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방으로 발해진 하얀 전류가 목표를 잃고 하늘로 줄기줄기 뻗쳐갔다.

 뇌전검이 휩쓸고 지난 자리에는 짐승에게 할퀴어진 상흔만이 남았다. 질 좋은 돌을 잔뜩 깔아둔 맹주의 처소는 그 호화로움을 잃고 날뛰는 전류에 유린당했다.  

 쿠르르르...

 나일도의 성명절기는 맹주의 처소를 양단하기에 충분했다. 나일도는 검을 늘어뜨리고, 새까맣게 그을려 무너져내리는 맹주의 처소를 노려보았다.


 끝났다.

 비록 오늘 이 자리의 생사결이 정당한 방식으로 이뤄진 것은 아니나 후대에 누군가는 그를 알아줄 것이다.

 조금 더 신중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조금 더 상황을 지켜봤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 생각하지 않은 것도 아니나, 그는 애석하게도 불의를 그저 참고 넘어갈 수는 없는 부류의 인간이었다.

 무너지는 처소의 잔해와 호화스런 집기들이 깨어지고 요란스레 구르는 모습은, 나일도에게는 썩 유쾌한 광경은 아니었다. 어느 것 하나 중원의 백성들 눈물이 아닌것이 없었다. 피가 아닌것이 없었다. 땀이 아닌 것이 없었다.

 …견제할 세력들이 사라진 유일 집단의 변모는 참으로 간단했다. 의와 협을 잃고, 도와 정을 버린 자들. 지금도 무림맹의 지하에는 각 세가에서 바쳐진 여식들이 그 몸을 수뇌부에게 바치기 위해 실전된 마교의 사술로 조교당하고 있을 것이며, 후기지수라 떠받들여지는 어린 제자들은 관부와의 전쟁을 위해 몸을 터뜨리는 자폭병으로써 세뇌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이 일검으로 끝났다. 곪아버린 상처는 모조리 도려내는 것이 마땅하다. 이후 중원은 다시는 무림맹에 착취당하지 않으리라.


 나일도는 그렇게 생각하며 기운을 갈무리했다. 그의 성명절기인 뇌전검의 여파로 여전히 불안정한 전류가 대기중을 떠돌고 있지만 개의치 않고 모두 내기로 흡수했다.

 참고 참던 숨을 일거에 내뱉자, 피부 밑에서 요동치던 내기가 점차 안정되어갔다.


 "…내세에서 뉘우치시오, 맹주."


 뇌성검류의 최후의 전인인 뇌협, 나일도는 그렇게 또 한번 전 중원에 이름을 떨칠 것처럼 보였다.

 잔해의 한 가운데에서 커다란 폭발이 일어나기 전까진.


 "흐아아아압!!"


 겹겹이 쌓인 처소의 잔해가 터져올랐다. 나일도는 눈을 의심했다. 몇 척이나 되는 먼지구름이 피어오를정도로 거대한 폭발이었음에도 전혀 소리가 들리지 않았기에.

 그리고 이내, 피어오른 먼지구름을 헤치고 맨몸으로 그에게 달려와 주먹을 휘두르는 안 맹주를 눈으로 확인하고나서야 나일도는 일이 잘못되어가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빠아악!

 강기를 두를 틈조차 없었다.

 다음 순간, 나일도는 난장판이 된 돌바닥에 뒹굴고 있는 자신을 깨달았다. 몇 척이나 뒤로 날아간 것이다.

 그야말로 태산과 같은 묵직한 권격이었다. 거기에 위력 뿐 아니라 속도 또한 범상치 않다. 나일도의 별호인 뇌협이라는 단어조차, 지금의 안 맹주의 무위에 비하면 굼벵이와 같았다. 부끄럽게도 전혀 반응하지 못했다. 무겁고, 강하고, 빠르다.

 콰과과광...!

 그제야 잔해가 터져오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안 맹주가 소리보다도 빠르게 움직였다는 뜻이었다. 돌바닥에 쓸려 피투성이가 된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커다란 만두를 만들자는 걸세 뇌협. 모든 식재료들을 일일이 신경쓸수는 없잖은가?"


 안 맹주의 말투는 여유롭고 온화했으며, 표정 또한 잔잔했다. 그의 하얀 무복 곳곳에 묻은 흙먼지들이 아니었다면, 차라리 아침에 진행하는 조례에서 훈화하는 장면이라고 해도 믿었을 것이다.

 그의 성명절기 뇌전검이 어떠한 타격도 주지 못한 것이 확실했다.

 몸을 일으킨 나일도는 그것에 더욱 분통을 터뜨리고, 이미 새빨개진 시야에 안 맹주를 담아 뛰쳐나갔다. 뇌성검류의 날카로운 검법이 안 맹주의 몸을 노리고 휘둘러졌으나, 안 맹주는 미소를 띈 채 할테면 해보라는 식으로 가슴을 내밀었다.

 서걱.

 손 끝에 전해지는 느낌. 확실히 베이는 감각.

 운기 중에 공격을 받아 몸 속이 엉망이었지만, 나일도는 내기를 끌어올리며 그 한번으로 그치지 않고 연격을 이어갔다. 검의 궤적에 다시 하얀 전류가 흐르고, 그 속도는 점점 더 상승한다.

 얼핏 보면 완전히 나일도가 안 맹주를 압도하고 있는 것 같았다. 화려한 공세와 대비되어, 안 맹주는 그저 그 자리에 버티고 서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곧 나일도의 얼굴에 당혹의 빛이 어렸다.

 안 맹주의 무복만이 잘렸을 뿐, 그 아래로 보이는 단단한 몸에는 어떠한 생채기도 보이지 않았다.


 "왜 죽지 않는거지?!"

 "하하하.. 뇌협께선 본좌의 몸에 상처하나 입힐 수 없을 걸세."


 담담하게 돌아오는 조소. 그와 동시에, 안 맹주의 근육이 부풀어 올랐다.

 쨍!

 안 맹주의 살갗을 뚫지 못하고, 나일도의 검이 부러졌다.

 나일도는 절망적인 표정으로,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안 맹주의 얼굴을 올려다 보았다. 본래도 위압감 넘치는 분위기와 거체를 가진 맹주였지만 지금은 그보다도 훨씬 흉악해 보였다.

 안 맹주는 너덜너덜한 무복을 양 손으로 잡아뜯고서 거대한 근육을 한층 더 부풀렸다.


"금강불괴일세, ...애송이."


그 거대한 육체가 거멓게 물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