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나무위키)

'회귀자와 맹인 성녀'라는 판티지 순애물 작품을 감명깊게 보았는데 작가분이신 papapa님의 작품 중에 성인 등급으로 집필하신 첫번째 작품 '나작소 작가에게 감금당했다'라는 작품을 보게 되었다. 


처음 시작부분부터 초반 부분까지는 작가님의 작품이 이렇게 딥다크했다고? 라고 생각하게 되어 굳이 끝까지 볼 필요가 있을까란 약간의 벽을 느끼긴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견뎌서 읽고 나니 딥다크가 걷혀지며 회귀자와 맹인 성녀에서 보았던 그 순수한 사랑의 느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물론 고추가루를 뿌린 맛있는 짜장면 같아서 약간 매콤한 맛(?)이 나긴 했지만 맛이 있기에 끝까지 볼 수 있었다. 


그런데 희한한 건 이 초반의 딥다크를 견디고 달콤살벌한 꽁냥 전개를 보니 어디선가 낯설지 않은 그리운 향수의 느낌이 났다. 그리고 난 그것이 어디서 찾아온 것인지를 알 수 있었다. 


그래, 바로 2015년 내가 가장 재밌게 봤고 눈물 콧물을 뺄 정도로 슬프게 보기도 했던 그 명작 드라마가 말이다.




(출처: 나무위키)


바로 킬미, 힐미였다.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룬 로맨스 스토리의 중심 소재가 바로 다중인격이라 불리우는 해리성 정체감 장애라는 점에서 이 작품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반갑고도 그리웠기 때문이다.  후에 작가가 설명하길 21 아이덴티티라는 영화에서 다중인격이란 걸 처음 알게 되며 감명을 받아 썼다고는 하지만 나에겐 오히려 킬미 힐미가 이 작품과 가장 와닿을 만큼 닮은 형제자매처럼 느껴진다. 



'나작소 작가에게 감금당했다'와 '킬미, 힐미'는 똑같이 다중인격을 통해 이루어진 만남 속에서 다중인격을 앓고 있는 환자의 마음의 상처와 병을 주인공이 알게 되며 자연스럽게 공감하여 끌리게 되고, 마지막엔 그 상처를 극복하며 영원토록 사랑하며 함께 한다는 점까지 너무도 반가우리만치 닮았다. 


하지만 '나작소 작가'는  '킬미, 힐미'와는 다른 방식으로 환자의 상처와 마음의 병, 그리고 그것을 극복해나가게 된다. 


우선 킬미 힐미에 대해 모르는 사람에 대해 설명하자면 남주인공은 6개의 인격을 지닌 남자다.


신세기:어린 시절의 아동 학대에 대한 분노와 복수심, 그러면서도 자신이 사랑했던 소꿉친구를 구하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이 합쳐져 탄생한 나쁜 남자. 

페리 박: 남주인공의 아버지가 타고 싶어했던 배인 페리에서 따온 이름이자 아동학대를 당하기 전 아버지가 순수했을 시절을 본따 만든 참어른이자 참아빠의 인격 그 첫 번째

안요나: 고통의 관리자이자 여성으로서의 인격 중 하나. 본인이 심적 고통을 감당하지 못하면 그것을 본인이 흡수하며 고통을 조율하는 역할. 절망스러운 일을 겪으면 그딴 거 모르겠으니 내가 좋아하는 잘생긴 남자에게 들이대고 보자는 전형적인 여고생의 인격이면서도 낙관론적인 인생을 비관하는 자.

안요셉: 안요나의 쌍둥이 오빠이자 문학소년, 즉 문과이며 슬픈 일을 겪으면 자살을 해서 도피하고자하는 비관론적인 인생을 비관하는 자. 남주인공의 자살충동을 상징한다.

나나: 자신 때문에 학대를 받은 소꿉친구의 인격이자 여주인공에 대한 남주인공의 기억을 상징

Mr. X: 나나의 아버지, 정확히는 아버지가 없던 소꿉친구가 상상하는 이상적인 아버지의 인격이자 조언을 해주는 마법사이며 페리 박과 같은 참어른이자 참아빠의 인격 그 두 번째


위의 인격들을 토대로 이 작품의 여주인공인 고은아의 인격과 비교해보자.


만남을 주선했던 남주인공의 난폭한 인격인 사람을 불신하고 냉소적으로 대하면서도 가족과 사람에 대한 사랑을 갈구하는 상처받은 영혼인 신세기와는 다르게 이 작품에서 고은아의 만남을 주도한 인격인 고은채는 오히려 착한 아이로 남아있어야 사랑받을 수 있다는 집착과 자신을 버리고 갈지도 모른다는 공포로 인해 사랑하는 주인공과 자신의 몸을 학대하는 그야말로 신세기와 안요셉이 합쳐진 나나라 볼 수 있다. 


킬미 힐미에서 나나는 어린 아이였을 때 여주인공이 학대를 받았으나 그 순수함을 끝까지 유지하고 있던 인격이었던 것을 순수하기에 잔혹함이 그대로 순백의 도화지에 핏빛 광기로 채워진 순수의 또다른 이면을 상징하는 마음의 상처이자 자살충동을 품은 신세기와 안요셉으로 타락한 나나로 표현되었다. 


그렇기에 남주인공은 여주인공의 상처받은 순수함을 올바른 순수함으로 치유하고 갱생시키며 자신의 딸로서 피와 눈물로 범벅된 하나의 영혼을 씻겨내고 성불시키듯 인격을 통합시켰다. 그래서인지 남주인공이 가장 눈물을 흘리며 슬퍼한 채 작별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하나하나씩 고은아의 다른 인격들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통합된다.


나이차만 있을 뿐 안요나의 포지션과 정확히 닮은 고은지는 가장 강력한 고통을 통해 탄생되었지만 주인공과의 티격태격을 통한 츤데레 코미디를 통해 마음의 고통을 벗겨내고 인격을 통합하여 성불하게 된다. 


고은삼의 경우는 페리 박처럼 구수한 아저씨의 향기가 느껴지지만 안요셉처럼 문과를 추구하는, 그러면서도 신세기처럼 부모에 대한 증오심이 바탕으로 탄생한 인격이다. 하지만 주요 베이스는 페리 박의 역할을 한다 볼 수 있다. 실제로 인격 통합 역시 남주인공에게 격려와 고마움을 드러내며 술자리에서 즉각으로 인격이 통합되니 말이다. 게다가 페리 박이 진정으로 추구했던 심적 부담으로부터 벗어나는 자유를 만끽하며 떠났으니...


그리고 특이하게 안요나의 비글미 컨셉과 동일한 고은별은 고은삼과 같이 안요나,안요셉처럼 형제자매의 역할을 하지만 희한하게도 Mr. X의 포지션을 지녔다. Mr. X처럼 상상을 통해 탄생한 인격이지만 특이하게 그러면서 원인이 무엇인지를 딱 알고 있으며 서로가 만족할 수 있는 대답을 얻고 사라지는 타이밍이 Mr. X의 통합 순서 타이밍과 절묘하게 일치한다. 그야말로 어찌보면 고은아 스스로가 생각한 올바르게 성장한 이상 속의 고은아 자신이기도 하니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작품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통합된 어른의 인격인 고은설. 재밌게도 이 인격은 완전히 올바르게 성장한 신세기라 볼 수 있다. 인격들을 제어하고 통제하는 총책임자의 역할을 하면서도 자신이 사랑했던 남주인공에게 구원을 받은 것을 계기로 남주인공을 사랑하지만 사라지고 싶지 않다는 소망을 품게 된다. 누구보다도 고은아와 남주인공을 위해서라면 사라져야하는 입장임을 알면서도 사랑하기 때문에 두 사람을 전부 포기할 수 없었던 것. 하지만 이내 화끈한 키스와 함께 모든 것의 대단원을 마무리지으며 자신이 그토록 바랬던 뜨거운 사랑을 증명하며 사라지는 것은 그야말로 신세기 그 자체. 


이렇게 쓰다보니 정말이지 킬미 힐미를 보았을 때 그 설레임을 고스란히 통째로 되살려냈다고 생각될 정도로 감명깊게 보았다. 그리고 독특하게도 고은아는 이미 죽었기에 마음의 억하심정을 토해낸 어머니를 제외하고 자신이 피해자임에도 자신의 인격을 만들어낸 존재들에게 용서를 하는 대인배적인 모습을 보인다. 킬미 힐미의 경우 만악의 근원들에게 자신들이 용서할 때까지 용서해주지 않기로 하면서 사실상 그들과의 영원한 독립을 통해 과거와 영원히 결별하며 새 출발을 하지만, 나작소 작가에게 감금당했다의 경우 오히려 관용과 용서를 통해 새출발을 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아마도 작가는 그럼에도 용서와 관용을 통해 괴로운 과거를 깔끔하게 극복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만일 킬미 힐미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사랑과 힐링의 기억을 되살리는 감각을 다시 한번 맛보고 싶다면 이 작품을 읽어보도록 하자. 물론 초반부의 딥다크를 견딜 수 있을지는 독자들의 몫에 맡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