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정독하다 삘 받아서 씀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약칭 팅테솔스 혹은 TTSS.


첩보 좋아하는 장붕이라면 한번쯤은 들어봤을 소설이지.


모르는 장붕이들을 위해 잠깐 간단히 설명하자면,


TTSS는 영국의 대외정보기관 SIS(MI6) 출신 작가가 집필한 첩보장르 소설로, 007시리즈와 함께 냉전을 배경으로한 첩보소설 중 양대산맥을 이루는 존 르카레 장편시리즈에 포함된 소설이고.


동 작가의 작품인 영국 정보부 요원이 복수를 위해 동독 슈타지를 엿 먹이기 위해 동독으로 건너간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와 반대로 영국 정보부 요원이 영국 정보기관(SIS, 작중에선 "서커스"로 우회서술)의 꼭대기에 침투한 소련 KGB의 이중간첩(Double Agent, 작중에선 "두더지(mole)"로 은유) 색출하는 일련의 과정을 담아내고 있음.


TTSS엔 서커스에서 쫓겨났다가 두더지를 쫓기 위해 다시 현장으로 복귀한 정보관 조지 스마일리와, 영국을 배신하고 소련으로 전향한 두더지(이중간첩), 그리고 조지 스마일리의 아치 에네미이자 두더지를 포섭한 KGB 요원 카를라가 메인 인물임(물론 카를라는 직접 등장하지 않음)


소설의 말미에 두더지와 스마일리가 대면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나오는데, 원작소설 번역이 개판인걸 감안하고 봐도 꽤 흥미로운 대목이었음.


자신의 조국인 영국을 배신하고 자발적(Walk-in)으로 소련에 전향한 이중간첩은 스마일리에게


서방세계(민주주의-자본주의 체제)가 추악하게 몰락할 것이고, 미국은 혁명(이상)을 수행할 능력이 없으며 영국은 이제 뒷방 늙은이 신세가 되었다고 말함.


또한, 그는 추악한 서방세계와 달리 동방세계에 인류의 미래가 있으며, 자신의 선택(소련으로의 전향)을 '미학적인 판단'이었다고 변호함.


개인적으로 아주 흥미로운 부분이라고 생각해.


냉전 시기, 국가를 배신하고 다른 진영으로 전향한 스파이들은 대체로 신념 혹은 돈에 따라 움직였다고 보는 평가가 지배적임.


체포 직후 미국 CIA에 큰 충격을 줬던 엘드리치 에임스(올드리치 에임스라고도 함)는 돈 문제 때문에 소련에 CIA의 기밀을 팔았음.


검거 직전까지 수많은 기밀을 KGB에 팔아치웠기 때문에 CIA는 10여명의 정보요원이 순직했고, 200개 가량의 공작이 개박살나는 사상 초유의 피해를 봐야했지.


참고로 이 인물이  유니콘이 보면 경기를 일으킬 해외공작.feat cia에 등장한 제인 피터슨의 상관임 씨발ㅋㅋㅋㅋㅋㅋ



엘드리치 에임스와 반대로 영국에 전향한 올레그 고르디예프스키는 소련 체제를 향한 깊은 반감(프라하의 봄 사건이 계기가 됨)을 갖고 무보수로 영국 SIS에 기밀을 제공했음.


이렇듯 대체로 1세계(자유진영) 정보기관의 이중간첩은 돈 문제로 전향을 결심하고, 반대로 2세계(공산진영) 정보기관의 이중간첩은 체제에 대한 반감과 환멸을 느껴 전향을 결심하는데,


TTSS의 두더지가 친 대사를 보면 사실 소련으로 전향한 이중간첩들에게 있어 '돈'이란 그저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하기 위한 변명이고.


본심은 생활고를 겪으며 은연중에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점을 인식해 '아, 그래도 2세계라면 뭔가 다르지 않을까?'란 생각에 전향을 결심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상대 체제를 무너뜨리려던 그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상대 체제에서 미래와 희망을 찾은 게 아닐까.


아마 르카레도 이와 같은 생각에 KGB로 전향한 두더지의 선택을 '미학적인 판단'으로 묘사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