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르르르.
너무나 견고해보였던 돌천장이 가볍게 무너졌다. 연막탄이라도 터뜨린 듯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흙먼지에 숨쉬기가 힘들다.
뻥 뚫린 구멍으로 비치는 간만에 보는 햇빛에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콜록, 콜록.”
천장을 무너뜨린 자는 그 강력함에 어울리지 않는 가는 목소리로 연신 기침을 해대고 있었다. 이내 후욱 하고 세찬 바람이 감옥 내에 일어나더니, 흙먼지는 모두 흩어져 버렸다.
황금 빛을 띄는 긴 백금발, 사람을 빨아들이는 듯 깊은 군청색의 눈동자. 오밀조밀한 이목구비에 비해 왼손에 들린 흉악하기 그지 없는 곡괭이. 나 고급품이오 라고 온몸에서 광고를 하는 듯 햇빛을 반사하는 새하얀 방마코트를 속절없이 펄럭이면서, 그 여자는 찌푸린 눈으로 감옥 안을 둘러보더니 사뿐히 뛰어내렸다.
미인이지만 관련없는 자를 밀어내는 듯한 그 분위기는 나로써는 굉장히 섬뜩하게 느껴졌다. 수용소에 갇힌 누군가를 찾으러 온 건가?
“당신.”
이런.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 여자는 손수건으로 코와 입을 막고선 곡괭이를 늘어뜨린채, 구석에 앉아있던 내 앞에 서 있었다.
다 좋은데, 눈 좀 순하게 떠 줬으면 한다. 마렵지 않은 오줌까지 짜내서 지릴 수준이다.
“이 수용소에 녹색 머리칼의 엘프가 수감되었다 들었는데?”
“…아, 그 엘프.”
있었지.
“잘 모르겠군.”
“말을 잘 골라라. 이걸 휘둘러 머리통을 깨버리기 전에.”
“진짜 몰라. 애초에 여긴 청교국 이단수용소 아니냐. 그 광신도들이 엘프를 놔두겠어?”
하루에도 열댓명은 되는 자들이 온갖 죄목으로 잡혀오고 총살되는 곳에서 이종족이 사지 멀쩡히 살아있을 리가 없지.
그 말에 여자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꽤 화난 것처럼 보이지만 나랑은 관련이 없다.
그냥, 한마디 해 주고 싶을 뿐.
“살아는 있을 걸.”
“뭐?”
“목숨은 부지하고 있을 거란 얘기야. 뭔 죄목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죄질이 가볍다면 그렇게 쉽게 심층행이 결정되지는 않았겠지. 들어오자마자 심층으로 끌려갔다고.”
“….”
꾸욱, 곡괭이의 자루를 쥐고 있는 손이 하얗게 변할 정도로 -하얀 피부지만- 거세게 쥐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온다.
나는 오른쪽으로 풀썩 누우며 말을 이었다.
“됐지? 얼른 심층이나 뒤져보라구. 난 낮잠이나 잘 테니.”
“너, 따라와. 안내해.”
당신에서 너. 심지어는 길안내를 하라니. 무례함도 이런 무례함이 없었다. 이런 싸가지없는 년이? 라고 말하는 대신, 나는 내 양 손목을 단단히 결박하고 있는 족쇄를 살짝 들어올리며 피식 웃었다.
“보시다시피 꼬락서니가 이래놔서. 길 안내는 조금 어려울 것 같은데.”
콰드득.
곡괭이가 번개같이 휘둘러졌다, 라고 생각했더니 어느새 족쇄는 박살나서 감옥 바닥을 굴렀다. 이 족쇄는 마력설계된 특제라서 절대 부서지지 않을 거라고 비웃던 간수의 얼굴이 아련하게 떠올랐다. 아아, 당신이 틀렸어.
“됐지?”
“안 됐어. 염병, 눈에 띄지 않으려고 했는데.”
뭐 다른건 모르겠고 머리라도 긁을 수 있으니 됐다 치자. 머리를 시원하게 긁으면서 간만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우 씨.
“또 뭐야?”
“다리 저려.”
깊이 한숨 쉬는 소리가 들려왔다.
미안하지만 나 같은 잡범 따위는 원래 이렇게 형편없는 인간들 뿐이다. 눈물을 찔끔거리는 날 무시하고 여자는 철창을 향해서 곡괭이를 휘둘렀다. 와장창!
“간수들을 다 불러모을 일이라도 있는 모양이군.”
“다 때려눕히고 들어왔으니 불러모아도 몇명 안 되겠지.”
내 비아냥거림에 그녀는 그렇게 말할 뿐이었다.
무식한 데에도 정도가 있지. 과연, 통로 저편에서 간수들이 달려오는 것이 보이지만 그 수는 한손으로 꼽을 정도다. 곡괭이를 간수들에게 겨누면서, 여자는 나를 돌아보았다.
“하나 묻겠는데, 넌 뭐 때문에 갇혀있었지?”
“그냥 잡범이야. 형편없는 위조꾼일 뿐이라고.”
“잡범이 마력설계된 독방에, 마력설계된 족쇄에, 마력설계된 창살 안에 갇힐 리가 없지. 전범을 잘못 말한거 아닌가?”
나는 투덜거렸다. 잡범을 1급 범죄자로 탈바꿈시키는 것 정도야 어렵지 않지.
칠신께서 내려주시는 화폐의 위폐 제작 및 유통으로 신성 모독, 성화聖畵 위조 및 판매로 신성 모독, 청교국 내 상단 채권 위조 및 유통으로 신성 모독, 성녀 희롱죄로 신성 모독, 성서 베개 사용으로 신성 모독.
다 합쳐 총 형량 356년. 완전 무기징역. 심지어 저 중에는 내가 한 게 아닌 것도 있는데, 그것도 나한테 뒤집어씌웠다.
“겁나 억울하네. 됐다, 알아서 찾아가셔. 난 얌전히 제압당한 뒤에 그쪽이 날 협박해서 억지로 끌려나온것 뿐이라고 할 테니까.”
“그러면 안 되지. 너지?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다는 카운터피터Counterfeiter가.”
“켁.”
그녀는 곡괭이를 수용소 바닥에 꽂았다.
“내가 본 게 맞다면, 넌 그 감옥에서 한발이라도 나온 순간 총살이야. 그렇지?”
드드드드득!
수용소 바닥에 마치 먹물로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금이 죽죽 그어진다. 그녀의 손에서 요동치는 곡괭이는 멈추지 않고, 돌바닥을 깎아내며 큰 호선을 그렸다.
먼 옛날에 멸종했다던 용족이 물어뜯기라도 한 듯 큰 자국이 남는다.
“나한테 붙는게 현명하겠지?”
“…분부대로 합죠.”
안 붙었다간 총살되기도 전에 머리통이 터질 판이다. 법은 멀고 곡괭이는 가까웠다. 젠장.
“1급 죄수, 카운터피터의 탈옥을 확인. 원호를 요청합니다.”
“전원 장전, 사살한다! 쏴라!”
그새 지근거리까지 도착한 간수들이 대열을 갖췄다. 그들의 손에 들린 정교한 장치가 우리에게 겨누어진다. 청교국 마력공학의 결정체이자 힘 그 자체인 마력총이 파란 빛을 내뿜는다.
두두두두!
언제 연사 기능까지 끼워넣었대? 정신 없이 휘몰아치는 마력탄이 나를 노리고 날아든다.
“배우는 게 없나봐.”
곡괭이녀는 그렇게 말하며, 몸에서 파란 빛을 내뿜었다. 날아들던 마력탄이 파란 빛에 휩싸여 흔적도 없이 허물어졌다.
“성녀가 직접 찾아온 걸 보고도 저런 잔챙이들만 보내다니.”
쓰읍.
나는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차라리 다행이다. 그 정도의 거물이라면 더더욱 내가 줄을 타는 의미가 있으니까.
아니, 다행 수준이 아니지. 대호재다. 아무튼 성녀를 도와 여기서 빠져나가기만 하면 나는 성녀 특사로 사면일테니까.
그따위 너절한 생각을 하고 있자니, 성녀는 곡괭이를 부메랑처럼 집어 던져 간수들을 쓰러뜨린 뒤였다. 그렇다 해도 청교국의 성녀가 이토록 무식한 인간일 줄은 몰랐다.
“그럼 갈까?”
“…그러시죠, 성녀님.”
“한번만 더 그따위로 부르면 눈 먼 곡괭이가 당신 골통을 부술 줄 알아. 내 이름은 카롤라야.”
“…예, 알겠습니다.”
빙 되돌아온 곡괭이를 다시 붙잡아선 어깨에 턱 걸치곤, 카롤라는 뒤를 돌아 아래로 이어지는 통로를 따라 걸어갔다.
“뭐 하나만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미안한데 난 지금 상당히 열받아있는 상태거든. 그 질문이 내 심기를 거스르면 청마력이 폭주해서 이 수용소를 다 날려버릴지도 몰라.”
“…그, 친구분도 휘말릴 텐데요.”
“그 정도 조절은 할 수 있어. 대신,”
군청색 눈동자만이 굴러 나를 쳐다보며 섬짓하게 빛났다.
“눈 먼 마력에 길안내하는 잡범 정도는 휘말릴지도 모르지.”
씨이팔.
그런 협박인지 뭔지, 나만 존나게 손해보는 대화가 오가며 우리는 지금 상당히 깊은 곳까지 들어와 있었다. 1급 범죄자들을 수용하는 독방은 아래로 이어지는 나선형 통로를 따라 하나씩 존재한다. 그리고 이 무식녀의 친구, 인지 뭔지, 아무튼 그 녹색 엘프는 이 통로 끝의 심층이라 불리우는 방에 갇혀 있다.
일자로 쭉 내려가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구조지만 귀찮은 것은 중간 중간-
“문이야.”
“…기다리십쇼.”
마력설계된 문이 하나씩 튀어나온다는 점이었다.
피곤에 절은 몸으로, 비켜선 카롤라를 지나쳐 문 앞으로 다가섰다.
왼쪽 눈이 찌릿하고선 묵직한 철문을 투시한다. 반투명해진 표면 내부로 한 눈에 봐도 복잡한 구조의 장치와 마력이 엉켜있었다.
“잠금장치 위쪽에 마력이 지나가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손바닥 정도의 크기입니다.”
“잘 모르겠는데. 손좀 대봐.”
“…봐주십쇼 좀.”
“농담이었어.”
곡괭이가 휘둘러지더니, 대충 손으로 가리킨 부분에 정확히 꽂힌다. 그 부분으로 청마력이 흘러들어간다.
빠직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내부로부터 망가져 가는 것이 보였다. 이런 복잡한 물건일수록 약점이 명확하다. 기초 설계 당시부터 짜넣어진 마력이 아니라 외부로부터의 마력이 흘러들어가면 간단히 망가진다.
우지끈, 하는 소리와 함께 과부하를 버티지 못하고, 잠금장치가 박살났다. 육중한 철문의 외양과 어울리지 않게, 가볍게 소리없이 문이 열렸다.
“흠, 벌써 일곱개짼데. 그 심층이란 건 언제쯤 나오는 거지?”
“다 왔습니다.”
내 말을 입증하듯이, 척 보기에도 불길한 파란색의 마도진이 그려진 석문이 통로의 끝에서 빛을 내고 있었다.
“카운터피터. 한 가지 궁금한게 있는데.”
“카롤라 님 뿐 아니라, 저도 상당히 열받아 있는….”
쾅!
“뭐라고?”
“…무엇이 궁금하십니까?”
힘이 깡패다, 씨팔.
“당신, 마도진의 해석도 가능해?”
“생물만 아니면 됩니다.”
“…진짜 된다고?”
“속고만 사셨습니까?”
그 말에 카롤라는 눈을 찌푸렸다.
아마 속에서 내 위험도의 등급을 상향 조정하는 모양이다.
“흑색이라는 들어본 적도 없는 마도계파에, 생물 외에는 어떤 거라도 구조를 볼 수 있는 눈에, 한번도 본 적은 없지만 위조까지 해낸단 말이지?”
그게 다 흑색인데.
난들 이런 힘을 원한게 아니다. 그저 모험가가 되고 싶어서 색신의 축복을 받았는데 새까맣게 나왔을 뿐이지.
덕분에 고향에서는 쫓겨나고 이런 저런 일을 겪다가 이렇게 잡혀왔을 뿐이다.
“듣자하니 세상엔 백색계파인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이상하게 생각하실 일이 아니지요.”
“백색마도 자체는 예전에도 있었으니까,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지.”
“그뿐 아니라 적, 주, 황, 녹, 청, 남, 자. 모두 처음 세상에 등장했던 적이 있을겁니다. 흑마도는 그 시기가 늦었을 뿐이 아닐까요.”
“무슨 이야기를 해도 당신이 수상한 건 변함없어.”
쓰읍.
목표를 이루기 직전에 나를 추궁하는 꼴이라니. 이건 어떻게 봐도 본인 목적을 이룬 후 날 담그려는 심산 같은데.
카롤라는 곡괭이를 빙글 돌리고는 돌바닥에 세웠다.
“하지만 그게 편리한 건 사실이지.”
“예?”
“당신에 대한 이야기는 뭐, 보고로 올라온 거니까 본적은 있어. 내 결재도 통하지 않고 주교가 멋대로 정한 내용이라 문제는 있지만. 몇달 전에 있었던 우리 교국 4대 상단의 파산이 당신때문이라고 했지?”
위조채권의 발행.
글씨체, 내용, 인장까지도 섬세하게 위조된 물건이라 실제로 발행한 상단에서도 뭐가 진품인지를 구별하지 못했고, 결국 모든 채권을 파기하던지 아니면 모든 채권을 인정하던지 둘 중 하나의 고통의 선택을 강요받았다.
섣불리 모든 채권의 파기를 선택한 상단은 분노한 채권자들의 사적 제재를 받아 수뇌부가 모조리 몰살당하며 망했고, 모든 채권을 인정해버린 상단은 천문학적인 금액에 말 그대로 파산해버렸다.
조금 화려하게 해 먹어서 청교국은 인퀴지터까지 풀어 관련자들의 증언을 따라오다 그 모든것이 겹치는 부분에서 내가 덜미를 잡혔다.
몽땅 싸들고 적제국으로 튀려고 했더니만.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나는 눈 앞의 허수아비 성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닌데요?”
“하긴, 나도 못 믿을 내용이긴 했어. 아마 인퀴지터들도 못 믿었을 거야.”
그렇게 말하며, 성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혼자서 4대 상단이 발행한 채권 3800장을 위조해 낸다는건 당연히 불가능한 이야기지. 다만 당신의 마도계파가 흑색이라는 것, 그리고 희생양이 필요하다는 것, 그 외 여러가지 요인들이 모여서 당신의 죄를 인정했다고 했는데-”
그럼 슬슬 특사 선언 해줘도 되지 않을지.
“딱 보니까 알겠네. 당신은 그런 짓을 하고도 남아.”
“과대평가인데요.”
“과대평가인지 아닌지는 내가 결정해.”
깡패 성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곡괭이로 마도진을 가리켰다.
“가서 읽어내. 결과에 따라, 당신을 내 곁에 둘지 처리할지 결정하겠어.”
“염병. 후회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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