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이 보통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은 일종의 파괴입니다. 상대에 대한 적극적 파괴행위지요. …

이 점에선 사랑과 증오는 거의 같아요. 어쨌든, 상대를 변화시키려고 애쓰는 것이니까요.”


- 「드래곤 라자」, 13장



“이제 그들의 배례의 주이자 증오의 주가 된 나는 아마도 그녀에게 판데모니엄의 지배자가 받을 수 있는 최악의 고통을 주겠지요.

그 고통 속에서 미쳐버려 영원히 비명을 지르고 인간을 동정한 자신을 되풀이되풀이 죽이게끔 할 겁니다.

자살은 그녀의 삶이 되겠지요.”


율리아나는 숨이 멎는 기분 속에서 오스발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다시 말을 꺼내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녀는 승리자가 아니군요.”


“아니오. 승리자입니다.”


“어째서?”


- 「폴라리스 랩소디」, 23장



정우의 처지가 유쾌하진 못했기에 틸러는 정우에게 상냥하려고 애썼으며 실제로 그러했지만, 상냥함의 이면에는 간혹 거론키 어려운 오만한 감정이 숨어 있는 법이다. '상냥한 사람들이 사는 마을은 모든 사람이 서로를 깔보는 마을이라고 말했던 것이 가이너 카쉬냅이었던가, 라수 규리하였던가?' 틸러는 얕볼 수 있는 사람에게만 친절할 수 있는 사람에 대해 말하는 그 경구가 좀 극단적이라고 생각했지만 자신이 정우를 존경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 「피를 마시는 새」, 4장



“너는 물구덩이를 증오하고 붙잡힌 자신의 상황을 증오하고 무기력한 나를 증오했다. 그 증오로 너는 나를 이끌고 거기를 벗어났다.”


“증오가…… 그건 증오가……”


“증오였어. 너였어.”


“내 소망 때문에…… 그것을 추구하기 위해……”


“황제와 제국을 증오했지.”


아실은 신음하며 죽어가던 즈라더를 떠올렸다. 즈라더는 그녀에게 자신과 황제의 차이가 무엇이냐고 질문했고 아실은 즈라더에게 싫어하는 것과 증오하는 것의 차이라고 대답했다. 그녀는 황제를 증오했다. 지멘이 말했다.


“너는 분리주의의 숨은 전제가 사람들이 자신과 대등한 존재를 정말 자신과 똑같이 받아들인다는 것이라고 했지.

그런데 그러려면 사람들은 서로를 증오해야 할 것 같아. 왜 그러냐고 묻지는 마. 내가 느끼는 것을 제대로 표현할 수가 없다.

그냥 레콘의 감이라고 설명하는 것이 속 편할지도 모르겠다.”


지멘은 자신에게 짓눌린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가 망치를 힘있게 부여잡았다.


“나는 네 증오를 되찾을 거야. 반드시.”


“반드시?”


“그래.”


- 「피를 마시는 새」, 41장




그냥 네 말도 옳고 내 말도 옳다고 존중하고 끝내버리는 친절한 불간섭이야말로 무관심이며 사람과 세상을 정체시키는 짓거리고


타인을 사랑하든 증오하든 적극적으로 참견해서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는 것이 이영도(정확히는 니체와 들뢰즈)의 사상인 것 같은데


근데 인간관계 자체에 지쳐버린 요즘 세상에는 실천하기 너무 어렵고 힘든 주장인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