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진시(辰時)경 관야 앞은 구경을 나온 저잣거리의 수많은 인파로 수군거렸다.


"네 이놈 사또야~"


"예, 예! 나으리!"


관야 앞 흙바닥에 납작 엎드려 벌벌 떠는 사또와 관야의 그늘 아래 배를 벅벅 긁는 한 사내가 있었다.


"평산 신씨의 장남으로 장원 문과 갑과에서 대성을 하여 단번에 급제를 하고, 전하의 눈에 들어 종2품으로 오른 이 몸이 누구더냐?"


"시, 신월량이시옵니다, 나으리!"


 사또는 체면도 내려 놓은채 바닥에 설설 기는 말투로 답하였다, 이에 그 사내는 흡족한 듯 미소를 보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바로 맞췄다! 내가 바로 신월량이시다 이 말이야! 허나 사또야, 뭔가 이상하지 않더냐?"


"... 뭐가 말입니까요?"


"이 몸이 겨우 종2품에 그칠 관상이더냐 이말이다!"


자랑스럽게 스스로의 가슴을 팡팡 치대며 외치는 사내의 물음에 사또는 잠시 어안이 벙벙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마... 전하께서 나으리의 진면목을 확인치 못하신게 아니-"


"예끼 이놈! 감히 주상전하의 안목을 평하느냐!"


자리에 벌떡 일어난 사내에게 머리를 얻어 맞자 사또는 일순간에 움츠러들었다.


"히익! 잘못했습니다, 나으리!"


저리 가녀린 체구에 어찌 저런 힘이 나온단 말인가. 잠시동안 말문은 잃은 사또는 이내 용기를 내에 입을 열었다.


"저, 나으리..."


"음, 무엇이더냐?"


"그나저나 저분들은 누구십니까?"


떨리는 손으로 가르킨 사또의 손 끝은 범상치 않은 다섯명의 인영을 가르켰다.


"아~ 저들 말이더냐?"


***


"게 아무도 없습니까."


-벌컥


"으메~ 나으리, 예법은 으따 팔아먹고 야심한 이 밤에 아씨를 찾아오신다요?"


"... 돌쇠야 물러가 있거라."


"아따, 아씨도 그라지 말고 한 말 거드소이. 하루 왠종일 나으리만 손꼽아 기다렸구만유."


"물러가라 했다."


곱상한 미모를 지닌 여식의 말에 돌쇠는 투덜거리며 뒷마당이나 쓸러 떠났다.


"목룡이는 아직 안 왔습니까?"


"... 서방님의 여행이 조금 길어지시는 모양입니다. 저, 그러지 말고 안에서 차라도 한 잔-"


"괜찮습니다, 저는 전하의 어명으로 고을에 내려가봐야 해서."


사내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뒷마당에서 큰 기침 소리가 들리더니 돌쇠가 다급히 뛰어나왔다.


"워메 나으리, 혹시 고을에 사또 잡으러 가시는건 아니죠이?"


"맞는데, 무엇 때문에 그러더냐?"


"아이고~ 큰일납니다 큰일나! 고 사또 고놈이 을메나 징한 놈인데요! 나으리 홀로 가면 파직이고 뭐고 개죽음만 당합니다, 암요!"


펄쩍 뛰는 돌쇠에 말에 허탈한 웃음만이 새어 나왔다. 아니 전하께서는 내가 그리 위험한 일을 맡겨주셨단 말인가?


아니지, 잠시만. 일이 이리도 위험하다는 것은 그만큼 전하께서 내게 신용을 하고 있다는게로구만. 좋아, 이건 기회일세. 전하께 내 가치를 입증할 기회.


"그렇다면... 얘 돌쇠야, 혹시 나랑 여정을 떠나지 않겠느냐?"


"음뫄? 지는유 아씨 버리고는 으디도 못가유."


돌쇠의 말을 들은 사내의 시선은 자연스레 여식에게로 떨어졌다.


사내의 시선을 한껏 받은 여식은 볼을 달밤에 발그레하게 붉히며 답하였다.


"... 저는 나으리 가는 곳이면 어디든 좋습니다."


"아따, 아씨. 목룡 나으리는 으짠다고 그랍니까? 여행길 돌아왔을때 아씨 읎으면 적잖히 당황할텐디?"


"돌쇠 너는 닥치거라!"


"헙!"


벌써부터 꽤나 시끌벅적 한 거 보니 여정에 고생길이 훤하다싶다.


***


"허허, 이 오장육부를 십이분활하여 조선 팔도에 널리 퍼뜨릴 놈을 봤나. 니놈이 패에 장난질하는 걸 두눈으로 똑똑히 봤다 이놈아!"


"선생, 장난질이라뇨? 말씀이 많이 지나치십니다."


"지나치지는... 꼴에 몰락한 양반가 같은데, 내가 이래뵈도 급제만 못했지 나름 이름 있는 명문 출신이야! 어디보자 이 놈 이거 주머니에 뭘 숨겼구만!"


거칠게 주머니를 뒤적거리는 놀이꾼의 힘이 얼마나 거세던지 그만 품 속에 감춰두던 마패가 바닥에 떨어졌다.


...


"어?... 이건 마패인데... 허어억! 그것도 삼마패네?!"


천천히 고개를 돌리는 놀이꾼은 흔들리는 눈으로 사내를 바라보았다.


이윽고.


-쾅!


"아이고~ 어사 나으리! 제가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아잇, 진정하시고 일어나시지요."


"이 미천한 놈이 방안에 들어 박혀 실학이나 율학 따위만 공부했지 예법은 말아먹었습니다, 죽여 주시옵소서 나으리!"


이 놀이꾼이 뭐하는. 잠만, 율학? 율학이라면 법학 아닌가? 제 아무리 잡학 취급 받는다지만 이걸 왜 알고 있지?


"크흠, 정 그렇다면 내게 제안이 하나 있네만."


"예?! 물론입죠! 시키는건 뭐든지 다 하겠습니다!"


"그래, 다 한다 이 말이지..."


***


"이만 떠나시라 했네!"


"스님 그러지 말고 제 말좀 들어주시지요, 법도를 바르게 세워야 할 일입니다."


"법도를 세우는거면 성균관 유생들에게나 가지, 어찌 이 늙은 땡중을 찾는단 말인가! 나는 속세와는 담을 쌓았으니 갈 수 없다네!"


노승은 말을 마치며 자리에 벌떡 일어나 떠나려고 했다.


부처의 마음은 하해와도 같이 넓다더니 저 땡중은 아직 수행을 더 해야겠구만.


"그러지 말고요 스님. 저 고을에 사또 놈을 잡아야한단 말입니다..."


사내의 말에 흠칫 놀란 노승은 잠시 귀를 쫑긋 세우더니 다시 자리에 주저 앉았다.


"그 사또를 잡겠다고?"


노승은 어째서인지 흥미를 보이는 모양이였다.


"인과는 흐르게 두는게 이치고 속세의 일을 되도록 멀리하는게 유익하지만..."


몇번의 중얼거림 끝에 노승은 결론을 내었다.


"허나 그 사또 놈의 파직은 부처께서도 기뻐하실 일이긴하지. 좋네, 도와주겠네!"


"감사합니다 스님! 자 그럼 어서 떠나시지요!"


"아, 나는 안갈껄세. 몸이 이래가지고. 대신 우리 사찰의 유망주를 데리고 가게나."


해맑게 웃은 노승의 옆으로 어느새 아이 같은 얼굴을 지닌 동자승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 스님, 어린이인데요?"


"부처의 마음은 물방울로 바위를 가르게 합니다. 하물며 어린 동자승이 사또를 안빈낙도로 이끌지 못할 것은 없습니다."


"아니, 뭔..."


"걱정하지 마십시요. 제가 반드시 그 사또의 영혼을 사바세계와 단절 시키겠습니다."


우린 지금 사또 죽이러가는게 아닌데?...


***


"... 씨부랄."


"Seaburhal? Oh, I love Burhal! That's my favorite."

(한국인? 오, 드디어 이국 땅에 도착했군요! 정말 다행입니다.)


어디선가 등장한 괴상한 옷차림에 두꺼운 책을 들고 있는 거구의 사내는 우리에게 큰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Hajimemashite! Whatashi Charles-no namaedeath."

(만나서 정말 반갑습니다! 저는 찰스 선교사라고 합니다.)


"나으리... 정말 저 자도 데리고 가실껍니까?"


춘향이 걱정스러운 눈길로 물었다. 아니, 어째서인지 눈길이 조금 아랫쪽을 향하는 것 같은데?


"괴상하지 그지 없습니다. 허나 부처께서는 만물의 생명을 소중히하라 하십니다."


거짓말, 머리속에는 사또 죽일 생각만 천지면서.


"Holly molly, a budism bbakbbak-e! What a diverse meeting this is!"

(하하, 자자 그러지 말고! 주님의 은해 아래 우리 모두 화목하게 지내봅시다!)


"아까부터 저 형씨는 무라 씨부리는거유?"

 

"돌쇠야 품위 떨어지게 그게 무슨 말버릇이니!"


"Oh crap, we have a Waifu here! How adorable..."

(저는 괜찮습니다, 전혀 개의치 않아요...)


그때 구석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놀이꾼 선비가 입을 열었다.


"... 저 아마 제가 대화를 해볼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래뵈도 영어를 조금 공부해본지라."


"크흠. 요, 요! 리슨 영맨... 위 니,니드 파워 오케이?"


"아따 잘하는구먼."


"Power? Like this?"
(도움이 필요하다고요? 이런걸 말하는 겁니까?)


선교사의 두꺼운 자켓 안에서 햇빛에 번쩍이는 총신이 모습을 보였다. 모두의 당황 속에서도 어찌 신월량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다 모았다...'


***


"그래서 사또야~"


"네,네에! 나으리!"


돌쇠의 패대지, 춘향의 방아찧기, 선비의 삼일밤낮의 실학 강의와, 동자승의 바라밀다심경 리믹스는 사또가 제 아무리 고을에 모든 포졸을 끌어 모아도 막아낼수가 없었다.


그중 역시 가장 영향력이 강했던 건,


"Bamm mother fxxker! Bammm!"

(어머님은 잘 계시나요! 안심입니다!)


... 말을 말자.


여전히 사또는 흙바닥에 엎드려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가증스럽긴.


"사또야~"


"그래서 네 죄를 알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