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 전부터 수 많은 정령이 인류와 함께 했으나,


유난히 날씨에 관한 정령이 한반도를 사랑했다는 것은 정령 역사학의 상식이었다.


애초에 설화부터 그러지 않았나.


풍백, 우사, 운사.


바람을 부르는 것은 온도와 대기압의 차이요.


구름을 만드는 것은 지표면의 온도와 수증기요.


비를 만드는 것은 그 구름이 아니던가.


한반도만큼 날씨 관련 정령에게 사랑 받는 곳이 없었단 이야기이다.


괜히 임금이 정령 여왕한테 사정사정(이중의 의미로)해서 기우제를 지냈겠는가.


그래도 그나마 기우제 하면 들어나 주는 곳이라 다행이었다.




" ...씨발 그래서 그거랑 대프리카가 체험온도 41도인거랑 뭔 상관인데요. "


장붕이는 새벽 이슬이 내리기도 전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바깥에서 해야 할 일을 전부 하겠다고 나섰지만,


아쉽게도 마지막 일은 마트가 열어야 가능했던 관계로, 현재 절판 지열과 태양열 사이에서 구워지고 있었다.


물론, 대구는 불의 정령의 정수라도 박혀 있는 건가 싶을 정도로 더웠으나,


사실 저기 광활한 아프리카 대륙이나 사하라 정도로 불의 정령에게 사랑 받는 땅은 아니었다.


이 온도는 다름 아닌...


" 아쿠아! "


" 활활! "


물의 정령과 불의 정령의 시즌 별 도그 파이트가 또 한반도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을 뿐이었다.


불과 물의 충돌, 그것은 수증기!


가뜩이나 불 세력이 개같이 떡상하는 시즌인 여름 주제에, 한반도 토착 세력인 물의 정령이 이에 반발.


고온에 더해 다습을 더하니, 수 많은 한국인의 혈압을 올릴 뿐이었다.


...심지어 더 열 받는 건, 둘 다 개의 모습을 한 정령이라, 진짜 개 싸움이었다는 것 또한 한 몫 하긴 했다.


길 한 복판에서 색깔만 다른 개 20마리가 서로 서로 죽탱이와 물기로 부딫히면 고온 스팀이 생긴다.


대붕이는 정말 진심으로 이 계절이 싫어졌다.


" 따흐흑... 시베리아 겨울 요정 여왕님... 그립읍니다... "


막상 오면 개같이 춥다고 불평할 게 뻔했지만, 진심으로 지금은 그 도도한 얼음 여왕이 그리운 장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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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낮에 제대로 불 타지도 못해 사실상 증기로 익어버린 장붕이가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서 멍청하게 있던 애완 정령, 땅땅이도 축 쳐져 있는 걸 보니 덥긴 더웠던 모양이다.


혀 쭉 빼고, 화단에 누워 있는 걸 보면 여기도 그 불개들이 와서 한바탕 뒤집어 엎고 간 모양.


" 땅땅아, 들어와서 에어컨 좀 쐴래? "


하는 장붕이의 질문에 꼬리 살랑살랑 흔들면서 반기는 거 보면 많이도 온 모양이다.


마침 오늘 장 본 물건 중에는 땅의 정령 용 대형 플랜트 화분도 있었겠다,


들어 와서 화분에 누워서 좀 천천히 쉬라고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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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워 한 번 짝 해주고, 냉장고에서 수박 꺼내서 에어컨 쐬면서 먹을 때는 참 기분이 좋다.


이 덥고 지옥 같은 불반도의 온도도 윌리스 캐리어 선생님의 에어컨이면 한 방 아니겠는가.


땅땅이조차 그 짧은 다리에 다시 힘이 들어 오는 걸 보자 하니, 이 도시에서 캐리어의 은혜 없이는 살기도 힘들 테지.


전통놀이에서 답이 없으면 캐리어를 가야 한다고 하는 건지 깨달은 장붕이었다.



" ... 불의 정령의 군세가 내일 밤부터는 조금 줄어들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물의 정령과의 잦은 교전으로 인해 거대한 기압이 생성되었으며... "


뉴스에서 말 하는 걸 들어보니, 올해 태풍은 좀 거대하게 올 예정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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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웅께서 내려오실 때 풍백, 운사, 우사를 데리고 오셨으나,


아쉽게도 그것은 물의 정령과 불의 정령이었으니,


둘이 개같이 싸울 때마다 구름이 생기고 비가 온다 하였다.



정령은 하급일 수록 짐승에 가깝고


상급일 수록 사람에 가깝습니다.


현재 대구에서 싸우는 정령 군세는 죄다 하급이고,


모습은 늘 볼 수 있는 시고르자브 새끼부터 성체 직전의 청소년 개까지.


땅땅이는 웰시 코기입니다. 비료가 외국산이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