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왕은 결국 망해 버릴 나라를 세운 거냐? 극연왕은 결국 사토 속에 묻혀버릴 길을 건설한 거냐?

너는 세상을 비웃으며 입매가 매서운 학자로 살았다.

그것은 세상 속으로 나가기 두려웠던 네가 선택한 타협안이고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닌 네 방식이니 누가 너를 탓하겠느냐.

결국 끝까지 그 타협안을 지킬 수 없어 세상에 나왔지만 얻는 건 실패와 좌절뿐이니 실망할 수도 있겠지.

그래서 몸에 기름칠하고 죽어버리려고까지 했지. 그만둬라. 실패도 네 실패고 좌절도 네 좌절이라는 것을 인정해라."


"그 때문에 너무 많은 자들이 죽었습니다."


"그건 그 자들의 것이다."


"하지만 그 자들은 저를 믿었습니다!"


"그 희망은 그들의 것이지. 그 희망을 배신했다면 모르겠지만 너는 네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최선을 다해 수행했다.

그것이 결국 헛소동이라 하더라도 부족한 정보에서 비롯된 헛소동인데 누가 너를 탓하겠느냐?"


"페로그라쥬와 악타그라쥬의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들은 죽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시우쇠가 라수의 질문에 대답했다.


"흥! 죽을 필요가 있어서 죽는 사람도 있느냐?

삶을 인정한다는 것은 삶의 기쁨이니 행복이니 하는 것들만 취사 선택하여 인정한다는 것이 아니다.

급작스러운 사고와 황당한 죽음도 모두 인정한다는 것이다. 웇가락 네 개는 한꺼번에 던져져야 한다.

그 중에서 배를 보이는 것, 혹은 등을 보이는 것만을 인정하겠다는 것은 윷놀이를 할 줄 모르는 자의 말이다.

페로그라쥬 사람들과 악타그라쥬 사람들이 분노한다면, 그 놈들은 놀 줄 모르는 자들이다.

그런 얼간이들에겐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라수는 시우쇠를 돌아보았다. 그의 두 눈이 갑작스러운 적개심으로 불탔다.


"당신은 알고 있었지요?"


"뭘 말이냐?"


"제가 여신의 도착을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공연히 북부군을 이끌고 죽음의 길로 들어서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하지만 그 모든 사실을 알면서도 당신은 잔인하게도 나를…"


시우쇠는 노호했다.


"이 빌어먹을 자식아! 그러면 내가 모든 선택의 기로에 선 사람들 앞에 나타나서 이 길로 가라, 혹은 저 길로 가라고 가르쳐줘야 된다는 거냐? 나는 그러지 않아! 너 정말 끝까지 살 줄 모르는 놈처럼 굴 테냐!"


라수는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의혹과 분노로 가득했다.

비형과 티나한도 라수의 심정에 어느 정도 동의했기에 침중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비형의 무릎에 있던 아기가 나직하게 말했다.


"라수. 시우쇠가 무슨 대답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 성격이 있으니 좋은 말을 하지 않았을 수 있겠지.

그러니 네가 이미 들었던 말일 수도 있는 말을 해주겠다. 시우쇠는 내가 언제  도착할지 알 수 없었다.

너희들도 이제 알게 되었듯이 우리는 서로를 느낄 수 없으니까.

시우쇠는 너에게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좋은 방법이 있으니 영원히 기다리라고 말할 수는 없었겠지.

그건 죽으면 평안을 얻을 테니 빨리 죽으라고 하는 말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

그렇게 말하는 대신 시우쇠는 네가 네 방식으로 살도록 내버려뒀다. 신에게 살도록 내버려뒀다고 화내지 말거라."



- 『눈물을 마시는 새』 4권, '춤추는 자' 中 -




살도록 내버려뒀다고 신한테 징징대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