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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여행을 떠나지 않겠나?”

 

오랜만에 친우의 집에 놀러 온 나는 두 귀를 의심했다.

 

귀를 후비적거린 뒤 다시 묻자 그는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허허. 자네도 늙긴 하는 모양이구만. 얼마든지 반복해주지. 우리 여행을 떠나지 않겠나?”

“요양이라도 필요한 거야? 온천이라도 데려가 줄까? 내가 기가 막힌 곳 하나 알아뒀는데. 엘프만 이용한다는 꿈의 낙원이지. 어때?”

“좋지. 하지만 그런 낙원은 모험 중 우연히 찾아내는 게 더 좋지 않겠나?”

 

아무래도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닌 모양이다.

 

녀석은 흔들의자를 멈춘 뒤 굽은 허리를 쭉 펴며 창가로 걸어갔다.

 

창틀을 쓸어내리는 주름 자글자글한 손가락.

 

찬란했던 금발은 새하얗게 새었고, 총기가 가득한 푸른 눈동자는 탁해졌다.

 

사실, 나는 친우가 앞이 제대로 보이기나 하는지도 의문이었다.

 

“하아. 마차라도 수배해둘까?”

“그런 여행 말고. 모험에 가까운 무언가 말이야. 우리 젊었을 때처럼.”

“늙어서 검도 제대로 못 쥐는 영감탱이가 꿈은 커가지고.”

 

내 잔소리에도 그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오랜만이잖느냐.”

“뭐가? 모험하는 거?”

“그래. 우리의 모험을 가로막는 카트리나도 흙으로 돌아갔으니….”

 

이제는 자신을 위해서 살아보고 싶다며 친우가 중얼거렸다.

 

“그 말, 카트리나가 들으면 관짝 뚫고 튀어나오겠는데.”

“그것도 나쁘진 않지.”

 

먼저 떠난 아내를 다시 만나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어디 있겠냐며 친우가 웃음을 흘렸다.

 

어디 그뿐인가.

 

오히려 짜증이 날 정도로 담담하게 고하는 것이었다.

 

“얼마 안 남은 거 같아서 말이야.”

 

자신의 최후를.

 

“내 숨결이.”

 

 

 

* * *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아니, 부자가 쌍으로 어이가 없네?”

 

난 너 그렇게 키운 적 없어!

 

내 거센 항의에도 대자는 뺨을 긁적일 뿐이었다.

 

“아버지의 마지막 부탁이지 않습니까.”

“우와. 내가 진짜 널 잘못 키웠나 보다. 어떻게 아버지가 편하게 지낼 수 있게끔 상담하는 게 아니라 고생길이 훤한 모험길에 어울려달라고 부탁할 수가 있냐?”

“그게 아버지의 마지막 바람이시니까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꽉 막힌 부자의 반응에 나도 모르게 끙끙거렸다.

 

“그러다 갑자기 죽어버리면?”

“지켜주실 거잖아요.”

“나라고 만능은 아니야. 그리고 자기 몸 하나 제대로 못 가누는 인간 돌볼 정도로 한가하지도 않고.”

 

이래 봬도 엄청 바쁘신 몸이다.

 

오늘도 자꾸 염화를 보내는 일족에게 지네 일은 좀 알아서 하라고 얼마나 잔소리를 퍼붓고 왔던가?

 

“그렇게 한가하지도 않으시면서 매일 꼬박 찾아오시잖아요.”

“그야 걱정되니까 그렇지! 저 노친네 말하는 거 봐라. 갑자기 픽 쓰러져도 안 이상하다!”

 

내가 볼 땐 치매가 온 게 확실하다.

 

내가 그토록 두뇌 운동 좀 하라고 충고했건만. 친구 말 지지리도 안 들어요.

 

“어떻게 안 될까요?”

“정 뭣하면 네가 모시고 가던가. 할 일 없는 건 매한가지잖아?”

“아하하. 제가 움직이면 제국에서 눈치를 줘서….”

“아, 짜증나. 그놈의 소드마스터가 뭐라고. 시발 그거 우리 일족 중엔 열 중 다섯이 닿는 경지라니깐?”

“드래곤이랑 인간이 같나요.”

“순수 드래곤이 얼마나 남았다고. 죄다 인간이니 엘프니 드워프니 유사 인종들이랑 사랑에 빠져서 혈통도 다 끊겼다.”

 

시초는 어느 인간이 내뿜는 빛에 매료되어, 그가 세운 마을을, 도시를, 나라를 지킨다며 지랄했던 어느 선조용이다.

 

녀석이 죽을 때가 되었을 때.

 

아직도 인간에 미쳐 사느냐고 물으러 갔더니 그는 친우를 만나러 간다며 기뻐하더라.

 

진짜 인간박이 새끼들….

 

감정을 그토록 소모하면 수명이 당겨질 게 뻔한데도 죽음을 재촉한다.

 

죽고 재와 흙만 남기는 것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다고.

 

“아무튼, 지랄하는 애들 있으면 내가 손 좀 봐줄 테니까. 니 아비는 니가 좀 잘 모셔봐라. 좋은 데 구경도 가드리고. 뭐, 어지간한 곳은 다 나랑 카트리나랑 셋이서 둘러봤겠다만.”

“나이 먹어서 보는 풍경은 또 다른 법이죠.”

“그르냐?”

 

벌써 몇 천 년을 살아온 드래곤인 나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다.

 

산은 산이고, 강은 강이다.

 

나라는 가끔 좀 변하긴 한다. 외관부터 내관까지 모든 게.

 

뭐, 그래봤자 통치하는 인간이 조금 달라졌을 뿐이지만.

 

“드래곤은 추억을 안 되새기나요?”

“한낱 기록 덩어리에 추억은 무슨. 우리는 세상을 기록하기 위해 태어난 유사 지성체야. 추억 같은 걸 새겨봤자 중립적인 기록에 방해만 돼.”

“그런가요….”

 

녀석은 아쉬운 표정으로 허리춤에 매단 검의 폼멜을 매만졌다.

 

내가 그의 성인식 때 선물해준 검이었다.

 

“그러면 저랑 아버지와 함께했던 추억도, 아무것도 아니시겠군요.”

“그래야지. 그러려고 노력하고 있고.”

“….”

 

조금 쪼잔하기는 해도, 내 나름의 선 긋기였다. 부탁이니까 제발 이 이상 넘어오지 말아달라는.

 

다행히 녀석은 친우랑 다르게 제법 눈치가 있어서, 그 이상 나를 자극하는 발언을 하진 않았다.

 

대신 커다란 짐 덩어리를 하나 떠넘겼다. 그 짐 덩어리의 이름은 작은 종이 쪼가리였다.

 

“이건?”

“아버지께서 여행하고 싶으신 장소 명단이에요. 예전부터 준비하고 계셨나 봐요.”

“하아. 진짜 그 또라이 자식 추진력은 알아줘야 한다니까….”

 

종이 쪼가리를 펼치자 익숙한 지명들이 눈에 밟혔다.

 

50년이 더 흘러서 더는 그렇게 불리지 않는 지명.

 

전부 녀석이 젊은 시절 나와 카트리나랑 함께 여행하고 지나쳤던 장소의 옛 지명이었다.

 

나는 종이 쪼가리를 꾸깃꾸깃 형체를 알아볼 수 없도록 잘게 구겼다.

 

어차피 안 봐도 다 떠오른다.

 

눈만 감아도 그때 우리가 겪은 일, 보아온 풍경, 하물며 녀석이 먹던 삼시세끼마저 기억날 정도니까.

 

내가 짜증을 내며 머리를 벅벅 긁자 대자란 녀석이 허리를 푹 숙였다.

 

“부탁드립니다, 어머니.”

 

하.

 

이럴 때만 어머니지.

 

“운 좋은 줄 알아.”

“아윽!”

 

빌어먹을 대자의 정강이를 팍 깠다.

 

진심으로 찼으면 평생 절음발이로 살았을 것이다.

 

대자가 고통스러운 듯이 정강이를 움켜쥐면서도, 눈물을 닦아내지도 않고 나를 기대에 찬 시선으로 바라봤다.

 

“그, 그렇다는 말씀은…?”

“마차나 준비해. 다른 건 몰라도 그 상태로 옛날처럼 비포장도로를 걷는 건 절대 무리니까.”

“즈, 즉각 수배해두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어머니!”

“어머니 아니라고!”

 

난 너 같은 아이 낳은 적 없다고!

 

씩씩대고 있자 뒤에서 졸고 있던 녀석이 흐흐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뭠마.”

“아니, 그리워서. 아들놈이랑 자네를 보고 있으면. 마치 내 젊은 시절이 떠오르는군.”

“네가 더 잘생기긴 했지. 카트리나 피가 제 역할을 못 한 모양인데?”

“그것 참….”

 

태양이 기우는 마당에서, 우리는 간만에 카트리나의 뒷담을 까며 낄낄 웃었다.


걔가 들었으면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관짝 뚫고 나올 내용이었다.

 




툭하면 피 토하고, 허리 삐끗하고, 똥 지리는 노친네 용사 데리고 추억 여행 가는 드래곤 마망의 고생기행록.


가끔 용의아들 최창식 마냥 용사 힘 다시 불러낼 때마다 건강과 젊음을 되찾는, 대신 그만큼 더 빠르게 노쇠하는 시한부 용사와 보내는 마지막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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