 열정? 창백해질 때까지 이미 타올랐다.


그렇다면, 나에게 남아있는 것은 무엇인가? 스스로의 무력을 모멸하는 자학? 아니면 지키지 못한 나약함?


"아니, 아무 것도 없다."


생각조차 입으로 나와버리고 모든 이성은 마비되어 그저 미약한 숨결만을 내뱉어가는 내가, 이 힘에 항거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는가.


"대항조차 할 수 없다."


더 나약해진 말을 입 밖으로 내뱉는다. 처음의 그 열망은 한 줌 재로 화하여 사라진 지 오래.


"하지만 그러기에."


부서져가는 검을 들고, 차가워진 몸을 이끌며 모든 걸 내던질 준비를 하고


"무엇이든 정의할 수 있지."


나약해진 스스로의 정의를 다시금 되새기며 항거한다.


"재미있군. 아주, 재미있어."


그에 다시 일방적인 공세를 펼칠 준비를 하는 마왕은, 처음 느끼는 감정에 휩싸여 다시금 용사를 바라본다.


"그대는 누구인가?"

"누구보다 나약한 자, 그러기에 누구보다 더 강해질 수 있는 자.


용맹함따위는 애초에 집어던져 버린, 열정조차 바스라진 한 줌 재가 되어버린 평범한 존재.


그리고, 그러기에 더 정의를 관철할 수 있는, 나약한 자의 정의를 누구보다 아는 자."


사라져 갔던 감정을 다시금 되새기고 마지막 열망을 불태우며 마왕에게 고한다.


"나는, 용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