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대학은 나름 이름있는 대학이다.

특히 악마학이 유명한데, 매년 앞으로는 뜬다고 하는 말만 반복되는 악마학계 특성상, 신입생의 이목을 끌기 위해 여러 수식어를 갔다붙여 바이오악마학, 분자악마공학, 생화학악마공학 마냥 쓸데없이 이름이 길어지는 경향이 있는데, 우리 학교는 꿋꿋하게 악마학이라는 이름을 유지하는 것만 봐도 나름 안정적으로 돌아가는 학과임을 알 수 있다.


사람을 홀려 타락시키는 절대적인 존재.

타락에 대해서는 모르겠지만 홀리는 것은 확실한지 나는 어린 시절부터 악마에 매료되었다.

그러다보니 어린 시절부터 악마에 대해 홀로 공부하기 시작하였고, 그 덕에 학창시절에는 악마학동아리의 회장이었고, 상도 매 학기마다 몇개씩 받을 지경이었다.

물론 그 대가로 내신은 조졌지만 말이다.

어쨌든 주입식 교육에 대한 비판이 갈수록 커지고 신입생이 줄어드는 현실에 내 스팩이 흔히들 말하는 '창의인제'에 부합하였다고 생각하였는지 나는 이 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렇게 입학한지 1년이 지나고 벌써 2학년이 되었다.

아예 손을 놓은 학교공부와는 달리 흥미가 있는 분야라 어느정도 성적은 유지되서 평균학점은 3점대는 나온다.


어쨌든 오늘 들을 수업은 학점 1점짜리 교양과목인 악마발생학 실험과목.

보다시피 실험과목 특성상 시간과 노력은 다른 교양과목 이상으로 들어가지만 시험도 보는데다가 정작 주는 학점은 1점짜리인 가성비는 씹창난 과목이지만 왠지 모를 의무감에 실험과목은 수강하게 된다.

특히 이 실험과목은 악명높은 악마발생학이다.

악마발생학, 그 이름답게 악마의 생리와 발생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지만, 학부생에 불과한 우리에게는 그저 살아있는 악마의 생식기를 도려내는 수업에 불과하다.


오늘 할 실험은 언제나처럼 소악마 해부.

작은 채집통 안에서 울부짖으며 조교의 손을 이리저리 피해다니는 저 사람을 닮은 작은 짐승을 해부하는 것이다.

조교는 조마다 작은 철망과, 해부접시와 해부도구, 그리고  한 마리씩 소악마를 나눠준다. 

4명씩 총 8조니까, 소악마 8마리가 죽는 샘이다.


그래도 무의미한 희생은 아닌게, 소악마들은 해부학적으로 인간과 매우 유사하면서도 덩치도 작고, 번식력과 생명력도 뛰어나다.

그런 이유로 소악마는 가장 사랑받는 실험동물이다.

현대의학과 생물학은 소악마의 뼈 위에 세워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그렇게 합리화를 하며 소악마를 철망 위에 올려놓고 꼬리를 잡아 당긴다.

그러면 소악마는 끌려가지 않기 위해 철망을 붙잡고 늘어지는데, 그 과정에서 자연스래 척추가 펴진다.

그때 뒤통수를 단단히 잡고 순간적으로 힘을 줘, 재빨리 꼬리를 잡아당긴다.

그러면 경추가 부러지면서 소악마는 즉사한다.

마취약으로 쓰는 에틸 에테르 값도 아깝다는 이유로 모든 학생들이 배우는 기술이다.

이 기술을 익히지 못한다면 8개 조 중 5개 정도를 차지하는 여자애들 조처럼 척추가 반쯤 부러져 고통받는 소악마의 절규를 들어야 한다.

그래서인지 처음에는 여초과지만 여자의 숫자는 학기마다 줄어든다.

끝까지 버티는 놈은 나처럼 합리화 할 수 있는 놈들 뿐이다.


그러니 사후경직으로 부르르 떠는 소악마의 뱃가죽을 핀셋으로 잡고, 메스로 작은 구멍을 뚫는다.

의학드라마의 영향인지 대부분은 메스로 뱃가죽을 가르려 시도하는데, 학교 실험실에서 쓰는 염가의 메스로는 실험체를 뭉갤 뿐이다.

그러므로 메스로는 가죽과 근육에 구멍만 뚫고 나머지는 뾰족한 해부가위로 잘라야 깔끔하게 절개할 수 있다.

그렇게 가죽을 H 모양으로 갈라, 해부접시 위의 고무판에 핀으로 고정시키고, 근육 또한 같은 방식으로 고무판에 고정시킨다.

그리고 두껍고 뭉툭한 해부가위로 늑골을 잘라 꺼낸다.

사실 자궁만 꺼내면 되지만, 소악마는 워낙 작아서 공간을 최대한 확보하는게 편하다.

어차피 늑골 부수는데 1분도 안걸리므로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리라.

 

그 다음은 쉽다.

꺼낸 자궁에서 난소를 도려내, 난소를 얇게 썰어 프레파라트를 만들고, 현미경 위에 올리고, 관찰한 것을 실험노트에 작성해서 제출하면 끝이다.

다 끝나면 생물폐기물로 장갑과 시체를 버리고, 쓴 도구를 씻고 가면 된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이 희생은 생명을 구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데 사실 소악마를 통한 동물실험은 사람과 같은 결과가 나올 확률이 약 80% 정도다.

말하자면 20% 정도는 사람에게 부작용이 나온다는 소리이다.

그러한 문제로 인해 사람과 극도로 유사한 대악마를 통한 실험이 종종 이루어지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국립대악마센터가 설립되었다.

그곳 연구소장이 우리 동문이기에 우리도 실습을 거기로 자주 가기에 나름 친숙한 곳이다.


나도 방학동안 교수님의 소개를 받고 간 적이 있는데, 사람 하나 간신히 들어갈 철창 안에서 웅크리고 있던 서큐버스들이 인상깊었다.

남들은 잔인하다고 하고, 동물권을 존중해야 한다고 한다.

허나 그들도 이들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약 없이는 살아갈 수 없으리라.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저들의 희생은 모두 생명을 위해서이다.


물론 저'들'과 저'들'의 희생으로 구한 생명, 둘 중 어느 쪽이 존귀할지는 모르겠지만.

   


+++++

어떤 장붕이가 쓴 글에서 갑자기 떠올라서 함 써봄.

주워갈 생각 있으면 아무나 주워가시구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