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 줄 아는 놈이면 초딩 때 한번 해봤을 공책게임을 알고 있나?

노트 주인 한 명이 상점, 훈련소, 레이드, 세계관 설정등 모든 것을 준비하고 참가 인원들은 원하는 캐릭터를 만들어 게임에 참가 할 수 있는 놀이다.

전투 스펙은 물론이고, 캐릭터에 온갖 멋져보이는 설정들을 떡칠 할 수 있기에 그 나이대 만화를 동경하던 소년소녀에게는 원시 VR월드나 다름 없었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는 법, 일반 훈련소에서 10년은 해야할 스펙업을 단 돈 500원에 해결할 수 있는 망겜이기도 했다.

자캐딸도 이 게임의 매력중 하나지만 진짜 재미는 레이드와 PVP에 있었다.

피통에 9가 몇개나 붙어있는지 셀 수도 없는 우주적 존재와 맞붙거나, 재료도 없이 기계 졸개들을 무한대로 내보내는 미치광이 과학자를 상대하는 걸 어디서 해보겠는가?

각자가 상상하는 최강의 캐릭터들을 상상으로 맞붙이는것 역시 즐거웠다.

결국 마법 Vs 과학 떡밥으로 흘러가고 9000억배 반사같은 유치찬란한 말싸움으로 번지기 일수였지만 그 나이대 최고의 오락이라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래.

그 나이대라면.


김현수, 나이 24세.

나는 지금 내가 초딩때 만든 RPG "유니버스 섀터"에 빙의했다.

어떻게 초딩때 한 놀이를 아직까지 기억하냐고?

내가 운영자였으니까.

그 게임을 계기로 보드게임쪽을 진로로 생각할 정도로 운영에는 진심이었지.

용돈 가계부로 과금 장부도 만들고, 보스 설정 같은 것도 매일 매일 새로 생각해가며 반년이나 계속했다.

친구들도 안 질리고 계속 즐겨줬기에 보람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종업식을 마지막으로 "유니버스 섀터"는 엔딩도 못낸 채 플레이어들이 흩어지며 끝이 났었는데.

어째서일까.

새 게임 개발중에 잠깐 졸았다가 눈떠보니
온 몸에 검은 붕대를 감고 은색 머플러를 두른 근본 없는 패션의 닌자가 되어있었다.

내 자캐인 '쉐도우 슬래셔'였다.

어둠을 삼킨 자이자, 앞에서는 히어로들을 규합시키고, 뒤에서는 평화를 위해 더러운 일도 서슴찮는 우주의 전설.

...이라는 설정이었을거다. 아마도.

첫 보스 침공일까지 앞으로 7일.

아무리 스스로를 사기능력으로 둘둘 도배를 해놨어도 밸런스 맞춘답시고 적도 똑같이 밸붕 사기캐를 만들어놔서 혼자서 해결하는건 답도 없었다.

"다른 곳도 많은데 왜 하필 여기에 오고 난리야.."

순식간에 몰려오는 피로감에 연신 마른세수를 하고 있자니 머릿 속에 섬광이 번뜩 스쳐 지나갔다.

쉐도우 슬래셔가 있다면, 다른 히어로들 역시 존재할 것이라고.

개쩌는 꿈인줄 알고 이것저것 시험해보다가 설정들이 대부분 구현되어 있는건 확인했다.

남은 건 이제 서두르는것 뿐.

우주 멸망까지 D-7.

최강의 초반 멤버 4명 모으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