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하여 현대는 신분제가 철폐되고 누구나 평등한 인권이 생겼다.

<한국사 국정교과서 p.289>


설마 세상을 그렇게 쉽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길 바란다.


"마력의 흐름을 보니 너도 적룡고 출신이지?"

"그렇습니다 선배님."

"그럼 우리 화염 학파 지망이겠고. 이쪽으로 와라, 적룡 기숙사는 저쪽이다."


그렇게 같은 반 학생이 낡아빠진 1학년 기숙사에서 삐까번쩍한 건물로 향한다.

어디로 갈 곳이 없어 곰팡내 나는 마룻바닥에 모여 앉은 우리.


"왜 1학년의 공용 기숙사만 이래?"

"어차피 다들 1년만 쓰고 지나간다는 생각이니까, 그리고 1학년이 무슨 힘이 있겠어."

부지를 지나오면서 화려하고도 세련된 건물들을 보고 온 우리에게 거미줄 쳐진 목조건물은 충격이었다. 


국립 아카데미의 신입생은 1년간의 생활을 거쳐 적성에 따라 학파에 입문한다.  

본인의 개성을 따라 앞길을 정하는 것, 그게 커리큘럼의 의도지만 현실은 다르다.

화염 마법을 중점으로 가르치는 적룡고, 냉기 마법을 중점으로 가르치는 한빙고, 아예 혈연만 받는 죽음과 그림자의 학파 사영고.


'내가 적룡고 출신이고, 우리 딸도 꼭 적룡고에 가야만 해요!'하며 고집으로 자녀를 끌고 가니 없던 적성도 생길 수 밖에.


그렇게 모인 동창들은 저렇게 건물을 짓고 서로만의 우애를 돈독히 쌓으며, 학연을 만든다.

나중에 마탑을 가거나 공무원을 노려도 면접관은 동문만 뽑겠지.


결국 학벌은 미성년자, 아니 태어나는 순간 정해지는 것이다.



쾅! 쾅!

문을 두들기는 소리에 나가보니.


"어이 신입생! 우리가 지금 실험 때문에 땅이 조금 필요해서 그런데 나와줄래?"


온갖 파괴마법을 장전한 선배들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대규모 의식을 통한 소환마법을 연구중인데 평평한 땅이 필요하거든. 1학기만 지나면 돌려줄께."

"그럼 우리는 어디서 자요?"

"그거야 나도 모르지. 일단 마법진 때문에 나라시 쳐야하니까 좀 나와봐, 너희까지 휘말리면 교칙 위반이니까." 


에미가 분유로 항공유를 처멕였나. 


"야이 개새끼야." "뭐?"

내 말에 꼴받았는지 선배의 눈에 붉은 마력광이 발한다.


"결투다 텐련아, 나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인재에게 '하늘이 내려준 천재'가 참교육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