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아모스 왕의 장남이자 트로이군의 총사령관이었던 용장 헥토르(Hector)


그리스 영웅들에 대한 평가는 시대에 따라 오르락내리락하며, 후한 평가를 받았다가 박한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헥토르는 고대 그리스 시절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일관적으로 평가가 100점 만점에 100점이 나오는 참된 영웅이다


그리스 시대에는 책임감 있는 유능한 총사령관이자, 스토리상 악당 역할임에도 지극히 안타까운 운명의 소유자로 동정 받았고


로마는 아예 자신들이 헥토르의 후예임을 자처하며 그에게 동시대 로마 영웅들마저 능가하는 최고의 위상을 부여했고


중세 시대에는 명예와 규율을 중시하는 기사도의 귀감으로 여겨 헥토르야말로 최초의 기사이자 진정한 기사라고 찬양했으며


근대와 현대에는 인권 감각이 부족하던 시절에 민간인과 포로의 생명마저 중히 여기고, 기득권보다 백성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생각했던 훌륭한 리더로서 평가 받는다



그리스 연합군이 트로이를 침공했을 때, 트로이는 동맹국 지도자들을 소환해 긴급히 방어군을 편성했는데


헥토르의 지휘가 얼마나 뛰어났던지, 심각한 인재난에 시달리던 트로이군임에도 불구하고 무려 10년 동안이나 분전했으며


그의 지휘 아래 전사한 그리스 연합군의 숫자만 헤아려도 3만 명을 넘어갔다


그래서 아킬레우스가 트로이군에게 공포의 상징이었다고 하면, 반대로 그리스군에게는 헥토르가 공포의 상징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전쟁이 막바지로 접어들 무렵, 헥토르는 아예 그리스군의 참호까지 쳐들어가 그들을 완전히 몰아낼 뻔하기도 했다


그리스군의 배를 모조리 불태우고 그들을 고립시켜 아예 말려 죽이고자 했던 것


만약 여기에서 별다른 반전이 없었다면 트로이 전쟁은 정말 그리스의 참패로 역사에 기록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하필 아킬레우스의 역린인 파트로클로스를 건드린 게 최대의 패착



아킬레우스의 절친이자, 딱히 헬레네의 구혼자가 아님에도 친구가 간다니까 뒤따라 참전한 파트로클로스


트로이군이 배를 불태우기 시작하자 당황한 그는 아킬레우스를 설득해 그의 무장을 받고 아킬레우스로 변장


아킬레우스 흉내를 내며 당황한 트로이군을 성공적으로 몰아내지만


내친 김에 트로이 공략까지 개시하려고 하다가 그만 헥토르의 손에 죽고 만다


이로 인해 극대노한 아킬레우스가 다시 참전을 선언하게 되고, 헥토르와 마지막 운명의 대결을 펼쳐 그를 죽이는 게 우리가 익히 아는 신화의 전개


친구의 원수를 갚은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의 시체를 욕보이며 장례도 치뤄주지 않고 들개 먹이로 던져주려고 했으나


헥토르의 아버지인 프리아모스 왕이 죽음을 무릅쓰고 찾아가 탄원하자 동정심을 느껴 헥토르의 시신을 반환했다고 한다



전략전술뿐만 아니라 인성 측면에도 헥토르는 예나 지금이나 고평가를 받는데


그리스군이 쳐들어와 성이 함락될 위기에 처했음에도 "민간인이 전부 들어오기 전까지 성문을 닫지 말라!"는 명령을 내리며 몸을 던져 적을 막았고


적들에게도 자비를 베푸는 일이 많아 동생인 트로일로스가 "형은 너무 성정이 물러서 문제다!"라고 투덜거리도 했고


최대한 피해를 막기 위해 그리스측과 트로이측의 1:1 결투를 성사시켜 전쟁을 끝내고자 노력하기도 했으며


이 과정에서 겁을 먹은 파리스가 결투를 거부하고 숨자 동생을 따라가 버럭 화를 내며 "너 때문에 트로이의 여인들은 남편을 잃고 아이들은 아버지를 잃었다! 그런데 너는 목숨이 아깝고 여인 하나가 아까워서 뒤로 숨느냐!"라며 다그치기도 했다



이후 이 결투가 아프로디테의 개입으로 불발되자, 이번에는 무려 총사령관 본인이 직접 대전사로 나서 2차 결투를 주최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그리스군 최고의 맹장 중 하나인 대(大) 아이아스와 맞붙었으나, 둘의 실력이 비등비등해 결국 무승부로 끝이 나고 말았다고 한다


오죽 인물이 뛰어났으면 프리아모스와 헤카베 부부가 제일 아끼는 아들도 헥토르였다고 기록 불문 공통적으로 나오고


심지어 헥토르가 죽자 프리아모스가 옷을 쥐어뜯으며 다른 아들들에게 "너희 모두의 목숨이 헥토르 하나만 못하다! 너희가 다 죽어서 헥토르가 돌아올 수 있다면 난 그리 할 것이다!"라고 울부짖기도 했다


남편으로서도 훌륭했는지, 그의 아내 안드로마케는 이후 아킬레우스의 아들인 네오프톨레모스와 재혼했음에도 불구하고 죽는 날까지 헥토르를 잊지 않았다고



그리스로마 신화의 영웅이라고 하면 우리는 늘 잔인하고 제멋대로인 꼴마초들만 상상한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이런 헥토르 같은 개쓉상타치 괴물급 영웅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알파남 + 왕위 계승자 + 천재 전술가 + S급 무력 + 자비 + 스윗함을 모두 가졌던 희대의 영웅 헥토르에게 찬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